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누가(Luke)가 본 예수님의 사랑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7. 28. 08:21

누가(Luke)가 본 예수님의 사랑|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17 |추천 0 |2015.07.27. 10:54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30 

7월의 말씀 산책

나는 우리 아파트와 인접해 있는 아파트의 미용실을 잘 다닌다. 그 곳은 딸을 사랑해서 딸 이름을 앞에 붙인 ‘xx 헤어샵'이다. 미용실에는 여자들의 가십이 많고 또 파마하는 약 냄새가 심해 좋아 하지 않는데 어찌된 셈인지 요즘은 이발소가 눈에 띄지 않고 미용실 때문에 도태된 상태여서 이제는 수년 간 그곳으로 단골로 출입하고 있다. 원장은 교회에 다니는 분이어서 우리 부부를 장로님, 권사님 하고 부르며 싹싹하게 굴고 있다. 그런데 요 몇 달 아내가 뇌수술을 받고 나서는 나 혼자 다니고 있다. 아내는 나 혼자 갔다 오면 미장원에서 자기에 대해서는 안부를 묻지 않더냐고 해서 아무 말이 없었다고 했더니 서운한 표정이었다. 둘째 달에도 그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자진해서 아내가 수술해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변명할 이유가 없었다. 셋째 주에는 아내가 머리가 길어 이제는 미용원에 가서 컷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해서 이제는 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1월 중에 미용실에 가겠다고 아파트를 나서다가 빙판에 넘어져 머리를 다친 일이 있었는데 두세 달 아무 증상이 없어 그냥 지냈는데 4월 중순에 그동안 뇌의 모세혈관에서 출혈이 있어 피를 뽑아내기 위해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상가 경기가 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있는 미용실도 경기가 좋지 않다. 너무 더우면 손님이 없고 날씨가 쾌청하고 좋으면 또 다들 놀러 나가서 한가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일수다. 그녀에게는 두 남매가 있는데 큰딸을 무척 사랑해서 그녀의 이름을 따서 이 미용원도 운영하며 그녀의 꿈이 원장의 꿈이기도 했다. 딸은 작은 교회에 나가 피아노도 치고 또 본인도 피아노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서울까지 피아노 레슨을 보내며 가르쳤는데 본인도 힘 드는 일이었지만 그 경비를 대느라 수고 하는 원장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한번은 내가 아는 서울에 있는 피아노 강사를 소개한 일도 있었는데 버스를 몇 번 갈아타는 관계로 시간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 그러나 우리의 소개를 무척 고마워했었다. 그런데 막상 진학은 서울을 포기하고 지방대학의 음악과를 지망했다. 피아노는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학과여서 모녀의 꿈을 이룰지 걱정이었는데 얼마 전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원장은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지 안타까웠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기의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니 마음이 평안하다고 해서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였다.

 

이번에 내가 찾아 갔을 때는 날씨가 화창해서였는지 컷하고 떠난 중년 신사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원장에게 아내가 수술을 하고 입원해서 그 동안 나오지 못했다고 말하며 지금은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는데 아직은 모발이 다 자라지 못해 다음 달에는 나올 거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막 울면서 그런 기쁜 소식을 왜 이렇게 늦게 전해 주느냐는 것이었다. 낙상으로 다쳤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계속 무슨 소식을 전해주리라고 기대했는데 올 때마다 말이 없어 무슨 나쁜 소식을 들을까봐 묻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미장원에서는 노인이 오래 보이지 않으면 온갖 상상을 동원해서 불행을 씹어대는데 이렇게 우리를 걱정해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라는 말과 예수를 파는 사람들이 왔을 때 제자 중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 쪽 귀를 떨어뜨렸는데 예수께서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는 말이 나온다(다른 복음에는 없음). 이것은 의사인 누가만이 볼 수 있었던 예수님의 사랑이다. 마찬가지로 미용사의 눈물은 그녀만이 나타낼 수 있었던 우리를 향한 또 하나의 예수님의 사랑이고 위로임을 깨닫고 감사했다.

말 없는 눈물은 어떤 위로보다도 더 큰 위로와 평안을 준다.

'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사람을 보라  (0) 2015.08.11
나의 멘토 한미성 선교사   (0) 2015.08.09
값싼 구원을 함부로 외치지 말라  (0) 2015.07.21
찾은 자와 잃은 자  (0) 2015.07.15
장막 집  (0) 201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