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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돌트 신경] (7)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배격함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 25. 06:55


[돌트 신경]

(7)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배격함

 

번역 및 편집 : 스데반 황(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담임목사)

 

 

정통적인 교훈을 제시한 종교 회의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주장들을 배격하는 바이다.

제 1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제대로 말하면, 원죄 그 자체만으로 온 인류를 정죄하고 또한 현세 및 영원한 형벌의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격 :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도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롬 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제 2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영적인 은사 또는 선한 성향, 선과 거룩과 같은 덕, 그리고 의는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 인간의 의지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타락할 때 그러한 것들이 의지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다.


배격 : 이 주장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묘사와 어긋난다. 바울은 그 구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의와 거룩의 용어로 묘사하는데 이는 분명히 의지 속에 거하는 것이다.

제 3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영적인 사망으로 영적인 은사들이 인간의 의지로부터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니다. 이는 의지 그 자체로는 결코 부패할 수 없으며 단지 지각의 어둠과 감정의 무절제에 의해 방해를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이 제거된다면 의지는 그 본래의 자유로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의지는 스스로 그 앞에 놓여있는 어떤 선에 대해 원하고 택하든지, 또는 원하지 않고 택하지 않든지 할 수 있다.


배격 : 이 주장은 고상한 생각이지만 오류이며 자유 선택의 능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과 상반되고 사도의 말씀과도 상반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제 4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중생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절대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 아니요, 또한 영적인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전부 빼앗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할 수 있으며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배격 :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자명한 증거와 반대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엡 2:1).

"허물로 죽은 우리를"(엡 2:5).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더 나아가 이 비참함에서 벗어나 생명을 바라는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며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오직 중생한 자들 및 복있는 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특징이다(시 51:17; 마 5:6).

 

제 5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부패한 자연인이라 할지라도 일반 은총(그들에게 일반 은총이란 자연의 빛을 의미한다) 및 타락 후에 남아 있는 은사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사용하여 구원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더 큰 은혜, 곧 복음이나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입장에서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이시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할 정도로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계시와 믿음과 회개를 위해 필요한 방편들을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배격 : 모든 세대의 경험뿐만 아니라 성경 역시 이런 주장이 거짓이라고 증거한다.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시 147:19-20).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행 14:1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제 6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사람이 참된 회심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자질들이나 성향이나 또는 은사들을 그 사람의 의지에 주입하거나 부어넣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우리는 먼저 믿음(또는 믿으려는)에 의해 회심에 이르고 그로부터 우리는 ‘신자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입하신 자질이나 은사가 아니라 단지 인간의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믿음을 얻는 능력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믿음은 선물이라고 불릴 수 없다.


배격 : 이러한 주장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의 새로운 자질들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을 우리 마음속에 주입하거나 부어주셨다고 증거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 44:3).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또한 그들의 주장은 교회가 지속적으로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라고 선지자를 따라 기도한 관행과도 상충된다.

제 7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우리가 하나님께로 회심할 수 있었던 그 은혜란 단지 일종의 부드러운 설득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회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활동 방법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고상하고 가장 잘 맞는 것으로서 설득에 의해 회심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설득을 통한 이 은혜가 그 자체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영적인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인 설득의 방식 외에는 인간의 의지의 동의를 이끌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역의 효력이 사탄의 역사를 능가하는 것은 사탄은 세상에 속한 혜택들을 약속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혜택들을 약속하신데 있다.


배격 : 위의 내용은 전적으로 펠라기우스파의 주장이요, 성경 전체와 모순된다. 성경은 인간의 회심에 있어서 이러한 설득뿐만 아니라 또한 훨씬 더 효력 있고 신성한 성령의 사역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제 8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중생시키는데 있어서 틀림없이 중생되도록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강력하게 사용하여 인간의 의지가 믿음과 회심으로 향하도록 만드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회심에 필요한 모든 은혜의 사역들을 다 이루어 놓으셨더라도 인간은, 실제로 종종 그러한 것처럼, 그를 회심케 하려는 하나님과 성령의 의도와 뜻을 거절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의 중생을 철저하게 좌절시킬 수 있는데, 이는 중생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이 그의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배격 :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의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효과적인 기능을 제거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활동을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으로서 사도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엡 1:19).

“……우리 하나님이……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1:3).

제 9 절

알미니안들의 주장 : 은혜와 자유 선택은 서로 함께 회심의 시작을 일으키는 부분적인 요소들이다. 특히 인과관계에 있어서 은혜가 의지보다 먼저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의지가 스스로 움직여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도와서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배격 : 초대 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사도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펠라기우스의 이러한 교리를 정죄하였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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