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二次的 加工 (초기 작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2. 10:54

광장을 가로질러 마구 달리었다. 나는 누구에겐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쫓기고 있었다. 아니 나를 쫒고 있는 것은 나를 잡아 삼키려는 악마였다. 얼마나 오랜 기간을 달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탄성이 붙어 그냥 달리고 있다. 쫓던 마귀가 보이지 않는데도 그냥 달리고 있다. 지금은 우뚝 허니 선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 뿐 아니라 나는 첫째 우뚝 허니 설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황량하게 퇴폐해 버린 거리가 있을 뿐이다. 지붕들이 내려앉고 철근 콘크리트의 벽은 비스듬히 기울어지다가 멎어버린 채 우뚝 서 있다. 어제까지도 홍수처럼 밀려다니던 차와 전차와 사람들의 물결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는가? 길은 한없이 뻗어 있을 뿐이고 낯익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무엇인가 만나야 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그 무서운 마귀는 무엇 때문에 나를 잡으려 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나를 쫓기 시작한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다. 내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할 때도 그랬고 내가 결혼할 때도 나를 괴롭혔다. 그는 알게 모르게 그 때부터 나를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처녀 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심하게 아팠다. 자고 일어나면 손이 강직되어 손을 쥘 수가 없고 펼 수도 없었으며 무릎이 붓고 열이 나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다. 그러나 멍청하게 아스피린을 십 여알씩 먹어 통증을 이기곤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잠을 못 자서 날로 파리해 졌었다. 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한 번은 신유의 은사가 있는 부흥사가 가까운 교회에 왔었다. 그녀는 이웃 집사들의 권고로 그 부흥사가 자는 집까지 한 밤중에 갔지만 수면을 방해할까봐 새벽까지 문 앞에서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부흥사가 나오자말자 그에게 매달려 호소했다. 부흥사는 그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히고 안수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부흥사의 손이 가슴에 닿자 너무 뜨거워 질겁하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불같은 것이 온 몸을 휘젓고 돌아 대굴대굴 굴렀다. 집에 와서 역겨워 새까만 액체를 한 바가지나 토하고 24시간 잠만 잤는데 그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녀는 건강하게 되어 나에게 시집을 왔다. 그 당시에 방언이 터졌다는데 지금도 마음이 답답하면 교회에 가서 새벽까지 방언으로 기도하고 돌아온다. 그녀가 말없이 빠져나가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꿈속에서 악마에게 시달렸다. 정신없이 쫓기고 드디어 붙들려 목이 죄는 꿈을 꾸다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달리면서 지금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꿈이라면 목이 졸리더라도 빨리 깨고 싶다. 그러나 깨어나질 않는다. 다리가 아프다. 그러나 태엽을 감아 놓은 시계처럼 시간을 좇아 달리도록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태엽이 풀리기까지는 다리가 아프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다리가 아프다는 느낌은 이렇게 많이 달렸으니 필경 아플 것임에 틀림없다는 한갓 관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전차를 발견하고 거의 숨이 막힐 뜻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험하게 꾸겨져서 쓸모없는 형해(形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 전차 때문에 나는 실로 놀라운 것을 생각해 냈다. 어제는(아니 더 먼 옛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첫딸 혜숙의 두 돌이 되는 생일이었다. 생일 케이크에 켠 촛불을 끄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관절염으로 아팠던 아내에게 그렇게 예쁜 딸을 낳게 해 주신 것이 어찌 그렇게 감사한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마구 눈물이 쏟아졌었다. 내가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에는 짓궂게 의자 밑에 들어와서는 다리를 만지며 뭐라고 알 수도 없는 소리를 지르고 내가 엎디어 있을 때는 허리를 아무렇게나 넘나들고 내 펜을 빼앗고 좋아하던 혜숙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순간 아내가 어린애를 기르는데 너무 수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오늘은 영화라도 한 편 보러 갈까?”

“그렇게 하세요, 형부”

같이 살고 있던 처제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우리는 아내와 영화 구경을 하러 전차를 타고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기억은 참 엉뚱하고도 놀라운 것이다. 전차가 그 과거를 기억해 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제라는 시간적인 관념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의식의 세계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뒤죽박죽이 된 세계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 내가 어제부터 쫓기기 시작했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가?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달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환성을 올리었다. 눈에 익은 고층건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진 것 같기도 했다. 어제 나는 아내와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 건물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차를 한 잔씩 마셨던 것이다. 그리고 막 일어서려 할 때 내가 딛고 있던 발판이 -아니 지구가 사정없이 흔들리며 무서운 속도로 아득히 저 멀리 달려가 버리는 것을 느끼며 쓰러졌던 것이다. 그 때 아내는 어디로 가버리고 나만 남은 것일까? 그 때부터 악마는 나를 삼키려고 좇아온 것임에 틀림없다. 성령이 충만한 아내를 쫓았을 리가 없다. 그러다가 이제 나까지 놓친 것이다.

쏜살같이 고층 빌딩으로 곤두박질치며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이제 쫓기는 것이 아니고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제 그 다실로부터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아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2층으로 올라온 나는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득히 멀리 살아지는 복도가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처럼 넓은 2층이 있을 수 있는가?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나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복도만 뻗혀 있는 2층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달려도 위층으로 올라갈 계단도 없고 칸마다 막아진 방은 문도 없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식물의 세포 조직 속을 나는 작은 입자가 되어 유동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최근 트레이서로서의 방사선 동위원소의 용도는 생물학 및 의학 분야에서 급격히 증가하였다는 말을 라디오에서 들은 일이 생각났다. 예를 들면 비료에 이 방사성 동위원소를 섞어 쓰면 비료가 흡수되는 경로를 이 동위원소가 방출하는 방사선 때문에 하나하나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단편적인 생각 때문에 이를테면 내가 탄소 14와 같은 동위원소가 되어 이 아득한 먼 식물세포인 복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것은 현실일 수는 없다. 한 건물이 어떻게 이렇게 클 수가 있는가? 나는 계속 일련의 환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어린애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부서진 전차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다시 이 고층 건물을 생각나게 하고...이렇게 해서 결국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다. 나는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생각했다. 그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과거의 경험에 얽힌 여러 기억송이(群)들이 환상의 형태로 뇌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전차를 보면 그 중 한 기억 환상이 떠오르고 또 고층 건물을 보면 이에 얽힌 또 하나의 기억 환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다. 앞뒤가 뒤엉킨 그림들일 뿐이다. 나는 아무 연관도 없는 그런 기억 속의 그림들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종래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다. 그러나 내 의사에 반해서 달리고 있던 속도는 가속되고 나는 드디어 벽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거기서 그만 눈이 휘둥그레 졌다.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동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을 수가 있는가? 그곳은 다락방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창틀이나 스피커의 상자 위, 혹은 마루 바닥에까지 동물들이 우글거리고 이었다. 누린내 때문에 매스꺼워졌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발견했다는 기쁨 때문에 이 매스꺼운 냄새를 성목적 도착환자처럼 들이마셨다. 이내 현기증이 일더니 방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흔들렸다.

장난스럽게 주둥이가 앞으로 내굽은 너구리가 하얀 배를 내밀고 뒤뚱거리며 몇 걸음 걸어 나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는 헤매는 생활을 그만 두고 자기네 회원이 되어 달라고 점잖게 타이르듯이 말하였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너구리 씨의 손을 홱 뿌리쳤다.

“나는 네깐 녀석을 알고 있는 기억이 없으며 너희들의 회원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인간이며 사랑하는 내 아내와 딸을 찾으러 온 것뿐이다.”

너구리 씨는 하늘을 쳐다보고 빨간 혀를 보이며 웃었다.

“아직도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참 안 되었습니다. 인간은 벌써 지상에서 다 살아졌습니다. 하긴 짐승의 탈을 쓰고 자기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미친놈들도 있었지요.”

저쪽 구석에 앉은 소씨는 재미있다는 뜻 발을 꼬고 앉아 침을 흘리며 아작아작 껌을 씹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너구리 씨는 달래듯이 나를 끌고 가 의자에 앉히고 옆에 앉은 말씨와 원숭이 씨를 소개하며 지금 이분들에게도 자기네 회원이 되어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지상의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낙원 건설이 목적이라고 했다.

“인간도 성취하지 못한 평화를 당신들이 성추할 수 있단 말이요?”

“그렇소. 인간은 너무 교만해서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했소. 그들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부귀, 영화, 권세, 환락, ..... 자기 중심적인 인간은 이 중 하나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우리는 쉽습니다. 식욕과 성욕만 포기하면 됩니다.”

그는 자기 회원들을 보라고 말했다. 늑대와 양과 방울뱀과 어린 개구리들이 함께 놀고 있었다.

“아니요.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너구리 씨는 말했다.

“당신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고 깨어 있는 것이요. 꿈이 이렇게 질서정연한 것을 본 일이 있소? 꿈은 항당무개하고 시공이 뒤섞인 혼란한 것이요. 이렇게 전후 아귀가 잘 맞는 것은 당신이 깨어서 이차적 가공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당신이 프로이드의 이차적 가공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소?”

나는 너구리 씨의 지성 대문에 기절할 번 하였다.

나는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읽어본 일이 있다. 거기에 모오리가 체험했던 꿈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혁명 당시의 공포정치 시대를 살고 있는 꿈을 꾸었다. 소름끼치는 학살 장면을 목격했는데 끝내는 그도 법정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잡혀온 여러 불행한 영웅들에게 자기 해명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자기 해명을 해야 했다. 그의 기억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온갖 종류의 심문 끝에 그도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무수한 군중이 따라오는 가운데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단두대로 끌려갔는데 형리가 그를 널빤지에 묶어서 눕혔다. 그리고 칼이 목에 떨어졌다. 목이 몸뚱이에서 댕강 잘리자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침대 머리맡의 판자가 칼이 떨어졌던 바로 자기 목뼈에 떨어진 것을 알았다.

널빤지가 목에 떨어지는 순간에 그는 이렇게 많은 내용의 꿈을 꾼 것이다. 언제쯤 머리맡에 판자가 떨어질 줄을 미리 알고 그 시간을 맞춰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판자가 떨어지는 순간에 이 모든 꿈을 꾼 것일까?

그는 기억의 덩어리들을 환상의 형태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판자가 떨어질 때 잡다한 기억의 덩어리들을 뒤엉킨 환상으로 한꺼번에 보았는데 깨어난 뒤 조리에 맞게 이들을 꾀 맞추는 이차적 가공을 했다는 것이다.

이 너구리 씨는 인간보다 결코 못지않은 두뇌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사실은 동물 가죽을 쓴 인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의 추리는 합리적이다. 나는 꿈에서 깬 상태가 분명하디고 생각했다.

“정말 사람이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 전에 결코 그럴 수기 없습니다.”

나는 진지해져서 너구리 씨에게 물었다. 진실한 내 아내와 흠 없는 내 딸이 그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재림의 날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재림을 하셔야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는 것인데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지 않으면 천당과 지옥의 심판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지요. 육체로 부활하면 천당에서 부모도 만나볼 수 있고 목사님도, 구역장도, 장로와 권사도 만나 볼 수 있으며 악한 자들은 지옥의 유황불 속에 떨어져 밑에 있는 못에 찢기고 구더기가 파먹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예수님 재림 전에 죽으면 그런 것은 볼 수 없고 재림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아요?”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다 살아졌다면 칠년 대 환란과 휴거가 시작된 것이요. 지금 성도들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7년 동안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요.”

주님께서 아내와 딸을 하늘 위로 데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경에는 두 사람이 밭에 있을 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종말의 때는 도둑 같이 임한다고 했는데 예고 없이 와서 아내와 딸은 데려가고 나만 남겨진 것이다. 그런데 왜 종말의 징조가 없었는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왔던가? 지진과 기근이 있고 전쟁이 있었던가? 해가 어두워지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나팔 소리가 들렸는가? 그런 모든 징조가 있었는데 나만 지금까지 징조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말인가? 휴거가 되었으면 지상에는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시작되었어야 할 터인데 왜 이렇게 조용한가?

“성경에 휴거란 말이 어디 있습니까? 또 구름 속에 올라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한다는 말이 어디 써 있습니까?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최소의 입자, 렙톤, 쿼크 등을 찾아내고 이들이 가속될 때의 운동을 관찰하더니 결국 이 미시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우주에서 지구가 생성된 빅벵 모델을 찾아낸 것이요. 그러다가 핵분열, 핵융합의 불장난을 잘 못해서 인류가 다 멸망한 거요.”

나는 인간이 다 멸망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휴거가 되고 짐승의 가죽을 쓴 인간들만 우글거리고 지상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아비규환을 하는 대환란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말고 당신들이 살고 있는 다른 곳도 있겠지요?”

“물론 있습니다. 신을 믿는 멍청한 집단들도 있지요.”

너구리 씨는 나를 창도 없는 벽으로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거기에는 한 고양이가 많은 쥐들을 앉혀 놓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하는 짓들입니까?”

“구원을 얻으라고 설교하는 것이지요.”

“구원이요? 구원은 인간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요 불의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 것인데 도대체 쥐들이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까?”

“불행과 기근과 전쟁으로부터의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이들은 죄 때문에 신과 원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속자인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 보시오. 그들은 강대상에 십자가가 없지 않습니까?”

너구리 씨가 말했다. 그들의 종교는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자기는 인간 사회에서도 십자가는 달아 놓았지만 십자가의 도는 전하지 않고 복 받고 잘 사는 것만 전하는 곳을 많이 보았다고 말했다.

“짐승들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요. 당신들은 내세를 믿습니까?”

“죽어봐야 아는 내세를 누가 믿습니까? 내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혹 선하게 살면 죽어서 인간이 된다는 내세관을 가지고 있으면 그 쥐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또 내세는 없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인간들처럼 자기는 죄인인데 십자가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고 궁색하게 해석하며 살 필요 없지 않습니까?”

나는 너구리 씨를 쳐다보았다. 이것은 분명 짐승 가죽을 입은 악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을 가리는 자들의 소행이다. 그러나 나는 물었다.

“천국도 지옥도, 구원도 없는 이 회당에 왜 쥐들이 이렇게 공손하게 앉아 있습니까?”

“여기서는 고양이가 교주지요. 순종하지 않은 신도들에겐 가혹한 벌이 내려집니다. 그들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지요. 보십시오. 설교단위에서 노란 눈에 불을 켜고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모여드는 것입니까?”

“쥐들에게는 어딘가에 소속해서 살고 싶은 속성이 있으며, 흩어져 있으면 성욕과 식욕 때문에 또 서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모여 있으면 싸울 때도 엄한 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싸우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고양이와의 면담을 주선했다. 나는 아내가 방언기도를 떠난 뒤에 자신에게 점점 몰려들던 불안감과 악마에게 쫓기던 때의 생각이 다시 엄습해 왔다. 고양이는 강대상 뒷면의 큰 사무실의 회장 자리에 위엄을 갖추고 앉았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쥐들을 모았습니까?”

“내가 모은 것이 아니고 그들이 따라 온 것뿐입니다. 그들은 다 내 보호가 필요하오.”

“순종하지 않으면 어떤 벌을 내립니까?”

“간단합니다. 이곳에 조용히 불러 데리고 놀리다가 잡아먹어버립니다.”

“그렇게 가혹한 벌을. 이건 독제 집단이 아닙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통제해 줄 더 큰 힘을 요구합니다.”

“그들도 기도를 합니까?”

나는 신 없는 종교집단을 생각하며 이렇게 물었다.

“인간들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요. 하나님과 자기의 통로를 열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섭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릅니다. 내가 살아 있지 않아요. 나에게 기도하면 됩니다.”

“헌금, 아니 무슨 제물도 바칩니까?”

“나는 제물에 궁색한 자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들이 다 제물인데 무었을 바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가슴이 저리고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만일 아내가 있었으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쳤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미지근한 신앙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생각 같아서는 쥐들에게 쫓아가서 이런 교주를 섬기지 말고 <물러가라!>고 데모를 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무서워서 앞장 설 쥐들이 없겠지만. 내가 얼굴을 찌푸리고 쭈그려 앉아 있자 너구리 씨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빨리 이 악몽에서 깨고 싶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대환란이 일어나서 적그리스도가 도처에서 대학살을 감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48개월을 잘 싸워 이기는 성도는 다시 구름 위로 끌어 올릴 것이요 7년 환란이 끝나면 미리 죽은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이 지상으로 재림 하실 것이다. 환란 때 지상에 남아 휴거하지 못하고 순교한 성도들도 예수님의 재림 시 무덤에서 부활하여 천년 통치에 참여할 것이다. 나도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서는 여기서 순교를 해야 하는데 왜 아마겟돈의 전쟁은 보이지 않은가? 그 때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승천했던 그 모습대로 또 내려오실 것이다.

“당신은 세뇌가 좀 더 되어야 이 세상에 적응해서 살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너구리 씨는 나를 다른 방으로 인도 했다. 그곳은 이 지상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의 연구실이라고 했다. 나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이 아니고 대환란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거기서 나는 순교를 해야 한다. 그런데 너구리 씨는 이 지상에는 그런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이제 인간과 함께 살아져 버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리 불경스러운 말을 합니까? 우주를 창조하던 태초에 계셨고 알파요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이 우주가 멸망되기 전에 살아진다는 말을 어찌 감히 할 수가 있습니까?”

“인간이 없는 우주에는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 알겠습니까?”

너구리 씨는 짜증이 나서 말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희생하여 구원코자 하셨는데 인간이 이 우주에서 살아졌다면 하나님이 존재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동물들을 위해 아직도 무슨 역할을 하려고 남아 있을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멸망과 상관없이 있던 그 자리에 그냥 계십니다. 영원까지 계신다구요.”

“지구가 싸늘하게 식어 생물이 다 죽어 없어진 뒤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구요? 자기 형상을 닮은 인간도 없고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안타까워 할 필요도 없게 되었는데 광막한 우주에서 홀로 뭘 하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이 짐승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오직 안타까울 뿐이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성경 말이 실감이 났다. 이들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 때 마귀와 함께 결박되어 천년간 무저갱에 던져지는 수밖에 없다.

너구리가 인도한 방은 자그마한 방이었다. 전기불이 눈부신 방 중앙에는 이상한 기계장치들이 놓여 있고 한 구석엔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 겨자씨 같은 알맹이들이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것이 보였다. 6개의 쿼크, 6개의 렙톤(원자의 입자)들을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관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숭이 씨, 이분에게 우주는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이야기 좀 해 주시오.”

원숭이 씨는 이런 질문을 듣자 너무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대상을 만난 것이다.

“우리 조사에 의하면 100억년 아니면 200억 년쯤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틀려도 정도가 있어야지 어떻게 100억년이나 차이가 있습니까?”

“이 광막한 우주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는 그 정도의 차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주는 계속 팽창해 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언젠가는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우주는 결국 질량이 무한대가 되는 작은 한 점이었었는데 갑자기 이것이 폭발해서 현재의 우주가 만들어졌습니다. 200억년이 넘지 않은 이야기지요.”

“그 때 폭발해서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덩어리들이 과학적으로 계산해도 한 치의 차이도 없는 이 질서 정연한 항성, 위성들 자리에 들어가 앉도록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어떤 인간들은 지구의 역사가 만 년도 안 된다는데 어림도 없는 소립니다. 하나님이 그 동안 뭘 하고 계시다가 뒤늦게 낮과 밤을 만들고, 하늘과 땅을 가르고 채소와 과목을 만든 뒤 해와 달을 만듭니까?”

나는 얼굴에 막 열이 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왜 기다립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00억이니 200억이니 하는 숫자는 뜻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의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운 하나님뿐이며 시간은 영원 전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해온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식어서 달처럼 되고 인간이 멸종된 호에도 하나님은 이 우주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원숭이 씨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주 공간에 천당과 지옥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 한 하나님은 인간들을 그곳에 불러놓고 심판하고 다스리며 계시지 않겠어요?”

너구리 씨가 핀잔 섞인 어조로 말했다.

“당신들이 악어를 낚을 수 있습니까? 그 혀를 묶고 갈고리로 턱을 꿸 수 있습니까? 그것을 애완동물로 만들어 애들과 함께 놀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든 악어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의 지혜에 도전하려 합니까? 우주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이를 지으신 이에게 물어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을 왜 추측하려고 합니까? 창조주의 계시를 구하십시오.”

나는 안타까워서 소리쳤다. 원숭이 씨는 머리가 좀 돈 것이 아니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 때 전화의 벨이 울리고 원숭이 씨는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이 때다 하고 문을 향해 돌진했다. 머리만 깨어지게 아플 뿐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자 너구리 씨는 은행 총재인 말 씨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고 나를 이끌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암호가 있는지 문고리가 없는 벽도 잘 통과해 나갔다.

식당에는 종업원이 없었다. 장방형 다갈색 얼굴을 하고 있는 말 씨는 입을 크게 절리고 미소하며 우리를 환영하였다. 그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더니 일어서서 자동 인출기 같은 곳으로 가서 카드를 넣고 조작을 하고 돌아 와서 번호가 붙은 테이블에 앉았다. 이내 기계가 음식을 날라 왔다. 그는 이렇게 기계가 인력을 대신한다고 말하며 나에게 술을 권하였다. 그러면서 혹 내가 은행에 취직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번 당나귀 씨가 폐를 앓아 해고시켰기 때문에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폐를 앓는다고 해고한다면 그런 신원보장이 안되는 직장에 누가 들어가겠느냐고 역겨움을 느끼면 말하였다. 말 씨는 자기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능력 발휘를 할 수 없는 행원은 해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어느 직장이나 각자의 능력이 회사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계산해서 행원을 쓰는 것인데 그 기능을 못하게 될 때는 해고해야 한다. 해고된 자는 아직도 자기를 찾고 있는 작장이 있으면 찾아가면 된다. 아무 곳에서도 자기를 받아주지 않으면 무능력자 수용소에 들어가면 된다. 거기서 다시 직업훈련을 받지만 아무 곳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으면 그곳에 남아서 의식을 해결해야 한다. 밥은 공으로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이건 동물의 가죽을 쓰고 있을 뿐 개성을 잃어버리고 기계화된 인간 사회라고 나는 생각했다. 또 한 가지 길이 있다고 말 씨는 말했다. 무능력자 수용소의 규칙을 싫어하면 자유롭게 노변에서 어느 곳이나 편한 곳을 찾아 자고 구걸하며 사는 일인데 필경은 아사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발광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그 고층다방에 있을 때 휴거가 일어나 아내와 딸은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갔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함 같이 내가 버려둠을 당한 것이다. 아내와 혜숙은 지상에 두고 온 나 때문에 얼마나 안타까워 할 것인가? 나는 버려짐을 당했지만 42개월간 이 환난을 이기고 다시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고 그들을 만나야 한다. 이 짐승 가죽을 쓴 모든 간악한 인간들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나는 세상과 짝 짓지 않으리라.

말 씨는 내 얼굴의 험악한 표정을 보더니 꼭 자기 은행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능력자 수용소를 택하거나 자유니 사랑이니 하는 추상적인 용어의 유희에 빠져서 아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듣자 마구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혜숙의 생일 때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던 감정으로 되돌아갔다. 그 때 왜 그렇게 눈물이 나왔는가? 하나님께서 하잘 것 없는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이 눈물겨웠던 것이다. 죄인인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시고 구원해 주었다는 감격이 그 때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그런 깨달음이 왔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세상과 짝하지 않고 성화의 길을 걷도록 얼마나 애타게 말씀하셨나 하는 것도 새삼스럽게 기억했다. 그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며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시며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지키게 해주겠다고 얼마나 간절히 권유했는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등불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처럼 졸고 있다가 휴거를 당하지 못하고 아내와 헤어지고 만 것이다.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말 씨는 내 표정의 변화를 보고 물었다.

“적어도 인간인 내가 어떻게 여러분 속에 끼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마에 666이라는 표를 붙이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는 바로 여기서 떠나야 합니다.”

이렇게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말 씨가 웃으며 내 다리를 보라고 말했다. 나는 내 다리를 처음으로 눈여겨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개의 다리였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충성스러웠던 개입니다. 당신이 인간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나는 개의 가죽을 입고 지금까지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성별해 준 인간이 짐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다시 발광한 상태가 되어 날뛰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 씨아 너구리 씨가 내가 미친 것으로 알고 나를 들어 건물 밖으로 동댕이쳤다. 나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거기에는 더 많은 짐승들이 득실거리며 한 표범과 같은 짐승에게 경배하고 있었다. 그 큰 짐승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인데 뿔마다 면류관이 씌워 있었다. 그리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아무도 그에 대항하지 못하였다. 용이 그에게 그런 위엄을 준 것이었다. 그는 마흔 두 달 동안 그들을 다스릴 권한을 용으로부터 받았다고 우렁차게 말했는데 그 머리의 하나가 상하여 죽을 것 같았다. 이 때 또 다른 짐승 하나가 나타났는데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었다. 그는 양처럼 순해 보였으나 실상은 더 악독하며 표범과 같은 짐승의 머리를 낫게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모두 경배케 하며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리는 무서운 이적을 행하기도 했다. 새로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게 하고 이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는 처형하며 세상을 두루 다니며 이마에 666이라는 표를 주고 다녔다. 그에게 순종하지 아니한 짐승이 없었다.

그 양 같은 짐승은 나에게도 땅에 엎디어 우상을 섬기라고 호령하였다. 그 때 멀리 아련하게 아내와 혜숙의 두 모습이 하얀 세마포를 입고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용기가 치솟아 짐승을 향해 소리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나라.”

그러자 그 짐승은 내 목덜미를 잡아 내던졌다. 온 세계가 암흑으로 변하더니 뭉클한 것이 내 온 몸을 휘감고 덮쳐누르는 것을 알았다. 낙지들과 문어들과 거만한 거위들이었다. 거위는 내 몸을 사정없이 쪼아 뜯어 먹었으며 낙지는 긴 발로 나에게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내 내 피도 살도 육이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홀가분해 지더니 영혼만 남아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도 휴거를 당하는 것일까? 내 혼은 어떤 육체를 입게 될까? 아내와 혜경이 나를 알아 볼 수 있을까? 영원히 사망이 없으며, 질병과 고통이 없으며, 밤도 없고 햇빛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영광만이 있는 곳에서 신령한 몸을 입을 때 나는 아내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내도 없고 남편도 없으며 천사처럼 시집도 장가도 안 가는 천국에서 서로 알아보면 또 뭘 하겠는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소임을 다 하고 갔으면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못 쓰면 아내는 분명 쓰고 있을 것이다.

   ( 1961년 7월 사상계 96호에 게재한 <이차적 공작>을 2005년에 개작)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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