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기독신앙인물탐구

[스크랩] 불트만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8. 11:57

불트만

 

개요
20세기 〈신약성서〉의 '비신화화'(非神話化)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비신화화'는 신화적 용어들로 표현된 〈신약성서〉의 본질적 메시지를 실존철학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성서비평).

 

 

초기생애

불트만의 아버지는 루터교 목사였으며, 할아버지는 선교사였다. 그는 언제나 학문적 신학의 길을 따르고자 했으며, 19세 때 튀빙겐대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시작했다. 1912년 교수자격 취득논문을 쓴 다음, 마르부르크대학교의 강사로 임명되었고, 브레슬라우(1916)·기센(1920) 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21년에 마르부르크대학교의 신약학교수로 임명되어 1951년 은퇴할 때까지 재직했다.
1921년 불트만은 〈공관복음서 전승사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를 발간했는데, 이것은 복음서 기자인 마태오(마태)·마르코(마가)·루가(누가)가 사용한 전승 자료를 분석하고 그들vftgg이 사용하기 이전에 형성된 이 자료들의 교회전승사를 추적하려는 시도였다. 이 책은 독창성이 풍부한 저작으로 인정되었으며, 학자로서 불트만의 명성을 확립했다. 이어서 그는 〈예수 Jesus〉(1926)·〈예수와 말씀 Jesus and the Word〉(1934) 등 예수에 관한 책을 써냈는데, 이 책들에는 그의 신학적 입장이 나타난다. 1922~28년에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와 함께 일했다. 1927년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 을 발간한 하이데거는 불트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전개된 인간 실존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이 불트만 자신이 해석한 바울로 신학과 요한 신학의 인간 실존 이해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트만의 신학
하이데거와 토론을 벌인 이 몇 년 동안 불트만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발전시켰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한 대신에 초월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교회의 케리그마(K?rygma:선포)에 대한 신앙이며, 예수는 케리그마 속으로 부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불트만의 부활 이해)고 전제한 불트만은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견해가 최초로 표현된 것은 〈신약성서의 계시 개념 Der Begriff der Offenbarung im Neuen Testament〉(1929) 〈현존재의 역사성과 신앙 Die Geschichtlichkeit des Daseins und der Glaube〉(1930) 등에서이다. 불트만의 이런 입장은 그후 계속 유지되었으며, 1941년의 비신화화 제안을 포함한 그의 모든 저작들은 이를 일관성 있게 발전시켰다.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할 때 불트만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가르침을 수정해 나치 이데올로기에 맞추기를 거부했고, 나치의 교회 정책에 대항해 조직된 독일 프로테스탄트 운동인 고백교회를 지지했다(→ 국가사회주의). 그러나 자신의 말 그대로 그는 "결코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는 나치 정권을 정면으로는 반대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대학교와 세계의 다른 대학교 사이에 교류가 재개되면서 불트만은 국제적인 학술분야의 주요인사가 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독일대학교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의 견해들은 전세계적으로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신약학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야 했고, 신학자들 가운데서 불트만의 입장은 독일과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신학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불트만은 1955년 영국에서 〈역사와 종말론 History and Eschatology:The Presence of Eternity〉을 강의했고, 1958년 미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Jesus Christ and Mythology〉를 강의했는데, 이 강의들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볼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케리그마와 신화 Kerygma und Mythos〉 시리즈의 주제가 되었다.
평가
불트만은 탁월한 스승이었으며, 제자들에게 정신의 독립성을 북돋웠다. 그결과 두 갈래의 '불트만 학파'가 나타났다. 1954년 E.케제만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물음'(역사적 예수에 대한 인식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갖는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고, 많은 제자들은 스승과 무관한 입장을 전개했다. 그러나 E. 푹스와 G.에벨링은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분석을 토대로 하여 인간 실존의 언어적 양식을 강조하는 신약성서 해석방법을 발전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새로운 해석학(new hermeneutic)이다. 불트만 자신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제자들과 함께 이 논의에 참여했다. 말년에는 마르부르크에서 조용히 살았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