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시험을당할 때[하나님도시험하십니까,십일조,FocusOnTheFamily]/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5. 11:32

070211 시험을 당할 때 (고전 10:5~13)

성경본문[개역개정판]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911년 역사상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남극대륙에 발을 디딘 것이죠. 그 때 노르웨이의 로날드 아문센과 영국의 로버트 스콧경 두 팀이 출발을 했습니다. 이게 두 나라의 경쟁이 되기도 했죠. 아문센은 그 극지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하는가 하는 여행법을 세밀히 연구하고 또 그곳을 다녀왔던 사람들의 기록을 낱낱이 살펴서 그곳 환경에서는 개썰매를 이용하는 길이 최선의 길로 여겨 개썰매를 준비하고 또 경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원들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거기에 충분한 물자와 식량을 준비해놓고 또 장비와 복장은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준비를 했죠. 그래서 아문센이 이끌었던 탐험대는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고 무사히 귀환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의 스콧경이 이끌었던 팀들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스콧경은 남극지방을 다녀왔던 자기의 경험만 믿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모터엔진 썰매를 준비하고 망아지들을 준비했는데 출발한지 5일 만에 썰매들이 다 얼어붙었어요.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짐들을 망아지로 하여금 끌게 했는데 망아지들도 결국은 얼마 못가서 다 동상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 썰매를 대원들이 직접 끌어야 했습니다. 속도는 떨어지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대원들이 다 동상에 걸렸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신발을 신는데만도 한 시간이 걸렸고 드디어는 800Km를 십주 만에 걸어 걸어서 다 지쳐가지고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아문센팀이 다녀간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귀환합니다. 되돌아오는 2개월 동안에 한 사람, 한 사람 쓰러져서 다 죽고 마지막으로 대장이었던 스콧경도 베이스캠프에 도달하지 못하고 쓰러져 죽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국의 신사답게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엎드러지지만 우리의 죽음은 결코 굽히지 않는 영국인의 의지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것이죠. 분명히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성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자기를 포함해 모든 대원들을 다 죽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죠. 이제 더 이상 그 이름은 위대한 이름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남극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죠. 도전할 수 있죠. 준비소홀이 문제죠. 그렇게 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자만했기 때문이죠.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는 평생 남극에 도전할 일이 없으니까 나하고 관계없다고 생각하신다면 IQ가 두 자리입니다. 남극에는 안 가셔도 좋아요.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인생은 바르게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 결코 남극 도전보다 쉽습니까. 아니요. 유능한 리더를 만나면 남극도전은 쉬워요.

제가 아주 오래 전에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어요. 오색약수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가지고 일출 전까지 가을산행을 하는데 말이죠, 저는 사실 그렇게 산을 올라가보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인도해주신 목사님이 얼마나 산을 많이 타고 다니신 분인지 경험이 풍부해서요 서투른 사람들을 모았지만 단숨에 그들을 이끌고 달밤에 산을 타는데요 너무 황홀했습니다. 정말 가을 보름달 밤에 설악산 능선을 올라가는 것이 꿈꾸는 것 같더라고요. 모두 다 옆구리에 비닐에 담은 인절미를 꿰어 차고 배고프면 하나씩 꺼내 먹으면서 따라오라고 하면서 막 앞서가시더라고요. 리더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시험이에요.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하나님도 시험하십니까? 성경을 보면 창세기 2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저를 부르셨다.’ 하나님도 시험하시죠. 그러나 이 시험에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고 방법이 있고 결과가 있어요. 시험과 유혹을 구분할 줄 알아야 되요. 심지어는 하나님이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말라기 4장에 보면은 ‘너희가 한 번 나를 시험하여 보라.’ 유명한 십일조에 관한 말씀이잖습니까. ‘한 번 십일조를 드려보라. 그리하면 내가 어떻게 너희에게 하늘 문을 열고 넘치도록 부어주는지 한 번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사실 이건 역설적인 표현이죠. 하나님을 시험하여 본다고 했습니다만 하나님의 속뜻은 너 자신을 테스트해보라 그런 뜻이죠. 그러나 또 다른 말씀을 읽어보면 신약에 야고보서 1장에 보니까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 받는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그게 아니다. 그거 다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되고 있는 것이다.’ 미혹이란 표현을 썼어요. 유혹 받는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시험과 유혹이죠. 남극을 도전할 수 있어요. 이것은 과제에요. 이것을 시험이라고 한다면 제대로 준비하지 아니하고 덤벼드는 것, 뭔가 미혹된 거죠. 스스로에게 속은 것이죠. 이게 유혹이죠. 시험과 유혹을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광야생활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에요. 어떤 분들은 <주몽>이라든지 <대조영>이라든지 하는 대하드라마를 아주 즐겨보고 챙겨본다고 하지만은 조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구약의 민수기서를 한 번 죽 읽어보시면 광야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끌어들이신 것에는 의도가 있어요. 이거야말로 시험이죠. 목적이 있어요.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시키시는 거예요. 애굽에 한평생 노예생활을 한 사람을 당장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지요. 한 달이면 가는 거죠. 그 당시에도 한 달이면 갈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나안에 얼른 들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 생각하는 것, 마음 쓰는 것,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신 거예요. 여기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요. 그리고 목표가 있습니다. 노예생활에 찌들은 그 노예 의식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땅에 적합한 믿음을 가지도록 믿음을 훈련하는 거예요.

제가 논산훈련소에서 8월에 훈련을 받을 때에 한 주일 내내 제식훈련이에요. 아니 세상에 그것은 고등학교 때도 한 건데 말이죠. 그 똑같은 훈련을 한 주일 내내 시켜요. 속으로 ‘이걸 왜 시키는 거야, 도대체. 한 두 번만 해도 다 알아듣겠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한 40, 100일을 한 다음에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을 한 번 보세요. 엄마한테도 ‘충성’하지 않습니까. 평생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어요. 군대가 이렇게 만든 거예요. 그렇게 딱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게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다 뜻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많은 이적을 보이시면서 항상 말씀하셔요. 사실은 이적보다는 말씀을 통해서 왜 내가 너희들을 이 광야생활을 하게 하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데 잘 깨닫지를 못해요. 그래서 자꾸 하나님께서 시청각교육을 하시는 거예요. 이적을 자꾸 보이시는 거예요. 그런데도 못 깨달으면 어떻게 됩니까. 말로는 안 되니까 그때는 하나님이 한 번씩 들어 엎으시는 거예요. 그 결과 그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깨닫고 마음을 열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저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신다.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어서 광야생활을 하게 하시는 목적이요, 의도입니다.

여기 광야생활이 바로 우리의 인생살이잖아요.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것은 천국을 말하는 것이잖아요. 애굽의 노예생활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옛사람의 삶이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거듭 실패합니다. 그 첫 번째는 원망이에요.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날마다 주시는 만나를 받아먹으면서도 불평을 터뜨려요. 우리가 비록 종이었지만 애굽에서 살고 있을 때는 그래도 고기 가마솥 옆에 붙어 있다가 고기도 얻어먹고 생선도 먹고, 오이도 먹고 수박도 먹고 부추도 먹고 파도 먹고 마늘도 먹었는데 지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정력이 떨어졌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백성들의 원망이 점점 전염병같이 퍼져나가 탄식이 되고 모세에게 와가지고 원망을 합니다. 드디어 지도자인 모세도 그만 감염되어 버렸어요.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데 이건 기도가 아니고 원망이요 불평이 됩니다. “내가 저들을 낳았습니까. 저들이 지금 저토록 부르짖고 고통스러워하는데 하나님 나 이제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심지어는 “나를 차라리 죽여주십시오”라고 까지 말했어요.

하나님이 보시니 모세마저도 이렇게 나자빠지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달래셨어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진 모세에게 “내가 그 짐을 덜어줄 것이다. 70명의 장로들을 회막 앞으로 불러라. 내가 그들에게도 너에게 보여주었던 것 같이 성령으로 함게 하리라. 그리고 저렇게 먹을게 없고 고기가 없다고 아우성치는 저들에게는 내가 고기를 주리라.” 그랬더니 모세가 말합니다. “하나님 우리 식구가 이백만입니다. 무슨 재주로 고기를 먹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내가 할테니 너는 가만히 보아라.” 그리고 그 날 하나님께서 메추라기 떼를 떨어뜨립니다.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시는 거죠. 그리고 70명 장로들이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셔요. 그들 마음에 감동이 있어요. 모세가 이 날까지 체험했던 그 감동을 장로들로 하여금 맛보게 하셨어요. 그렇게 하여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받들고 섬기게 하셨어요. 무거운 짐을 나누게 하셨어요.

간혹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부득이 비울 때 장로님들이 대신 하잖아요. 한번 설교를 해봐야 이게 쉽지 않구나 하는 걸 알게 되죠. 저는 목요일쯤 되면 밥맛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설교가 머릿속에서 막 돌고 있기 때문에 이게 뭔가 탁 풀리면 신이 나고 아 그렇구나 이러는데 때로는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사람이기에. 그러면은 밥맛이 없어요. 이걸 서로 알아야 같이 마음을 열고 동역을 하실 텐데 말이죠. 저는 민수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말이죠, 아주 전능하신 분이니까 우리를 떠나서 저 하늘 높은 보좌위에 앉아서 내려다보시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의 상황 속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마치 대하드라마의 왕과 같이 신하와 백성들의 일에 대해서 명령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하기도 하셔요. 똑같아요.

드디어는 이 백성이 결정적인 사건을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셔서 열두지파의 대표 열두 명이 뽑혀 가나안 땅을 사십일 동안 정탐하고 왔어요. 그들이 보고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절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 봤자 맞아 죽는다. 그들은 거인들이다. 그들의 성은 얼마나 견고한지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다.” 그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순식간에 절망에 빠집니다. 막 통곡합니다. 그리고는 돌을 들어서 모세를 치려합니다. 죽을 데가 없어가지고 우리를 여기 이 광야에 끌고 나와서 엎드러져 죽게 하느냐. 막 원망하다 못해 분노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요. , 하나님이 나타나시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백성들이 다 놀래가지고 엎드러졌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제까지 나를 열 번이나 시험했다.” 하나님이 세고 계셔요. “그러므로 내가 이제는 너희를 그냥 두지 않겠다.” 그 때 하나님이 무서운 결정을 하셔요. “나이 스물이 넘어가지고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돌다가 다 엎어져 죽을 것이다. 사십일 정탐하고 돌아와서 원망하고 불평한 너희들은 사십 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어른들은 다 여기서 죽을 것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 말씀을 듣는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 가지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믿음을 보인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저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도 다 계획이 있으세요. 모세도 데려가시잖아요. 모세가 말합니다. “하나님 나도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너는 안 된다. 너는 저 가나안 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에서 죽어라.” 전 새벽에 기도할 때 가끔 스스로 묻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오늘 나를 부르시면 난 어떻게 할까. 그럴 때 하나님 일이 남았는데 이걸 좀 하고 가야 되는데요, 그럴 일이 있는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냥 그 순간 가야 되는 거예요. 그것만큼은 늘 순간순간 준비해놓고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에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족속과 만나가지고 그들과 간음을 하는 풍조가 퍼져가지고 온통 향락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전염병이 돌게 하셨어요. 23천명이 하루에 고꾸라져 죽었어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모세까지도 불러가셨다면 언제 나를 부르시더라도 정결한 마음으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되는 거죠.

오늘 현대인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상숭배죠. 어떤 우상이냐. 돌이나 나무라고 하는 우상이 아니라 ‘자아’라고 하는 우상이에요. 이제는 누구말도 안 들어요. 자기체험, 자기경험, 나의 욕구가 최우선이에요. 나의 필요가 가장 중요해요. 심지어는 내 기분이 제일 중요해요. 기분 나빠서 천국에 못가겠다는 사람도 많아요, 세상에.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을 얘기하셨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기분 나빠서 못가겠다는 거예요. 참 안타까운 얘긴데, 전도하다 보면 그런 분이 있죠. “우리 앞집에 사는 사람이 교회 나가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는 행실 봐가지고는 나가고 싶지 않은데요.” 아니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하고 해결할 문제고, 당신은 뭐 영원히 살겠습니까.

광야생활은 오늘 우리의 삶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광야생활 속에서 만나를 주신 사건을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거니와 오늘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생명의 떡이 있다. 곧 내가 하나님이 보내어주신 생명의 떡이다.” 또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죽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달아서 세워라. 그 놋뱀을 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인간의 판단이나 의사의 판단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셨기에 그것을 바라본 자들은 다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사람의 지혜와 경험을 넘어서는 사건이에요.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사건이죠. 얼마나 어렵습니까.

제가 어제 뉴스를 보고 탄식을 했어요. 예비 대학생, 이제 3월에 대학에 들어가야 되는 학생들이 벌써 고시공부하고 있어요. 고시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 정도 되면 병이죠. 아무리 취업이 안 되고 뭐 그런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정도 되면 불쌍한 인생이에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련히 알아서 그 길을 인도하시겠어요. 그 때에 맞게 일을 하는 거지 그 인생의 고민을 다 미리 끌어당겨 가지고 오늘을 고민하며 살아야하다니.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그거 누구한테 배웠겠어요, 그거 어른들한테 배웠죠.

Focus on the Family라고 하는 미국의 기독신앙방송단체가 있습니다. 주로 상담을 하는 단체인데요, 여기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목사님들을 조사를 해봤더니 80%가 목회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그것이 가정에서 부부싸움과 불화로 이어지더라. 40%가 한 달에 한번은 교인들과 부딪혀서 큰 갈등에 빠진다는 거예요. 70~80%가 내가 도대체 목사가 된 게 잘못된 게 아닐까.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괜히 내가 뛰어든 게 아닐까라는 아주 심한 열등감에 시달린다는 거예요. 그리고 40%가 앞으로 10년 후에는 나 이거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응답을 했다는 거예요. 이런 의식을 가지고 목회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매달 1,300명의 목사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거예요. 참 비극이죠. 목사도 그렇다면 우리 모두야 뭐 말할 것도 없는 거죠. 인생살이는 참 고달픈 거예요. 쉽지 않은 거예요. 정말로 철저하게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 중에 하나는, 제가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서울 고등학교 올라와서 떨어졌어요. 시험에 한번 떨어지는 것도 약이더라고요. 떨어지니까 나 자신과 가정에 얼마나 아픔이 있었는지 몰라요. 그 다음에 대학 갈 때 어떻게 됐느냐. 간절히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3 때는 제가 푸른 하늘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하나님,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어요. 오늘 말씀하십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신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학생들에게는 진학 시험이 결정적인 시간이죠. 또 사업을 하고 운영하시는 분들에게는 사업에서 한번 결정적인 기회를 맞죠. 또 모든 가정들은 한번은 깨지느냐 마느냐 위기가 있는 거죠. 미리 잘 준비해야 되죠.

여러분 ‘일십백의 법칙’이 있어요. 기업을 운영하는 데서 나온 거죠. 기획을 하는 단계에서 ‘아 이거 잘못 됐구나, 이거 고쳐야 되겠다’ 할 때 비용이 1달러가 들어간다면, 물건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실행단계에서 문제점이 발견돼서 그것을 수습하려면 10달러가 들어가요. 물건이 벌써 시장에 깔렸는데 나중에 고객들이 항의를 해가지고 문제가 생겼다. 이걸 수습하려면 100달러가 들어가요. 이게 바로 일십백의 법칙이에요.

건강에 관해서도 말이죠, 많은 분들이 결국에는 병원에 실려간 후 다 죽게 돼가지고 돈 쏟아 붓고 하는 거 보면 꼭 저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건강할 때 자기 건강관리를 잘하면 얼마나 좋아요. 제가 신대원을 다닐 때 우리 학교 채플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제가 그걸 잊지 못해요. 그분이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여러분, 목회를 잘하시려면 설교준비는 월요일 날 하십시오. 월요일에 설교 본문, 제목 딱 뽑아 놓으면 한 주가 편안합니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제가 전도사 시절에 해보니까 그거 잘 안 되더라고요. 토요일 밤에 막 머리가 터져가지고 그 다음 막 새벽 2, 3... 여러분 한번 해보세요. 미칩니다. 정말 미쳐요. 그러니 주일이 너무 피곤해요. 이미 진을 다 빼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전도사 시절에 주일 저녁에는 예배 앞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너무 졸기 때문에. 막 꼬집어도 소용없어요. 몸이 쓰러지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저 뒷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어요. 전도사님들이 뒤에 앉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걸 아셔야 되요. 그런데 제가 인도네시아에 와서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 뭐냐 하면 한 달 전쯤에 제목, 설교본문을 딱 잡아놓게 하셔요. 그러니까 너무너무 편안하고 쉬운 거예요. 이건 생각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여러분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100m 우승하는 사람은 항상 간발의 차이로 우승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하고 뭐 열 발자국도 아니에요, 간발의 차이로. 항상 한발 먼저 준비하는 사람이 평생 앞서가는 거예요. 한발 뒤쳐지는 사람이 평생 뒤쳐지는 거예요. 아침에 시작할 때 기도로 시작하세요. 하나님께 묻고 시작하세요. 중요한 일부터 하세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 하지 마세요. 그런 일 하느라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해가지고 정작 중요한 일 못하면 인생 허비하는 거예요.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피할 길을 내신다. 불벼락 떨어질 때 어디 바윗돌 밑이 피할 길이 아니에요.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거예요. 평소에 건강을 관리하란 말이에요. 평소에 영적건강을 관리해야지요. 그럴 때 늘 그 앞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오늘도 주님 앞에 부르시고 예배하게 하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원망하며 불평하며 탄식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며 살았던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오니,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시험의 목적을 알게 하시고 목표와 방법과 결과와 주님의 계획을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섬기고 따라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