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050401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50세 미국 흑인여성 오프라 윈프리쇼=최고의토크쇼]/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4. 19:19

050401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난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관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 4:1-8)

 

미국인들이 물었습니다.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할 때 비어 있는 그 옆자리에 초청해서 함께 타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그랬더니 압도적으로 1위를 한 사람은 오프라 윈프리(Ophra Winfry)라고 하는 올해 나이 쉰 살의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쇼는 최고의 토크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약 2000만 명이 시청하고, 전 세계 110여 개 나라에서 그 프로를 방영합니다. 한 해 광고 수익이 2 6000$에 달합니다. 대단한 것이죠. 그래서 그 코너 중에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 소개되었다 그러면 이 작가가 하루 아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죠.

얼마 전에는 한 자동차 회사에서 홍보를 위해서 특집 쇼를 하면서 오늘 여러분, 방청객으로 오신 열한 분에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새로 나온 그 신형 자동차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방청객에서 환성이 터졌습니다. 뽑았어요, 11명을 뽑아가지고 열쇠를 주니까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 호들갑 떠는 것 아시죠? 난리가 났어요. 그리고는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한 분을 더 뽑겠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다 자그마한 종이상자를 받으셨는데 거기에 열어보시면 누군가 자동차 키 하나가 더 있을 것입니다. 떨리는 가슴으로 열었는데 깜짝 놀라게도 그날 온 모든 사람에게 다 자동차 키가 주어진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 주차장으로 가봅시다. 거기에서 여자들이 예쁜 차들 앞에 서가지고 키를 흔들면서 만세를 부르는 그런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90억이 들었대요. 그런데도 홍보효과는 엄청난 것이죠. 차가 없는 여인들 또는 고물차를 10 20년 끌고 다녔던 사람들을 싹 조사해서 그날 방청객으로 초청해서 그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연 것이죠.

그런데 그 주인공인 오프라 윈프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났어요. 너무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또 뚱뚱한 사람이에요. 젊은 시절에 마약도 했어요. 어린 시절에는 성폭행도 당했어요. 그리고 14살에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았어요. 그리고 그 아이가 죽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어요. 그의 진정한 매력, 즉 사람들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누군가 당신은 흑인이요, 사생아요, 가난에 빠져있고 마약을 했고…” 이 이야기를 하면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거요?” 호기심으로 덤벼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님이십니다. 나는 이렇게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기에 때때로 침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Amazing Grace를 몇 번이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세속적인 토크쇼를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오늘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던져주어 그들이 그곳에서 새롭게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인생의 꿈입니다.

시카고를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시카고는 미시간 호수에 도시가 있고 그 끝자락에 그 도시와 해안을 내려다보는 어마어마한 최고급 아파트가 있어요. 가장 부자들만 들어가는 아파트인데 그 아파트의 57층 전체를 오프라 윈프리 혼자서 다 씁니다. 재벌이에요. 어떤 사람이 물어요. “당신이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발을 땅에 붙이고 삽니다. 헛된 꿈으로 공중에 떠다니는 게 아니라 현실에 발붙이고 삽니다. 다만, 구두만 좀 예쁜 것으로 갈아 신었을 뿐입니다.” 중심이 있는 거죠.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내 인생의 여정에 그분과 함께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거죠. 그리고 내가 그 분을 초청하고 그 분과 함께 모든 것을 의논하며 살아가겠다. 그것을 성경적으로 말하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탄생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임마누엘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2 18절에 그가 몸소 사람으로서 겪어야 할 모든 시험을 겪으셨기에 이제 시험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저 그를 막연하게 하나님의 아들, 이렇게만 이해하지 마세요.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와서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인생을 사셨다고 하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동정녀 탄생은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땐 거 사생아로 태어난 주제에 그럴 듯 하게 신화로 꾸민 것 아니냐.’ 그렇지 않겠습니까? ‘목수의 아들’. 뼈저린 가난 속에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그의 외모도 여러분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장발의 서양인의 그 얼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 전에 발굴된 당시 사람의 얼굴이 있어요. 물론 그건 학자들의 추정이지만.. 이게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살던 예수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라고 해서 복원한 얼굴을 보니 여기 앉아 계신 분 중에 제일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거친 분의 얼굴과 똑같습니다. 완전히 농부의 얼굴이에요.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 외모에 볼품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합니다. 그는 기성질서체제에 이단아였어요. 요주의 인물이었어요. 그는 정치범이었어요. 십자가에 죽으려고 했어요. 자기를 열심히 따라다닌 제자들조차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어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십자가에 죽어야 했어요. 그래야 했기에 겟세마네에 그 마지막 날 밤 기분은 너무 처절했어요.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과 통곡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십자가에서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시편 22 1절 말씀을 인용한 겁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마지막 외침을 대신해서 그 고통을 쏟아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 속에서 사셨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우리의 구주가 디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뭡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기도였다.

때로는 광야에서 40일간 3년 공생애를 놓고 작정하며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일을 하실 때 여러분의 머리로 일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앞에 내놓고 깊이 기도하고 생각하세요. 사업을 하실 때 덜렁덜렁 하지 마시고요. 깊이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완벽한 일일지라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시지 아니 하시면 그건 헛수고입니다. 겠세마네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의 핵심은 날마다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드리는 일상적인 기도입니다. 기도하시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 말씀을 내가 저들에게 전하였나이다.’ 오늘을 살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주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합니다만 내 기도를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신다. 언제라도 어디서나 항상 들으신다는 이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하고 확신이 없는 것하고 다르죠. IMF이후 얼마나 경제가 어렵습니까? 멀쩡히 엄마 아빠가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부가 헤어져 일해야 하고 견디다 못해 아이를 보육원에 맡겨놓고.. 그 어떻게 아이들을 두고 돌아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아빠가 돈 벌어가지고 올게. 세 밤 자고 올게. 석 달 후에 올게.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남매나 형제가 다른 애들과 놀다가 얻어맞고 싸우고 하면서 아빠가 없으니까 둘이서 형아하고 부둥켜안고 울며 서로를 달랩니다. 아빠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기 때문에. 혹 우리의 신앙이 이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분명한 확신과 그 응답이 오늘 주어지고 있건만 내게는 불러도 응답없고 돌아오지 않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까? 그저 형제자매가 부둥켜안고 눈물 뿌리면서 서로 달래주듯이 그저 두 사람 사이에서 부부 사이에서 그저 우리끼리 서로 위로하면서 그저 달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 함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분이 예수 믿기 전에 방황할 때 교회를 지나가다가 교회에 걸어 놓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씌어진 그 글만 보고도 마음이 뭉클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안심이 되는지! 주님이 우리 각자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란 예수님같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기도할까요? 그래서 전통적으로 교회는 기도가 우리의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도하기에 힘썼고 그 기도를 위해서 시편은 기도의 교과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찬송을 불렀습니다만 그 유명한 ‘Amazing Grace’조차도 그것이 처음 작사되고 노래로 불리어질 때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비판받은 이유가 그것은 시편에 있는 가사가 아니다. 즉 그만큼 그때까지는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도 함부로 짓지 말고 시편에 있는 가사에 곡을 붙여서 부르도록 한 것입니다. 시편이 바로 기도의 내용이요. 기도의 방법이요. 기도의 모델이요. 교과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하는 것이 너무나 잘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허사와 궤휼을 버리라. 그리고 경건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라. 오래 전에 제가 한 번 과로를 해서 몸살이 난적이 있습니다. 집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얼마나 몸이 떨리던지 그런데 너무 늦은 밤에 갔기 때문에 신속하게 돕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기다려야했는지! 그때야 비로소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정말로 몸이 떨리도록 알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해야만 알겠습니까? 내 인생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분노하며 죄 짓지 말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함부로 말을 쏟아놓지 말고 입 다물고 잠잠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보셨을 거 아닙니까? 누가 옳은지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리라.

세 번째는 이것저것 복을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진정 너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리라.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사모하라.

한 정신과 의사 중년남자의 고백입니다. 그분이 정신과 의사로 나름대로 부와 명성을 쌓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요. 또 교회 안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요. 모범적인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돌이켜 볼 때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너무 예민해요. 너무 다른 사람의 칭찬을 구해요. 뭔가 섭섭한 이야기를 듣거나 뭔가 잘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잠을 못 이루어요. 스스로를 들볶는 것이죠. 두 번째는 특별히 가족이나 자기 부모형제를 향해 뭔가 알 수 없는 분노가 있어요. 자기가 생각하는 원칙과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순식간에 분노합니다. 집에 아이들이 떱니다. 움츠러듭니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순간 터져 나오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내가 소위 다른 사람을 진단하고 고친다는 정신과 의산데 내가 나를 이렇게 모를 수 있느냐.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깊은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고 임상 실험을 했습니다만 솔직히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면 내가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나의 이 불안과 분노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하나님 이제 말해주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이 의사입니다. 마치 의사 앞에 앉은 환자같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진단과 처방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 조용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에게 깊은 열등감이 있어요. 이 사람은 시골에서 자랐는데 1등으로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일류 중, 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시골에서 1등만 하다가 첫 시험에 40등을 했어요. 자기가 착각을 했어요. 전국에 1등만 하는 애들을 모아 놓으니까.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 없어서 4자를 긁어서 1자로 만들었어요. 예전에는 공부 잘한다고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이 학교에서는 주목 받는 대상이 못 되는 시골 아이예요. 가난해요. 부모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이들에게 내놓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더더욱 전쟁에 상처를 입고 상이용사가 된 아버지,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가족을 들볶는 그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이 모든 것이 총체적 열등감이 되어져 그 안에 깊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러한 기억이 그대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로 바뀌어 버렸어요. 병원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고 선하신 분이고 좋으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심리적으로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요.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입니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말하지 못합니다. 항상 안전거리를 유지합니다. 하나님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의 깊은 무의식 속에 과연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말하고 있는가? 그게 신앙의 색깔을 결정합니다.

그는 이제 자기의 문제의 뿌리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공생애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희 집의 가난과 그 못난 부모 때문에 눈물 흘리고 힘들어하느냐? 나야말로 우리 아버지가 너무나 가난해서 내가 태어날 때는 방 한 칸 마련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구유간에 태어나야 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가지고 있던 아픔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훌쩍 넘어서는 게 아니에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과 아픔을 모두 다 그 몸으로 그 마음으로 겪은 것이죠. 네가 네 외모를 가지고 고민했느냐? 나야말로 남들에게 내놓을 흠모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자라날 때 목수의 아들이었고 가난했고 마리아의 아들 사생아라는 숨겨진 날카로운 조롱이 있는 것이죠. 그런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나는 어린양 같이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대항하지 아니하고 맞아야 하는 그런 수모를 겪었다. 더더욱 너는 사람들에게 오해 받고 잘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 그것 때문에 분노하느냐? 나야말로 십자가에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다. 너는 행실을 바로 하면 다른 사람이 너를 좋아하고 칭찬할 것 같으냐? 그게 아니다. 여러분 좋은 소리 일곱 마디 듣고 싫은 소리 세 마디 들으면 황금분할입니다. 뭘 그렇게 훌륭하다는 소리만 들으려고 합니까? 사실 들추어 보면 욕먹을 짓만 했는데.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운전을 하다가 딱지를 떼게 되었죠. 한번은 코너를 도는데 불이 바뀌었어요. 바뀌는 순간에 따라갔어요. 그래서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때 얼른 겸손하게 운전 면허증을 꺼냅니다. 경찰이 다가오면 아 수고 많으십니다. 잘못했습니다.”하고 보여줍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쓱 보더니 가세요.”합니다. 억울할 때도 있어요. 이번엔 진짜 억울해요. 그런데 그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오늘은 억울하지만 예전에 사람이 안 볼 때 부지기수로 한 내 죄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말 안하고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좋은 얘기만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도 다 굴레입니다. 생긴 대로 사세요. 다만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할 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찌개에요. 아무리 그렇다고 매일 먹으면 물리죠. 다른 것도 두루두루 먹는 것 아니겠어요. 어떻게 꼭 좋은 것만 받으려고 하세요. 욕심입니다. 거짓이고 교만입니다. 내가 저 사람한테 원통한 소리 들었다. 억울하고 분해하죠. 기도를 해보세요.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내가 너를 잘 아노라. 네가 숨어서 한 그 악과 모든 죄를 내가 다 아노라. 그러니 아무 소리 말아라. 감사하죠. 거기에 하나님 은혜가 담긴 것이죠.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 얼굴이 나에게 무서움과 엄격함과 두려움의 얼굴이 아니라 정말 나를 아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나를 싸안으시는 그 놀라운 은총을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는 형식과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갈 때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디선가부터 기차 안이 시끄러워요. 충북 영동인가를 지나가면서 어찌나 시끄러운지 그제야 경상도 들어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가 클 수도 있어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입니다. 뭘 더 달라하고 더 받아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므로 평강이 있고 삶의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기도한다 하면서도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한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나의 욕심을 부르짖어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 이토록 부족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깊이 기도하다가 정말 하나님이 내 안에 말씀하시는 정직한 판결을 들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