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2. 26. 11:18

2월의 말씀 묵상

 

왕이 행차할 때는 맨 앞에 길을 내는 길잡이인 갈도(喝道)가 소리 높이 외친다. “물렀거라.” 그러면 모든 행인이 길 옆으로 비켜서서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린다. 호기심을 가지고 무슨 화려한 행차가 다가오는지 기다린다. 어가를 탄 위풍당당한 왕과 깃발, 창검, 의장행렬 등으로 과연 자기네를 다스리시는 왕의 행차라는 것을 확인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랑하던 유대민족의 구세주인 예수가 나타날 때도 이렇게 그 길을 인도하는 갈도가 있었다. 세례 요한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근교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길도 없고 인적도 드믄 광야에서 외치고 있었다. 왜 행인도 없는 곳에서 누구더러 노변에 엎드리라고 외친 것일까? 그는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내는 나실인※이었다. 그는 엘리야 선지가 마지막 기적을 행하고 이사야가 보는 앞에서 승 천했던 요단강 하류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선민이며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았다고 교만을 떠는 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중하며 회개하고 세례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그런 모습이로 광야에서 외쳤던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그도 사람들이 많은 예루살렘 어귀에서 구세주 예수님이 오신다고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한더러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그렇게 오시고 그렇게 인식되고 싶으셨던 것이다. 구세주인 예수는 힘으로 다스리는 세상을 부인하고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켜 거듭난 삶을 사는 새로운 백성들의 왕으로 계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물렀거라.”하고 길잡이 요한이 외친 뒤의 구세주의 행렬은 나귀새끼 위에 겉옷을 깔고 나타난 초라한 예수였다. 어떤 유대인이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할 구세주로 믿었겠는가? 그는 자기 백성에게 고소를 받아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성소의 휘장은 위로부터 둘로 찢어지고 예수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숨을 거둘 때 이를 본 백부장이 이 사람이야말로 의인이었다고 말하고 구경하던 무리가 다 가슴을 치고 돌아갔지만 그를 구세주로 인정한 유대인은 거의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살리셨지만 부활의 사실마저 부인하였다.

 

지금 우리는 매일 너무 바쁘다. 육체의 본능이 주는 쾌락과 눈으로 들어오는 세상의 환락과 남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의 마력에 우리 영혼을 팔아버리고 안이한 삶을 즐기고 있다.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만지고 싶고, 놀고 싶은 장난감이 너무 많다. 높은 자리를 탐하여 바쁘게 사는 것에 흥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누가 따분한 외침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보고, 광야를 찾아가 자신과 독대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네가 참 생명을 얻는 길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죄를 회개하고 거듭나서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들 듣기나 하겠는가? 광야의 외치는 소리에 중독이 되어 불감증이 생겨버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지금도 요한에게 광야에서 외치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이고 예수님을 만날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특별한 봉사를 목적으로 구별되고 스스로 과한 금욕을 자원하여 자신을 봉헌하는 이스라엘인. 독주를 멀리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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