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10/26,설교}*모세의 소명 /행 7:29-3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0. 25. 06:34

{10/26,설교}

 

*모세의 소명 /행 7:29-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님이 주신 동산에는 오색단풍이 만발하여 너나없이 단풍을 포기위하여 산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여러분들도 한번 다녀오시면 우리 하나님의 창조하심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지 알 수 있으며 우리들 자신에게도 좋은 힐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날이 점차적으로 추워진다는 예보이니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강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지난 주에 이어서 "모세의 소명"이라는 주제로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인후, 동족의 폭로로 인하여 알려지게 되자, 바로왕은 모세를 찾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모세는 더 이상 애굽 궁중에 남아있을 수 없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낳았으며, 양을 치며 40년간을 한적한 광야에서 인격수련을 쌓았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중반기 40년은 연단의 40년이었습니다. 애굽 궁중의 전반기 40년은 행복하고, 지적훈련을 쌓은 40년이었고, 미디안 광야의 40년은 인격 도야를 위한 시련의 40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사업을 하려고 할 때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와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수련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모세는 40년간 시련을 쌓았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큰 일에 성공을 하려면 자기인격 수련의 시련이 필요합니다.

시련 가운데 고생을 거치면서 어려움을 참아가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련기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거나 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훌륭한 인격이 될 수 없습니다. 시련기간이 인간을 만드는 수업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40년이 차매, 모세가 바라보니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에 불이 활활 타 오르는 것입니다. 하도 이상하여 모세가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는 타지않고 불만 붙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 곧 하나님이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불렀습니다. 모세가 황망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 신을 벗으라" 하시고,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여기서 몇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어디에나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만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시내산과 같은 호렙산이라 그랬는데, 호랩산맥 중 시내산을 말하는 듯 합니다. 이렇게 필요에 따라 시내산과 같은 산에도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의 발길 발길마다 어디든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다고 잘못된 행동을 하시면 바로 하나님께서 아시고 우리를 책망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곧은 어느곳이나 다 거룩한 땅입니다.

 

3. 하나님의 출현은 장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무서워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이밖에도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성전양식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출현으로 장엄했고, 백성들은 가까이 가지 못했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임재하실 때도 장엄해서 제사장이 감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가 나타날 때는 암흑 중에 소란하고, 초라하고, 살그머니 나타나 속삭이고, 얄밉고, 간사하게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임재, 그 출현은 굉장한 것이며, 영광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할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 가시나무에 불은 붙는데 타지 않는다는 것은 가시나무는 고생하는 핍박과 천대를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 것이고, 불은 시련을 상징합니다. 불이 붙지만 나무는 타지않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과 시련과 갖은 노고를 다 당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없어지지 않고, 약화되지 않고, 더 번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인은 오랜 세월 동안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많은 시련을 겪어 오지만 오히려 기독교는 더 왕성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도처에서 더 많이 증가되어왔고 또 증가되어 갈 것입니다.

 

5. "모세야, 모세야" 부르며 "네 발에 신을 벗으라" 했습니다.

 

신을 벗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깨긋하고 경건한 태도가 필요한 것을 뜻하는 줄 압니다. 신은 깨끗한 것은 못됩니다. 어디든지 신고 다니는 것, 또 더러운 것이 많이 묻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더러운 신을 그대로 신고 있는 것은 불경한 태도이기 때문에 먼저 신을 벗으라고 한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신령한 면에서 생각하면, 겉 모양의 경건한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개를 가리키는 뜻도 있습니다.

 

① 더루운 길, 곁 길, 빗나간 길로 가던 신을 벗는 회개

② 내 욕심대로 행하던 신을 벗는 회개

③ 세상길로 다니던 신을 벗는 회개

④ 우상을 따라가던 신을 벗는 회개

⑤ 자기 개인의 안식과 유익을 추구하며 살던 신을 벗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지나온 걸음의 협소한 사생활의 신을 벗고 앞으로는 새로운 사명을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큰 일을 맡는 거룩한 신을 다시 신어야 하는 뜻도 담겨져 있습니다. 새로운 사명에 임하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경건한 태도로 예배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또 언제나 내가 걸어온 잘못된 신을 벗고 하나님께서 맡겨주는 새로운 사명의 신을 신고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교회를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사람이나 옆사람과 귓속말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일어나서 나갈 수가 있게 됩니다.

 

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모세에게 올바른 신념관을 넣어주기 위하여, 또 확실한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하여 네 조상이 섬기던 하나님 곧 계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언약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4대 만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엉뚱한 신이 아니라, 너희 조상과 이렇게 깊은 관계가 있고, 약속하면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리켜 주는 것입니다.

이로서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로 가지고 확신할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과 계약관계에서 사는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멸망에 들어갑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계약관계에서 삽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믿을 뿐입니다.

 

34절을 보면,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괴로움을 보시고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괴롬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탄식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환란 중에 신음하는 소리, 핍박 중에 괴로워하는 소리, 고통 중에 부르짖는 기도소리, 외치는 소리,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은 낱낱이 다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가만히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인물을 통해서든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고 죽게 되었을 때 어떤 때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어떤 때는 사사들을 통해서 제왕, 선지자, 에스더를 통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도 6. 25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통해서 맥아더를 움직이고, 트루만을 움직이고, 미국을 움직여서 구원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도로 부르짖을 때, 반드시 들으시고 또 누구를 통해 이 백성을 건지실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4 하반-35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여 불러 속량하는 자로 애굽에 보내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낸 것은 죄인을 속량하여 구원하려 보내신것처럼, 모세를 애굽에 있는 동족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구원해내려고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모세라는 자연인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으나 하나님이 동행하고 같이 역사했기 때문에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고, 광야 40년간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면서 백성을 인도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전도하러 보내실 때는 그저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같이 하십니다.

고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어디든지 나가 전도하여 또 주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인 모세의 소명은 이미 여러분들이 다 아는 말씀이지만 이 사이버상을 통하여서 다시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성합니다. 지금의 세상도 이와 같습니다. 국민을 위한 지도자들, 국민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최고 지도자를 보필할 보좌관들(정치인) 일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아픔을 알지 못하고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대표할 자격도 되지 못할 뿐더러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들의 세금을 축내는 사람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이제 국가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여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4년 10월 25일의 이른시간에

박종태 목사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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