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한줄기 빛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6. 3. 16:32

한줄기 빛|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12 |추천 0 |2015.05.30. 06:45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21 

5월의 말씀 산책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음이 변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경남 합천군 오도리 이팝나무를 보러가자고 지대한 관심을 보이더니 떠나는 날 하루 앞두고 생각을 뒤집은 것이다. 나이가 많은데 두 시간 반이 걸리는 곳까지 이팝나무를 보러가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끔 논산에서 대전으로 가는 4번 국도를 달리다가 유성으로 갈 때는 유성대로를 타고 구암역 쪽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 가로수로 심은 나무에 아카시아 꽃도 아닌 하얀 꽃이 탐스럽게 핀 것을 보고 그 꽃 이름을 알고 싶어 했는데 우연히 그것이 이팝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합천군 가회면에 있는 이팝나무를 보게 되었다. 아내는 그 그림을 보더니 그렇게 고목이 되어 있는 이팝나무를 가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곳에 가면 해인사도 있고 황매산의 철쭉 군락지도 지금은 다 졌지만 승용차로 올라 갈 수 있다니 한번 답사해 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서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할 수 있다두렵다는 새 힘을 얻는다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자녀들 집을 방문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때는 gps(네비게이션)가 없을 때도 둘이서 여행하면서 주 경계선을 지날 때마다 안내소에 들려 무료 지도를 받아 당신은 지도를 읽고 나는 운전하면서 며칠씩 자고 다니지 아니했느냐? 보스턴에 가서는 캐나다의 빨강머리 앤의 고장 프린스에드워드 섬, 노바스코샤의 캐이프 브리턴 국립공원, 타이태닉호 유물을 포함한 해양박물관이 있는 핼리팩스 다운타운 등을 섭렵하며 다니지 아니했느냐고 이야기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 때는 젊은 때였고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는 꺼져가는 등불이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도 거뜬히 드라이브 할 수 있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며 노변의 신록을 즐기며 대화하고 다니면 위에서 주어지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젊어서 인생을 즐기고 늙어서는 추한 몰골로 땅에 묻히기를 기다리는 인생이 되지 말고 비록 육체는 낡아갈지라도 그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이 들어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귀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내는 좀 누그러진 듯 했다. 딸에게 전화를 해보더니 딸도 아버지 말대로 다녀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집 안에 있으면 모든 의욕이 소멸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얻어 내가 들은 예화를 말했다. 어떤 노인이 어린 매를 잡아다가 17년간 가두어 길렀더니 이제 잘 걷지도 못한 늙은 매가 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불쌍하여 밖으로 내보내줄 생각으로 가지고 나갔는데 매를 풀어 놓아 주어도 날아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름이 걷히고 한 줄기 햇빛이 비쳐오자 이 매는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는 이야기다. 매는 자기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땅만 보지 말고 늙어서도 하늘에서 내비치는 햇살을 보고 힘을 얻어 끝까지 보람 있게 살아보자고 말했다.

 

다음날 우리는 합천군의 이팝나무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해서 본 한 구루의 이팝나무는 벌써 시들어서 볼품이 없었다. 화강암 돌비에 <보호수>라고 200511월에 합천군수가 서명한 것이 있었고 광고판에 이 나무는 경남기념물 제134호라고 썼으며 높이는 15m, 둘레는 2.8m로 당산 목으로 심은 것 같다고 씌어 있었다. 이팝나무에 대한 전설은 많은데 입하목(立夏木)에서 온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전설이 더 재미있다. 시골 처녀가 이곳에 시집을 왔는데 늘 꽁보리밥으로 끼니를 잇다가 조상의 제삿날 처음으로 흰 쌀밥을 지었는데 그것이 설익으면 어쩔까 시어머니의 노여움이 걱정이 되어 뜸이 다 들 무렵 잠깐 뚜껑을 열어 한 두알 손에 찍어 입에 넣었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조상에 올리기도 전에 계집이 밥을 입에 넣었다고 너무 구박이 심해 뒷산에 가서 목메어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 자란 나무가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꽃이 피면 마치 밥그릇에 소복한 흰밥처럼 핀다는 것이다. 이팝나무 꽃이 잘 피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이팝나무 꽃은 가물면 꽃이 잘 안 피며 또 비가 너무 많이 와도 안 되고 꼭 적절하게 비가 와야 꽃이 예쁘게 핀다고 한다.

나는 한물 간 이팝나무의 사진을 찍어 왔는데 어찌된 것인지 인화하고 나니 꼭 꽃이 핀 것처럼 잘 나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이 나무를 검색해 보았더니 전국에 보호수로 등록된 것만도 8개가 되었으며 그곳보다 훨씬 가까운 고창에도 있었다. 고창 중산리(수령 250), 순천 평중리(400), 진안 평지리(280), 김해 주촌면(500), 광양 유당공원((470), 양산 신전리, 김해 신천리(600)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 곳까지 무익하게 다녀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늙어서 할 수 없다는 우리에게 한줄기 빛을 비쳐주어 다시 소생하는 힘을 얻고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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