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한 마리 양(단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2. 10:55

   4월 중순이 되자 봄기운이 완연해 졌다. 몇 번의 꽃샘 추이도 지나갔다. 바람은 볼을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교회 화단 가 돌 사이로 둘러 심어 놓은 철쭉이 활짝 피고 가지 끝마다 다발 지어 핀 라일락에서도 짙은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메마른 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이 손에 만져지는 것 같았다. 봄기운에 취하기도 했지만 봄에는 늘 나른함을 이기지 못한 배 집사는 교회에 들어서자 그 때야 자기의 깨어 있지 못한 삶을 후회했다. 오늘도 불신자를 한 사람쯤 데려왔어야 하는 것인데 그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교회에 나온 것이다.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또 열심을 내도 자기에게는 따라 나서겠다는 새 신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얼마 전 전도집회에서 400명 도 더 전도했다는 전도왕의 간증을 생각해 본다면 손에 꼽을 정도도 전도하지 못한 자기는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이 때 그녀의 눈에 들어 온 것은 교회에서 보지 못했던 한 여인이 고갯길 곁에 있는 교회 문을 통해 화단 앞까지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교회 처음이시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 집사는 정말 반가워서 그녀를 예배당의 새 가족 좌석으로 배정된 제일 뒷좌석에 앉히며 물었다.

"누구 소개로 오셨나요? 혼자 오셨어요? 이 근처로 이사 오셨나요?"

거침없이 묻는 말에 그녀는 앞만 처다 본체 말했다.

"누구 소개를 받아야 올 수 있나요?"

"아니에요. 잘 오셨어요.”

그러면서 신입교인 등록 양식을 가져와서 내밀었다. 신입회원 일대일 양육을 맡은 그녀는 으레 하는 일이었다.

"어려우시겠지만 이것 좀 적어 주실래요?”

그녀는 용지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흥미 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것 쓰고 싶지 않는데요. 이것을 써야만 예배드릴 수 있나요?”

배 집사는 당황해서 용지를 거두어 드리며 걱정하지 말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했다. 스스로 교회로 나왔다는 것은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그녀는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교회를 지나가다가 들린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래서 성경과 찬송가 책을 갖다 주었다. 그녀는 책을 받았지만 그것을 열어 보지 않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예배 시간 내내 성경을 찾아 주었으나 읽지도 않았고 찬송을 찾아 주었으나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예배가 끝나자 그녀는 성경을 돌려주었다.

"이것은 선물이에요. 가지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애써 돌려주었다. 이제 그만 오겠다는 뜻인가? 아니다 거저 받는 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배 집사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며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고 애써 자기에게 타이르며 그녀에게 상냥하게 물었다.

"어떠세요. 우리 목사님 말씀 좋지요?”

"무슨 말씀이요?”

"성경 말씀 말입니다

"안 들었는데요. 뭐라 하셨어요?”

"예수님 곁에 두 강도가 같이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한 강도는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잖아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흉악한 죄인까지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 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참 이 교회에서 결혼식도 할 수 있나요?”

그녀는 설교는 듣지 않고 잘 꾸며 놓은 설교단 앞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는 한 쌍의 부부를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기 친구가 그 시간에 시내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에 가지 않고 왜 이곳에 왔어요?”

"그럴 일이 있어요.”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여기까지 왔으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들자 왜 점심을 주느냐고 또 물었다. 모든 교인이 식사를 하고 성경공부를 한 뒤 2시에는 다시 오후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간다고 했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고 자기는 그냥 가겠다고 말했다. 배 집사는 새로 찾아온 한 영혼을 또 이렇게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처음으로 교회를 찾은 사람들은 마치 소문을 듣고 새로운 식당을 찾은 사람처럼 한 번쯤 들렸다가 그저 그렇구먼.’ 하는 표정으로 떠나서 다시는 찾지 않는 일이 많았다. 전도는 못해도 찾아 온 영혼을 예수와 접목을 시키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책임이라고 배 집사는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어떤 여인 한 사람이 전도를 받고 교회에 왔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임신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도한 교인이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시고 눈먼 자도 눈을 뜨게 한 분인데 무슨 일을 못하겠느냐. 교회에 나오면 어린애를 갖게 된다고 말해서 교회를 찾은 사람이었다. 배 집사는 새 가족 일대일 도우미로 새로운 가족이 교회에 오면 한 사람씩 맡아 신앙에 생기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자매를 맡은 배 집사는 자녀를 주시도록 열심히 기도하되 그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없도록 오래 인내하며 기도하라고 힘써 새 교인을 양육해 가고 있는데 어떤 여 집사가 새 교인을 잘 안다는 듯 그녀에게 귓속말로

"요즘 인공수정을 한다고 들었는데 잘되어 가요?”

이렇게 물어서 쫓아내 버린 일이 있었다. 먼저 그 영혼을 사랑하고 가까워진 뒤에는 그런 질문을 했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배 집사는 한 시답잖은 여 집사 때문에 이 여인이 예수를 알기도 전에 교회에서 쫓겨난 것이 안타까웠다.

"전화번호든지 집 주소를 좀 알려 주세요.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난 꼭 동생을 만난 것 같아요. 동생이 여기 없거든요

그녀는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다시는 안 올 것 같아 그런 거지요? 다음 일요일에 또 올 게요

 

다음 주일이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착해 보이고 상냥한 한 젊은 남자와 함께 나왔다. 배 집사는 너무 기뻤다. 한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새끼를 쳐서 두 사람이 나온 것이었다. 배 집사는 이번에도 새 가족등록 용지를 가져갔다.

"우리가 한 가족처럼 잘 사귀고 싶어 그럽니다. 이 양식에 좀 기록해 줄 수는 없나요?”

그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남자가 받아들고 순순히 기록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식사까지도 사양하지 않았다.

"참 식당의 전망이 좋군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교회는 과수원이 있었던 작은 산 위에 세워졌으며 식당은 교육관의 맨 위층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교회였다.

"그렇지요? 여기서 식사를 할 때마다 기분이 좋답니다.”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면 이 식당에서 피로연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럼요. 모든 교인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음식을 장만하고 대접한답니다. 왜 여기서 결혼하고 싶으세요?”

그녀는 피식 웃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 집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정말 이 교회가 지역사회에 문을 열고 누구에게나 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을 생각했다. 처음으로 교회를 나오는 사람은 오래도록 교회를 나온 사람들보다 더 신선한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그를 돕는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결혼하는 남녀의 혼례를 치러 주는 것은 마땅하다. 갑자기 신선한 비전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 같음을 배 집사는 느꼈다. 그래 교회에서 불신자들을 위해 그들이 원한다면 결혼식을 해주는 거다. 세례를 받은 부부만 결혼예식을 해주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또 있다면 이것은 사람이 만든 법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부가 엄숙한 결혼의 서약을 하려면 법관 앞에서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옳다. 권한이 없는 주례자가 서약을 받고 성혼 선포를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더구나 30분 사이에 결혼을 해 치우고 사진 찍고 헤어지는 것은 결혼만큼 쉽게 이혼도 할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않은가? 우리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결혼식장을 제공하는 첫 번째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회에 건의하고 목사님께 건의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교회가 사회를 향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녀는 목사님을 만나기 전에 한 장로님을 만나 상의를 하였다. 그러나 매우 주정적이었다. 누구에게나 무료로 결혼식장을 내주면 시내 예식장들의 반발이 이만저먼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뿐 아니라 불신자가 들어오면 담배 꽁치 등 교회가 불결해 지고 성스러운 교회의 상이 깨진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할 때는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청하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담배 꽁치를 버리면 우리가 청소하면 되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교회에서 그것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교회는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야 한다. 무엇이 교회를 더럽게 하는가? 사람인가? 담배꽁초인가? 예배당에서는 아무도 흡연할 수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혹 모르고 흡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때는 가벼운 주의를 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사회 사람이 교회를 조금씩 더 알게 되지 않겠는가? 불신자에게 교회문화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려면 혼례식을 해 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교인들은 결혼하는 사람들을 축하해 주며 모두 협력해서 피로연을 도와준다. 그보다 더 나은 전도가 있는가? 웨딩드레스도 몇 벌 준비해 놓았다가 빌려준다. 사진은 실비로 찍어 준다. 이런 봉사야말로 보람 있는 봉사가 아닐까? 배 집사는 길에서 우리교회 나오세요.’ 라는 말은 못해도 이런 일을 도와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돕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자기 혼자의 생각이었을 뿐 교회의 담은 너무 높은 것 같았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가라고 권했지만 그들은 굳이 사양하고 집으로 갔다.

"같이 온 분은 애인이세요?”

하고 귓속말로 묻자 그녀는 웃으며 그저 친구라고 대답했다.

 

다음 주일에는 두 사람 다 나오지 않았다. 배 집사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다. 토요일이라도 확인 전화를 하고 데리러 갔어야 할 것이었다. 다행이 전화번호가 있어 교회가 끝난 뒤 그녀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멈추었다. 그녀는 어쩐지 접근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보다는 착해 보이는 남자 쪽이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남자 쪽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박기수입니다. 누구십니까?”

그 목소리가 상냥해서 곧 친근해질 것 같았다. 교회에서 만났던 배 집사라고 말하며 좀 시간을 내서 만나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왜 그러는데요?”

"교회 나오라고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같이 나오셨던 여자 분이 좀 걱정이 있는 것 같아 도와주고 싶은데 접근하기가 힘드네요.”

그는 그럴 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자기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좀 만나서 도울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세요

그는 내키지 않은 듯 했으나 어디가 좋겠느냐고 물었다. 커피만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는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시간을 약속해 주었다.

박기수라는 청년은 제 시간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시지 않으세요?”

"아니오, 오늘은 괜찮습니다.”

그들은 커피를 주문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이런 커피 집이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또 커피 종류가 이렇게 많은 것도 몰랐습니다.”

"괜찮지요? 분위기도 있고. 한 번 그 여자 분과도 함께 와 보세요.”

"그래야 하겠는데요. 그런데 워낙 까다로워서.”

"아주 잘 어울리시던데. 그 여자 분과는 어떤 사이세요?”

"그냥 친굽니다. 말 잘 들어주는 친구.”

"제 말도 잘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 주지 않으실래요?”

"아주머니는 말동무가 되는 남편이 계시잖아요?“

"저도 혼자 산답니다. 지금 제 남편은 예수님이세요.“

"그래 눈에 보이지 않은 예수님과 산다는 말입니까?”

그는 구김새 없이 웃었다. 얼마 동안 앉아 있으면서 배 집사는 까다롭다는 여인 혜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정보통신학을 전공하고 모 통신회사에 취직해 있었다. 대학 재학 시에 같이 사귀던 동료는 군대에 가서 삼 년 뒤 졸업을 했는데 직장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주선으로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다. 점심을 싸오기도 하고 나가 먹기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주말에는 아름다운 경치도 찾고이렇게 꿈같은 일 년이 지났다. 그러나 결혼 때가 되자 둘 중 하나는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퇴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었다. 드디어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여자가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좋아지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었다. 또 싫은 감정을 자기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고 말했었다. 머리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기의 감정을 평생 억제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위선 없는 가장 정직한 삶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이 그렇게 다른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배 집사는 교회에서 초점을 잃은 듯한 그녀의 멍한 표정을 연상했다. 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있는 그 남자를 상상했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식을 하는 남자를 두고 혼자 교회에 나와 앉아 있을 때 그 상처가 얼마나 컸겠는가? 자신의 울분, 부모의 울분, 이웃 사람들의 울분은 결국은 어리석었다는 그녀의 행동에 귀결되었을 것이었다.

"너무 상처가 컸겠네요. 누가 그 상처를 낫게 해 주겠어요. 기수 씨가 좀 어루만져 주세요.”

"지금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저에게도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열어주질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집사님이 아신 줄 알면 저를 죽일 겁니다.”

"잘 달래서 교회에 데리고 나오십시오. 제 남편 예수님은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시고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해 주시는 분입니다. 한 번 믿어 보세요.”

이 두 사람은 그 뒤로 꾸준히 교회에 잘 참석했으며 식사 후 새 가족 성경공부 반에도 참석했었다. 배 집사는 그들의 일대일 양육을 맡아 공부 시간에 그들을 인도하여 같이 참석했었다. 성경공부는 부 목사가 인도 하는데 공부 때 혜진은 엉뚱한 질문으로 인도자를 당황하게 했었다. <마태복음 51절로 12절까지의 말씀>이라고 인도자가 말하면

"1절에서 12절까지라고 이렇게 쉽고 바른 말을 쓸 수 없습니까?”

라고 교정해 줄 때도 있었으며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면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감동을 받았다는 말씀입니까? 처음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보낸 미국에 가서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영어로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런 말이 영어로 있기는 한 겁니까?”

이렇게 질문하기도 했다. 또 어쩔 때는

"성경은 왜 배우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역사 배우는 것입니까?”

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좀 오래 된 사람은 처음에는 다 그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녀는 모범답안을 만들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배 집사는 혜진과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되자 박기수씨를 만났던 찻집으로 불러냈다. 그녀는 이곳에 벌써 기수와 와본 적이 있는 듯했다.

"이 집 좋지요?”

"네 좋아요

"단도직입으로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그러세요.”

그녀는 모든 것이 사무적이었다.

"박기수 씨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배우자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이에요

"배우자요? 그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한다면?”

"그분 모르시지요? 한 번 결혼해서 일찍 상처한 분이에요. 어린애도 하나 있구요.”

배 집사는 깜짝 놀랐다. 정말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자기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녀에게 재취로 가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겉모양만 보고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주제넘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배 집사는 황급히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요. 너무 실례를 했어요.”

"괜찮아요.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소심한 사람이에요. 자기를 닫아 놓고 결코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에요. 자기는 프러포즈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받을 자격도 없구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친구예요.”

"친구란 문을 두들일 수도 있고 열고 맞아드려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이런 사이가 되는 게 아니에요?”

"서로 문을 두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가슴은 그와 반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아요?”

"저는 머리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감성의 노예가 된 사람을 증오합니다.”

혜진의 얼굴에는 증오의 표정이 역력했다.

"혜진 씨 마음의 평안이 중요합니다. 시기, 질투, 분냄은 평화의 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안이 없답니다.”

"하나님의 참 안식이 무엇인데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데 이것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체험하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혜진 씨 같은 경우는 기도해 보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혜진 씨를 뜻이 있어 창조하신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신다는 뜻이지요.”

"저는 하나님을 안 믿는데요.”

"그러면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따라 살아야지요. 그 때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배 집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 어린애가 딸린 상처한 남자를 소개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까? 그러나 솔직히 혜진이도 안타까웠지만 기수 씨도 안 되었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좋은 배필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가을도 지나고 추수 감사절이 되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교회에서 학습을 받게 되었다. 학습을 받은 뒤 두 사람을 저녁에 초대하였다. 이제는 퍽 가까워져서 서로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왜 우리가 말 잘 들어준다고 저녁 사주시는 겁니까?”

"그래요. 너무 예뻐 죽겠어요. 그래 학습 받은 기분이 어떻습니까?”

"솔직히 멍에를 진 것처럼 답답해요. 두리번거리면 세상이 보이는데 종이를 들들 말아 눈에 대고 이것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왜 받았어요?”

"너무 잘해 주신 배 집사님이 강권해서 받은 거지요. 집사님, 사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의식이에요. 예수님이 교회 만들라고 했나요? 구원받으려면 세례 받아야 한다고 했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구원하기 위해 6개월씩 기다려 학습 받고 또 6개월 기다려 세례 받은 뒤 구원해 주었습니까? 세례 받은 사람들끼리 이곳은 우리 교횝네 하고 구원의 기득권을 받은 사람들처럼 유세하고 지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비뚤어졌어?”

박기수가 거들었다.

"비뚤어지긴. 옳은 말을 하는 거죠. 박 선생은 속 다르고 겉 달라서 분간하기가 힘들어요.”

"내가 언제 그랬지요?”

"저는 언제나 박 선생님이 말하면 저게 무슨 뜻일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는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가 싫어서 판단을 포기해요.”

"누군가 한 사람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불쑥 말하고 상대방 반응을 보는 것이 어떨까요. 줄다리기하는 것보다 훨씬 편할 텐데

배 집사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혜진이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참 나는 교회를 나올 때 악수하려고 줄줄이 서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어요. 이건 식당도 아닌데 또 오십쇼.’ 하는 것 같잖아요.”

"일 주일 만에 만나 반가워서 그러는 건데

"그 사람들 중에 정말 나를 알고 나를 걱정하고 기도하며 나를 반기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데요. 한 사람도 없는데 나와서 반기는 체 하는 것은 위선 아니에요?”

"왜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혜진 씨를 잘 아는데.”

"정말 저를 잘 아세요? 제가 학습 받기 전 목사님 만난 것 아세요?”

"아니 목사님을 만나 보셨어요?”

"그럼요 집에까지 찾아 갔지요.”

"무엇 때문예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럼요. 진지하게 상의할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저를 모르는 거예요. 당연하지요 모르시겠지요. 그래도 나는 말을 계속했어요. 제가 여기서 결혼식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어요.”

"뭐라 하셔요?”

"세례를 받았는가? 그럼 신랑감은 세례를 받았는가? 그래서 둘 다 받지 않았다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그럼 안 되지. 착실히 교회법을 따라 교회 생활하고 둘 다 세례를 받으면 주례를 해주지. 주일을 잘 지키고, 헌금도 잘하고, 말씀 따라 순종하는 생활을 해. 그리고 세례를 받으면 다시 찾아와 알겠지? 이러더라구요.”

"아니 신랑감도 없으면서 왜 그런 것을 물으러가?”

기수의 말에 혜진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학습을 받기 싫더라구요. 무슨 기득권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 말을 듣자 또 안 받는 것은 내게 무슨 속셈이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꺼림칙하더라구요.”

배 집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양육해 왔는데 또 한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해서였다. 교회는 누구를 위해 있는 곳인지 회의가 생겼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왜 교인을 구하는가? 회당에 유익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이 회당에 들어오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식하는 삶으로 마귀의 자식을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찾아 나서며 찾으면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한다. 잃은 영혼 하나를 구해 천국에 데려 왔기 때문이다. 그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선한 목자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인가, 바리새인인가?

배 집사는 이렇게 양육해 온 양 하나를 잃을까봐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가슴을 쥐어짜듯 말했다.

"혜진 씨. 어느 경우에도 하나님은 혜진 씨를 사랑한답니다. 하나님은 방황하는 혜진 씨를 결코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나도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힘내세요.”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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