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또 다른 세계의 주인공들! (고후 5:1-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8. 20. 08:31

또 다른 세계의 주인공들! (고후 5:1-4)

 

  성도의 세계관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것으로 끝인 세상이 아닙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그 세계를 준비하는 전 단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사람이 정말 불쌍하고 웃기는 사람입니다.
  고전15: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지금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1. 성경에는 두 가지 세계관이 있습니다.

 

  1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이라고 함은, 우리의 본체인 영혼이 거하던 육체가 후패하여져서 더 이상 영혼을 담을 수 없게된 상태를 말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12:6-7절에서 장막집이 무너짐을,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 세계관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생과 내생입니다. 먼저 이생을 성경은 '장막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막 집은 무너질 집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길어야 100년 정도 살 수 있습니다. 시90: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의 고백이 우리의 현세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생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전개되는 세계입니다. 짧게 살아도 길게 살아도 뒤돌아보면 힘들고 버거운 게 삶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바로 왕 앞에 서서 나이를 묻는 그에게 창47:9절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또 세상에서 누릴 것은 다 누려 본 솔로몬도 전2:22-23절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과 수고와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가지고 살아도 못 가지고 살아도, 알고 살아도 모르고 살아도, 얻고 살아도 못 얻고 살아도,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 세상의 삶은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막 집이 무너질 때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철권통치자 박정희도 갔습니다. 누구나 죽음으로 끝나는 세상,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삶입니다.
  본문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이 '영원한 집'이야말로 우리 영혼이 덧입을 옷인데, 이 옷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바울은 고전15장(부활의 장)에서 '썩지 아니할 것이요(42), 영광스러운 것이요(43), 신령한 것(44)'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저 천국입니다.

  주안에 있는 우리는 죽음으로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썩어버리는 육신의 장막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이생이 끝이 있는 세계인데 반해, 내생은 영원한 세계입니다. 이생은 한정성의 옷을 입고 있고, 내생은 영원성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끝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영원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제대로 전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매미를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굼벵이를 보고 매미가 되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머리로는 천국의 위대함과 불가사의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마치 돼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을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세계는 듣고 보고 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2:9절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다만 믿음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천국은 영원한 곳, 끝이 없는 곳,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성경은 천국이 수고와 슬픔이 다시는 없는 곳이고, 질병이나 다툼이 없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자에게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준비한 자에게만 그렇습니다.
  마25:34절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우리 모두는 천국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천국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3. 지금 우리들의 삶은 천국으로 가는 훈련기간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연습기간이요, 훈련시간입니다. 한 편의 연극을 위해 배우들이 부단히 연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에 산다는 것은 영원한 삶을 위한 예비학교, 연습장입니다. 지금의 삶이 다음의 삶을 결정합니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시험은 쉽습니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배우에게 연극무대는 끼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입니다. 영원에 비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눈 깜짝할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삶의 흔적이 남기는 결과는 실로 엄청납니다. 천국을 살 것이지, 지옥을 살 것이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끝나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말입니다. 아주 작아 보이지만 세상의 삶이 영원한 세계의 삶을 결정합니다.
  2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준비된 이는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영원한 처소를 기다립니다.
  4절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생명에게 삼킴을 당하는 죽음! 그런데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이생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따라 어디서 영생을 보낼 것인지 결정됩니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최악이란 죽음이 아니다. 나에게 최악이란 신앙을 잃는 것이다. 신앙을 잃어버리면 영원한 생명도 부활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최악이 아닙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최악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한마디로 천국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우리 모두 큰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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