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지붕 위에서 외쳐라[Fred Effective 프레드 효과, 에스더 이펙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4. 19:12

070520 지붕 위에서 외쳐라 (10:24-33)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로뎅의 말입니다. ‘현대인의 최대 결점은 자기 직업에 대해 애착심이 없다는 것이다. 직업을 못견딜 고역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직업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 안에 내 삶의 가치가 있고, 환희가 있고 행복이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업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믿음 그리고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열정, 또 새롭게 뭔가를 창업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죠.

이미 몇 년 전에 미국을 강타했던 <Fred Effective (프레드 효과)>라고 하는 책이 있죠. 저 덴버시에 우체부 Fred라는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한 평생 낡은 우체부 옷과 모자와 가방뿐이건만, 그것을 가지고 우편물 하나 하나를 배달하는데도 세심하게 고객들의 마음을 살피므로 그 사람의 성실한 모습이 책을 통해서 전 세계 소개되었죠. 그래서 Fred 상을 만들어서 누가 가장 친절한 사람인가? 그리고 친절한 사람을 일컬어서 ! 당신도 Fred시군요.”라고 말할 만큼. 여러분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 전에 미국의 명문 Thomas Jefferson 과학 고등학교에서 12학년 한인학생 2명이 퇴학을 당했습니다. 교사의 컴퓨터를 해캥했어요. 그래서 성적을 조작했어요. 그것이 발각되어서 짤렸어요. 그들은 형사 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다라고 합니다. 성적을 어떻게 조작했느냐하면 A를 받았는데 그것을 A+로 고쳤대요. 그래서 미국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이 학교에서는 B+를 받아도 좋은 성적인데 왜 그랬을까?  그래서 미국 학생들이 우스개로 이렇게 말한대요. ‘B+를 코리언 F’라고 부른데요. 한국 학생들은 B+ F로 취급한다는 거죠. 비꼬는 거죠. 그 학생들 말이 최고가 되기를 기대하는 부모님께 맞추기 위해서 그랬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어요. 그 아들이 졸업하는 날 어머님께 졸업장을 넘겨주면서 이제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내가 했으니, 오늘부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 그날 독립 선언하고 가출했대요. 얼마나 비극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되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교회학교 선생님, 주일 학교 선생님 분들은 참 귀한 분들이에요. 저 자신이 어려서 교회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선생님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은 없어요. 그저 칭찬하고 반갑게 맞아주고,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다 그랬을 겁니다.

여러분! 찬송가 411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이 찬송은요. 한국 교회 역사를 보면 최초로 불려졌던 찬송이에요. 우리가 이 찬송을 부르지만 이건 120년 전, 130년 전 처음으로 예수 믿은 분들이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찬송을 부른거에요. 원래 이 출발은 미국 남북전쟁 때 그 혼란한 와중에 불려졌던 찬송이에요. 그 당시 안나와느라고 하는 사람의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 가운데 나오는 한 대목이에요. 주일학교 선생님, 린덴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병으로 죽어가는 핵스라고 하는 어린 소년이 있어요. 그 소년이 부모를 잃고 고생하다가 선생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을 맛보면서 살다가 끝내는 병으로 죽게돼요. 그 마지막 자리에서 선생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나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 주세요.” 그때 선생님이 바로 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 소설이 전쟁 이후에 마음이 상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큰 위로를 주어서 여기에 곡을 부쳐서 찬송가가 되었고, 미국 사람들이 마음을 적시더니 그 다음에는 중국으로 건너와서 많은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더니, 드디어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 한국교회사 초기에 불려졌을 뿐만 아니라 오늘까지도 우리가 가장 즐겨 부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찬송이 되었죠. 오늘 숨을 거두는 어린아이에게 들려주어야 할 내용은 예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Yes, Jesus loves you) 성경에 써 있네 (The bible tells me so)” 하물며 죽는 자에게도 들려 줘야 할 마지막 이름이 예수라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말할 것도 없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너무 좋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흑백 얼굴사진 아시지 않습니까?  간혹 심방을 가보면 집에 그걸 걸어 놓으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거기에 글이 있죠? ‘사는 그리스도는 이 집의 주인이시다. 식사 때 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다. 말없이 우리의 대화를 들으시는 이시다.’ 그 고백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주님은 말없이 늘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거죠. 근데 오늘 성경을 보면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명령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둘씩 둘씩 묶어 가지고 전도 보내는 거에요. 아직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제자들에게 가서 말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라. 그리고 너희가 내게 받은 것을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그러면서 이런 약속을 해주셨어요. “너희가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누구네 집에 들어 가든지 그 집에 평안을 빌어라, 만약에 그 사람들이 그 평안을  받아 들이기 합당하면 그 평안이 그들에게 임할것이고 만약에 그들이 그 평안을 받기 합당치 못하다면 그 평안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우리가 서로 집을 방문해서 들어가서는 기도하잖아요? 뭘 기도 합니까? 간단해요. 하나님 오늘 이 가정에 복을 주십시오. 이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고, 건강한 가정이 되고, 기업이 잘되게 하시고, 또 자녀들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 바로 그 기도를 하는 거죠. 그 집에 합당치 않다면 그 복이 다 네게로 돌아 오리라. 주님이 약속하신 거에요. 그러면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담대하라. 그러면서 말합니다. “나만 믿으라. 내가 너희에게 귓속말로 말한 것을 너희는 지붕에 올라 가서 외쳐라.” 저는 이 지붕 위에서 외치라는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저 미국에 유명한 팻 로버슨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어요. 그 분이 쓴 책이 지붕 위에서 외쳐라그 분이 어떻게 미국에서 방송 선교를 하고, 기독교 TV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를 기술한 책인데 그 제목이 바로 지붕 위에서 외쳐라에요.

지붕 위에 바이올린이라는 영화가 있죠. 거기 보면 주인공에게 세 딸이 있어요. 그 러시아에 이주해 가서 사는 유대인들의 서글픈 이야기죠. 그러나 그 미래가 불확실한 그들의 삶 속에도 그 세 딸들이 연애를 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은 지지리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고, 한 사람은 공산주의자 청년과 결혼하고, 한 사람은 그토록 유대인을 핍박하는 러시아 청년하고 결혼해요. 부를 초월해서 이념을 초월해서 인종을 초월해서 사랑은 말이죠. 그걸 넘어섰어요. 그런데 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는 사랑하는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감히 아버지 앞에 내가 저와 사랑하겠노라고 고백하고 도전해요. 태산 같은 아버지가 그 딸들의 고백을 꺾지 못해요. 결국은 다 딸들을 보내요. 여러분, 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러면서 터무니 없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몸과 영혼을 주장하시는 분이요, 지옥에 멸하실 수도 있는 분이요, 천국에 들이실 수도 있는 분이다. 이 분은 하늘을 나는 참새 두 마리가 겨우 동전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보잘 것 없지 않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 지지 않는다. 하물며 너희들이랴. 너희의 머리카락 조차도 하나님은 다 헤아리고 계신다.

이제 마지막 예수님이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나를 시인하라.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라. 나를 시인하는 자는 마지막 천국문에서 내가 저를 시인할 것이다. 도대체 예수님은 뭘 믿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우리가 읽는 마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 신약성경은 엄밀히 말하면 역사책은 아닙니다. 역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역사책은 아니에요. 이거는 간증집이에요. 내가 예수를 이렇게 만났다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초대교회 교인들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들이 발견한 예수를 증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안에는 구약의 유대교와 초대교회의 교인의 신앙고백 그 사이에 역사적 예수, 실제로 이 천년 전 유대 땅에 살아계셨던 예수의 모습이 간간이 숨어 있어요. 그걸 학자들이 면밀히 연구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발견한 예수 그 분의 오리지날 모습은 어떤것이냐 하면 몇 가지 찾아 냈는데, 예수님은 독특한 어법이 있었어요. 예수님의 말버릇이 있었어요. 제 고등학교 1학년 때 문법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이 분은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을 안쳐다 봐요. 저 창 밖을 보면서 얘기를 하시는데 이 분의 특징은 뭐냐 문법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 몰라도 하나의 명사, 하나의 동사, 하나의 하나의 하는게 얼마나 많은지 제가 하루는 너무 궁금해서 그날 한시간 공부는 안하고 하나의를 도대체 몇 번을 하는지 짝대기를 그어 보니 80번을 하더라고요. 예수님의 어법이 있어요. 놀랍게도 아멘이에요. 우리가 기독교에서는 예배에 아멘을 쓰는데 응답으로 하는거죠. 기도가 끝났을 때 아멘은 그럼 무슨 말이냐 하면 나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 말인데요. 예수님은 그렇게 쓰지 않았어요. 앞머리에서 썼어요. 그걸 우리 성경은 굳이 번역을 했어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진실로 진실로가 헬라어로 아멘 아멘이에요.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미 헬라어를 알고 있어요. 아멘이 헬라어에요. 그런데 사실 그건 번역하면 안돼요. 그건 그대로 써야돼요. 아멘 아멘 이렇게 쓴거에요. 예수님은 그렇게 쓰셨어요. 자기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분만은 독특하게 아멘을 앞으로 끌어내어 썼어요. 그런데 여기 더 중요한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랍비들은 내가 랍비 누구에게 배운 사람이다.  그 권위를 하나님에게, 또는 랍비에게, 더 올라가면 모세에게 두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놓으셨어요.

또 하나의 예수님의 말버릇은 아빠라는 것이에요. 애기들이 아빠 그러잖아요. 놀랍게도 이게 똑같아요. 가정에서 쓰는 말이에요. 아버지가 아니라 더 가깝게 쓸 때 아빠라고 하는 거에요. 시집 간 딸이 친정에 와서 아빠라고 하듯이. 하나님을 감히 이렇게 부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감히 하나님을 그렇게 불렀어요. 그러니까 종교 의식을 통해서 저 멀리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 분은 나를 받아 주시고, 친근한 관계를 가지신 하나님으로 새롭게 해석했어요. 그러므로 나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고백하신 거에요.

또 하나의 예수님의 특징은 죄 용서를 선포했어요.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니까 당시의 바리새인과 학자들이 깜짝 놀랐던 거에요. 아니 어떻게 사람으로서 참람하게도 하나님같이 죄를 용서한다 하느냐 너무나 놀랐던 거에요. 유대인들은 죄인과 어울리면 부정탄다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부정타지 않기 위해서 많은 규례를 두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죄인들에게 다가 가셔서 그들을 맞아 주시고, 그들과 같이 잔치를 벌여서 같이 식사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오히려 나를 만남으로 인해서 너희가 거룩해진다. 이거 놀라운 일이죠. 그러면서 자기를 인자, 사람의 아들. 구약에는 인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구약에 나오는 인자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그 표현에 예수님 바로 내가 바로 인자이다. 여러분 이제 아시겠어요? 둘 중에 하나예요.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 거짓말쟁이 이건 아니면 그 말대로 그는 하나님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얘기하시는 거에요. 나를 시인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에요. 또 하나 우리가 마태복음 산상수은에 원수를 미워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들었으나 모세 율법에 이에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 권위를 갖는게 모세요. 모세가 전해 주었다는 율법이건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모세의 그 율법을 넘어선 하나님의 대행자, 하나님의 아들, 더 나아가면 하나님이다 이렇게 선포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는 거에요. “나를 시인하라.”

에스더 이펙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구약에 나오는 인물이잖아요. 젠 하베이라고 하는 미국 여자분이에요.  결혼과 가정치유 전문가에요. 그런데 이분이 뜻하지 않게 수술을 앞두게 됐어요. 이제 내일 아침이면 수술을 받아야 할런지 몰라요. 의사가 말합니다. “당신의 병은 자칫 잘못하면 치명적이 될 수 있고,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 밤에 그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어떻게 기도 해야할지 몰라요. 그런 밤을 지내고 아침에 성경을 펴서 어딘가 읽을려고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간호사가 왔어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간호사가 이렇게 둘러보고 다 체크 하고 살펴 보더니 젠 하베이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합니다. “혹시 제가 기도해도 될까요?”  뜻밖의 제안을 듣고는 기도해 주세요. 이 간호사가 기도해 줬어요. 기도를 마치고 다시 건강이 어떤가 몇 마디 물어 보더니 다시 말합니다. “한 번 더 기도 할 수 있을까요?” “, 그래요? 한 번 더 기도해 주세요.” 더 간절히 기도 합니다. 그러더니 기도를 마치더니 하나님께서 오늘 제게 말씀을 주시는데 이 말씀을 들으실 수 있나요?” “, 뭐든지 말씀해 보세요.” 그때 말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이 병은 그저 육신의 병이 아니다. 네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그토록 고민하고 내게 물었던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오늘 보여 줄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 네 일을 통해서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자랑하게 될 것이다. 두려워 하지 말라.” 뜻밖의 간호사가 그야말로 예언을 하는 거죠. 예언을 한거에요. 그런데 이 젠 하베이는 이 말을 듣는 순간 , 하나님이 오늘 내 병상에 찾아 오셨구나!’ 그 순간 모든 두려움이 다 사라지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말할 수 없는 평강이 그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이제는 죽던지 살던지 그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 마음을 살피시고 나를 붙드셨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깨달은 것이 ,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보낸 에스더구나!’ 구약에 에스더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왕 앞에 함부로 나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법칙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붙들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나간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해서 온 민족의 구원을 이루어낸 사람이잖아요. 원래 미국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어요. 병원의 규칙이에요. 그렇게 되면 불이익이 있는 거에요. 그러나 그를 보았을 때 그가 성경을 붙들고 뭔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보았을 때,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서 그에게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이런 에스더들이 있다 이거죠. 그러나 말이죠. 하나님은 이것보다 더 놀랍게 역사하셔요.

여러분이 잘아는 미국의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흑인 여자로서는 최초의 국무장관이에요. 26살에 미국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가 됐어요. 소련학 박사에요. 이렇게 잘나가요. 그러나 그에게 고민이 있었답니다. 그 젊은 나이에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고 일하게 되었을 때, 자기가 자기의 신앙을 제대로 지켜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불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또 이 사람은 피아노도 아주 수준급이에요. 그 어느 날 주일 아침에 슈퍼마켓에 가서 그 날 먹을 음식을 준비하며 양념 코너에 가서 뭘 고르고 있는데 주위에 어떤 물건을 사 담던 남자가 불쑥 이렇게 묻습니다. “혹시 피아노 칠 줄 아세요?” 아마 단정하게 예쁘게 지적으로 세련되게 생겼으니까 물어 봤겠죠? “, 그런데요.” , 그렇다면 잘됐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 피아노 반주자가 없습니다. 꼭 좀 도와 주세요.” 그래서 그를 따라서 교회에 가보니까 아주 조그만 교회에요. 그러나 이 라이스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나의 신앙을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하나님 앞에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의 놀라운 부르심이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슈퍼마켓 양념코너에까지 따라 오셨다. 여러분, 그 말을 던진 사람은 그저 교회의 안타깝고 딱한 형편을 아니까 그저 한마디 던진 거에요. 저가 피아노를 잘 치는지, 못 치는지 어찌 알겠어요? 그냥 물어 본거에요.”피아노 칠 줄 아세요?” 그러나 그 한마디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어떤게 기적이에요? 우리는 그냥 던진 말이었건만, 하나님은 그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구원하는 놀라운 섭리가 되는 거에요. 하나님은 이렇게 까지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얘기하세요. 교회를 얘기하세요. 그리고 예수를 얘기하세요. 주님이 약속하셨어요. 네가 말한 그 모든 것이 그에게 합당하면 그에게 응답이 될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다면 그것이 다 네게로 돌아와 너에게 복이 될 것이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예수께서 오늘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이 고백이 나의 기쁨이 되게 하시고, 이것이 내 마음속에서 늘 흘러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