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값싼 구원을 함부로 외치지 말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7. 21. 10:50

값싼 구원을 함부로 외치지 말라|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2 |추천 0 |2015.07.21. 10:10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29 

7월의 말씀 산책

세상 사람들이 기독인들을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은 구원의 방주에 앉아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물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불쌍한 중생으로 지옥길이 훤히 보인다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구원의 방주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꼬락서니는 서로 헐뜯고, 중상모략하고, 금품 로비와 권력 다툼을 하고, 권위주의로 힘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타락한 세상보다 더 나쁘게 보이는 것이다.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왜 대부분의 기도교인들이 그런 독선에 빠져 있는 것일까? 그들은 교회에 나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바로 구원을 받았으며 이 구원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되었으므로어떤 죄를 지어도 이 구원은 영원하다고 믿는 위험한 신념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천국을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뜻이 없는 기준이다. 그래서 이 논리는 모든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해서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선택하여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과, 죄 사함을 주실 때 우리는 거역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과 앞으로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믿을 때 성립한다. 그런데 이를 믿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너도 나처럼 이 구원의 방주로 올라와 구원을 받아라.”라고 애처롭게 외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누구나 다 위에 말한 기독교 원리를 믿는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상영한 영화 밀양을 생각한다. 남편을 잃고 남겨진 아들과 함께 고향 밀양에 간 신애는 아들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의 원장에 의해 그녀의 아들을 유괴 당하고 결국 시신을 돌려받는다. 홀로 남은 신애는 고통을 치유 받고자 교회에 나가 신실한 신도가 되었는데 한 번은 원수를 용서해 주어야겠다고 교도소에 수감된 그 원장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학원장은 교화(敎化)를 받고 예수를 믿어 죄 용서를 받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세상을 향해 당당해 진 모습이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고 싶은 신애보다 먼저 죄를 용서해 주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 구원(용서)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가? 하나님은 택한 자에게 영생(죄에서 구원함)을 주는데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자기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10:28) 성경은 말하고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리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했으며, 하나님은 미리 예정하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셨으며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불러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고도 말씀하신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한 한번 받은 구원에 대한 보장이다.

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그들이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예수님은 천국에서 계속 하나님 곁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다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되기를(17:15), 그들이 진리로 거룩(성화)하게 되기를(17:17), 하나님과 예수와 그들이 다 하나가 된 것을 세상이 믿게 하도록(17:21),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께 주신 영광(영화)을 그들도 보게 하기를 예수님은 기도하고 있다. 이렇게 구원은 그들의 의지와 행위는 상관없으며 오직 하나님 편에서 성령을 보내어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사람은 그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되게 하기 위해 옛 자아에게 사망신고를 하면 새 생명으로서의 예수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사시며 죄에 빠지지 않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구원 받은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참으로 구원 받은 자가 아니다. 자기는 구원 받았다고 주장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그가 죽어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자기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살고 있다고 믿게 된 사람만이 참으로 구원 받은 자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세상을 향해 구원을 말할 때에 먼저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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