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눈을 들어 바라보라 [심층보도=절망하는 박사들]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4. 19:25

050501-1눈을 들어 바라보라

성경본문

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화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26-31)

 

신문보도에서 절망하는 박사들이라고 하는 심층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서울대에서는 1년에 800여명의 박사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명 중에 4명은 비정규직이다. 자기가 최종 목적한 그 일이 아니고 중간 단계의 일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인문대에서는 10명 중에 7명이 비정규직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박사 공급과잉이지요. 그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 중에 그토록 꿈꾸던 교수직에 임용되는 사람은 8.5%밖에 안 된다고 하는 것이지요. 서울대 박사가 쉽겠습니까? 들어가서 학위를 따기까지 평균 5 8개월, 인문대 같은 경우에는 평균 8 2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학위를 얻는 평균 연령이 37.6, 그런데 현재 서울대 출신 시간강사들의 평균 연령은 39세입니다. 다 가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하나 둘 거느린 가장들입니다만 그들의 월수입은 백만원 안팎이라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들의 고백에 의하면 오늘의 이어려움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불안한 미래, 그것을 생각할 때 더 괴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좀 더 기다릴 수 있지만 자기들의 선배 40대를 봐도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제가 예전에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저의 먼 친척 되시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 이제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니 걱정할 것 없고 그저 친구들을 잘 사귀면 돼.” 옛날이야기지요. 세상이 바뀌어도 열두 번은 더 바뀐 것이지요. 물론 제도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만하면 되겠지하고 간판을 믿고 시류를 좇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지요. 생각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일 년에 두 번 휴가를 가는데 그의 휴가는 굉장히 주목을 받는다고 합니다. 호숫가 산장에 머물면서 휴가를 보내는데 가족도 다 물리치고 혼자서 하루에 18시간씩 그에게 올라온 수많은 보고서들을 탐독하는데 지난 겨울 휴가에도 약 100편의 보고서를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그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은 세계 IT산업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그래서 그가 휴가를 들어간 그 주간을 언론에서 ‘Think Week (생각 주간)’이라고 명명을 합니다. ‘이번에 또 뭘 가지고 나올까?’ 여러분, 깊이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한 해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벌써 70년이 되었어요. 그들에게 이제 하나님이 자기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보여 주십니다. “너희를 해방시키겠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을 하시려는데 가장 큰 장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제국이 아니에요. 놀랍게도 하나님이 해방시키려고 하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 유다 백성들의 닫힌 생각이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이미 70년이나 흘러서 믿지 않는 거예요. 불신앙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여러분, 이사야서가 길어서 66장까지 되어있는데 얘기는 딱 하나예요. “내가 너희를 그 고난 속에서 해방시켜주겠다.” 잔소리도 이런 잔소리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똑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계시죠. 믿어지지 않는 거죠.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죠. 애 그럴까요? 그들이 깨닫지 거지요. 불신앙의 원인은 무지에 있습니다. 그럼 왜 그들이 그 말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과거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끗하게 받지 못하는 거지요.

사람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누가 말하면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일단은 부정해요. 일단은 멈추고 비판해요. 다 장단점이 있지요. 그러나 불신앙의 원인은 무지에 있고 그 무지는 과거의 실패에 매여 잇고 그래서 미래가 두려워요. 그리고 현실에 안주해요.

8.15 해방이 되었습니다. 북한에는 이제 공산당이 들어와서 점점 지배하기 시작했고 지주들의 재산을 빼앗기 시작했어요. 저의 아버님이 19살에 단신 월남을 하셨는데 나중에 저의 할머니는 남들 다 피난 나올 때 못나오셨어요. “이 아까운 걸 어떻게 다 버리고 나가냐?” 부자였거든요. 곳간에 있는 쌀 가마와 비단과 여러 가지 패물이 아까워서 결국은 자유를 잃고 생명을 잃었어요.

닫힌 생각!’ 그래서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눈을 높이 들어 멀리 바라보라. 내 생각과 너희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렇게 다르다.”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를 쌓는 것입니까?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내 생각의 주파수를 하나님 생각에 맞추는 것, 그것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드라마 토지를 봤는데 거기 등장인물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게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는데 양반들이에요. 그 시대 상황은 이미 양반 체제가 무너졌거든요. 법적으론 이미 갑오경장 때 다 무너졌어요. 거기에 세 사람의 양반이 나와요. 여주인공인 서희’, 양반의 딸이니 양반이지요. 그리고 최서희의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이동진과 그의 아들 이상현이 있어요. 그러나 이 세 사람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이상현은 젊은이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닫혀 있어요. 그는 양반 질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분노합니다. 세상을 한탄하고 걱정합니다. 고향을 지켜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동진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열려 있어요. 일본의 침탈을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드디어 간도로 떠나가서 세상이 바뀐 것을 알고 거기서 독립운동을 합니다. 생각이 열려있어요. 고향을 떠나가라고 말합니다. 고향을 떠나야 살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 최서희라는 여주인공은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한평생 자기를 돌봐주던 머슴과 결혼합니다. 생각만 열려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실천을 합니다. 그러면서 고향을 떠납니다.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잃었던 것을 다 회복하기 위해서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4대째 고향에 눌러 앉아 집안을 지킨다.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기존적인 생각과 그 틀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거기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내 자리에 돌아와서 그 곳을 변화시켜라. 왜 고향을 떠납니까?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사실은 제가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 시작할 때엔 저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었습니다. 저는 목회를 잘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느 큰 교회의 부목사로 가서 교회를 섬기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담임 목사님의 말씀이 영 성에 안차요. ‘왜 저렇게 하시나?’ 그런데 하나님은 눈치가 빠르세요. 얼른 저를 자그마한 교회의 담임으로 보내셨는데 6년 동안 저는 눈물의 골짜기를 걸었어요.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깊이 깨달은 것은 , 내가 신학대학에서 히브리어도 배우고 헬라어도 배우고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목회의 대상인 사람을 몰랐구나. 목회의 대상도 모르고 나도 몰랐구나.’ 그러니 심하게 연단을 하신거지요. 정말 하는 일이라고는 차를 타고 저 멀리 외딴 곳의 나무 그늘에 가서 차를 세워놓고 2시간 3시간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좋은 말씀을 듣고,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 배웠구나.’ 정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목회의 철학이 있고 그 철학으로부터 원리가 있고 그 원리에 따라 모든 세세한 일에 실제적인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점잖게 앉아 있습니다만 다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고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목회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저 칼리만탄 정글 밀림에 들어가서 사역하는 얘기를 듣고 제가 야 어떻게 그런 곳에 가서 사역을 하나?” 그랬더니 그 분은 오히려 거꾸로 말합니다. “차라리 전 뱃속 편합니다. 목사님은 인간들의 정글 속 한복판에 있지 않으십니까?” 그 얘길 듣는 순간 , 맞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직도 내가 도를 깨치지 못했구나.’

제가 식당을 가면서 느끼는 게 많습니다. 어떤 식당에 가면 멋있게 꾸며 놓았어요. 근데 정작 식탁을 보니까 인테리어를 못 따라가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내용인데요. 여러분도 TV에서 보셨지요? ‘쪽박집 대박집얘기요. 쪽박 집치고 눈물겨운 사연 없는 집 없습니다. 거기 병든 사람은 꼭 하나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해결할 길이 없는 거에요. 탄신뿐이에요. 그런데 이제 여러 사람들이 협력해서 그를 살리기로 했어요. 가게도 정말 예쁘게 꾸미고 모든 걸 도와줍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음식이지요. 그렇게 예쁘게 꾸며 놓았는데 들어가서 밥 먹어보니 옛날 그 맛이다 그러면 옛날의 고난과 눈물이 다 수치가 되는 거예요. 동정으로 한 그릇 먹을 수는 있지만 두 번 다시 안가요. 이 입이 얼마나 간사한지 저도 그렇더라고요. 그 식당이 맛있다고 하면 가서 먹습니다. 그러다가 더 맛있는 집이 나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갑니다. 누구를 탓해야 합니까? 입 맛 따라 가는 사람을 탓해야 하겠습니까? 그 음식 솜씨를 탓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배우려면 핵심을 배워야 합니다. 번들한 껍데기를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핵심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 잘 하는 대박집에 가서 제대로 야무지게 배우면 조금 모자라도 다 비슷비슷해가잖아요?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저는 예전에 하나마루 우동의 신화라는 책을 읽고 참 감탄했습니다. 그 주인공이 45세이에요. 그리고 시작한지 이제 5년 되었어요. 일본 우동을 제패했어요. 일본 사람들이 다 우동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인데 우동으로 승부를 했어요. 자기가 자그마한 도시에서 우동 가게를 열 때 그 도시에 우동 가게가 600곳이 있었는데 글쎄 200곳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맛을 다 보고 인테리어도 보고 하면서 왜 이 집은 안 가는가, 왜 이 집은 가는가를 철저하게 조사해가지고 모든 것을 만들어 내놓았으니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만 한다면 누군들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핵심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앙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어느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우리 교회에서 기도라면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요, 방언으로 하는 기도하는 사람이요, 열심으론 나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다 1등으로 높이는 사람입니다만 제게 깊은 고민이 있습니다. 왜 시골에서 시어머님만 올라오시면 그렇게 속이 뒤집어지고 그렇게 분노하게 되는지 그 때는 꼭 마귀가 된 것 같습니다. 왜 이럴까요?” 그 목사님이 말합니다.”교회에서 매끈한 옷 입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신의 실상이 아닙니다. 시어머니께 분내고 성내고 하는 그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렇게 예쁘고 번듯한 권사님을 위해서 돌아가셨겠습니까? 그 시어머님 앞에서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분을 내고 괴로워하고 몸부림치는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의식세계가 있지요? 그리고 무의식세계도 있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 다 기억 못합니다. 그러나 들은 것이 다 무의식세계에 들어가요. 경험한 게 다 무의식 세계에 들어가요. 사람이 얼마나 약은지 자기에게 좋은 건 다 의식세계에 정리해 놓아요. 그러나 내게 거부감이 일어나는 건 다 무의식 세계에 들어가 쌓이는 것이지요. 의식세계는 지극히 일부분이에요. 무의식세계는 빙산과 같이 안보이지만 어마어마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거기에 나의 실상이 있어요. 우리가 손님이 집에 방문하면 집을 청소를 해요. 그리고 급하면 광에다가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열어보지 못하도록 잠가버립니다. 그게 내 모습이에요. 그것이 고통당할 때 견디다 견디다 그 압력을 못 견뎌서 터져 나옵니다. 제가 절망 가운데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이 모든 원인은 당신 때문이야.” 그랬어요. 제가 죄인입니다. 저의 집사람을 너무 너무 괴롭혔어요. “기도도 안 하고 말이지…” 물론 기도 안 해서 그랬지요. 그러나 나 죽겠다라는 그 짐을 희생양을 만들어서 그에게 전가하는 것이지요. 그게 거짓이에요. 우리의 실상을, 이것을 자칫 잘못하면 율법과 도덕으로 그럴 듯하게 꾸며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 속거든요. 그래서 그걸 깨뜨리시려고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즘 직장 구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보지 않습니까? 입사시험을 보지 않습니까?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구직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면접할 때 면접관에게 이 말 저 말을 하지만 그 중에서 거짓말이 있을 텐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뭡니까?” 그랬더니 1위가 저는 연봉보다는 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2위는 평소부터 이 회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3위는 그 해당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사장님들은 잘 기억하셨다가 골라내시길 바랍니다. 또 인사담당자 자기들의 입으로 말하는 거짓말입니다. 1위가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 없어요. 2위는 인상이 참 좋습니다.” 3위는 우리 회사 근무 여건이 참 좋습니다." 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지요. 허상에 속지 마세요. 자기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위하여 죽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 반듯한 사람이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셨겠습니까? 자그마한 어려움이 부딪혀 올 때 드디어 우리 무의식 속에 들어있던, 우리가 감추려고 하고 숨기려고 했던 그것이 터져 나와서 우리를 끄집어냅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내 속의 쓴 뿌리를 해결하시려고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말합니다. “네 과거의 상처와 그 아픔까지도 너의 일부로 받아들여라.” 그래서 영적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목표를 세워가지고 올해는 교인 200명이 목표다. 성경 세 번씩 읽어라.’ 물론 그런 것이 우리에게 잠깐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진정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 그런 무리 속에서만 살면 다른 삶들보다 그래도 내가 제일 낫다.’ 또 한 번 더 그 사람 스스로를 속게 만드는 겁니다. ‘영적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나를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며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렇게 부족한 나를 십자가에 피 흘리시면서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락교회를 담임하셨던 임영수 목사님이 영락교회를 가니 자기는 모르는데 모든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지 않습니까? 목욕탕에 가도 인사하는 통에 도저히 자기는 숨을 곳이 없어져 버렸어요. 유리병 안에 있는 새같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 분이 고민하다 못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 나를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눈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여기고 솔직하게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놓고 살겠습니다.’ 또 한 가지, 마더 테레사의 기도문을 늘 책상 유리판 밑에 놓고 그것으로 하루에 한 번씩 기도 드렸다고 합니다.

, 예수님! 나를 해방시켜 주옵소서. 남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으로부터, 남보다 더 인기 있는 사람이 되려는 욕망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옵소서. 책망 받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비방 받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잊혀짐의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옵소서.’

여러분, 주님은 피곤치 아니하신 분입니다. 주님이 급하다고 사람을 지으실 때에 물건 만들듯이 똑 같은 제품을 만든 것이 없어요. 다 개개의 고유한 사람으로 지으셨어요. 거기에 하나님의 깊은 계획이 있고 섭리가 있어요. 우리가 생각한 그 허물과 약점까지도 하나님 손 안에 쓰일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신앙이란 주님을 바라보고 과거를 잊어버리고 오늘 주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오늘의 어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한탄하고 자책하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불신앙을 용서하옵소서. 이토록 어리석고 무지함에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랑으로 붙드시고 은혜로 이끌어주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의 어두움에 매여 어두운 생각, 어두운 눈으로 오늘을 탄식하지 않게 하시고, 눈을 높이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주의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