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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돌트 신경] (6)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 그리고 그 과정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 25. 06:55



[돌트 신경]

(6)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 그리고 그 과정

 

번역 및 편집 : 스데반 황(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담임목사)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요 핵심 교리: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의 회심, 그리고 그 과정


제 1 항 : 인간 본성에 임한 타락의 결과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그의 지각은 그의 창조주와 영적인 것들을 참되고 바르게 알도록 지식이 주어져 있었고, 그의 의지와 마음은 의로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모든 감정은 순결하였다. 이에 전인(全人)이 참으로 거룩하였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 반역함으로써 그는 이러한 뛰어난 은사들을 잃게 되었고, 그 대신 그의 지각에는 어둠과 끔찍한 허망함과 그릇된 판단력이 자리 잡았고, 그의 마음과 의지에는 완고함과 당돌함과 강퍅함이 자리 잡았으며,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감정은 불결하게 되었다.

제 2 항 : 부패의 확산

사람의 타락 후에 인간은 자신과 같은 똑같은 본성을 지닌 자녀들을 낳았다. 즉, 부패한 상태에서 부패한 자녀들을 낳은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해 부패는 아담으로부터 모든 후손들에게 확산되었다. 그 방법은 (이전에 펠라기우스가 주장한 것처럼) 모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악한 본성의 유전에 의한 것이다.

제 3 항 : 전적인 무능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잉태되어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 따라서 그 어떤 구원의 선행을 행할 수 없고 악으로 기울어지며, 죄 가운데 죽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도 없고 또한 돌아오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들의 비뚤어진 성품을 개혁할 수도 없고 또한 개혁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러한 개혁에 자신들을 맡기려는 성향조차 가질 수도 없고 또한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 4 항 : 본성의 빛의 불충분성

분명한 것은 타락 후에도 사람에게는 어떤 본성의 빛이 남아 있어서 이로써 하나님과 자연의 만물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도덕 및 부도덕적인 차이를 알고, 덕행 및 선한 외부적인 행위를 추구하는 면을 보인다. 하지만 본성의 빛으로는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아는 구원의 지식에 이르거나 주께로 회심하는 일이 없다. 사실 인간은 자연과 사회의 문제들에 있어서도 본성의 빛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은 본성의 빛이 정확하게 어떤 속성을 지녔든 간에 여러 방법으로 그 빛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불의로 그 빛을 억제한다. 사람은 이렇게 행함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된다.

 

제 5 항 : 율법의 불충분성

본성의 빛에 해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특별하게 유대인들에게 주신 십계명에도 해당된다. 즉, 인간은 십계명을 통해 구원하는 은혜를 얻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은 단지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죄책을 더욱 크게 만들지만 그의 비참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그 어떤 치료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십계명은 육체로 인하여 연약하여지기 때문에 범죄자를 저주 아래 내버려 둔다.

제 6 항 : 복음의 구원의 능력

그러므로 본성의 빛이든 율법이든 그것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말씀 및 화목의 사역을 통해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때이든 신약의 때이든 신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즐거움인데, 바로 메시아에 대한 복음을 통해 구원하신다.

제 7 항 : 복음의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유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경륜의 비밀을 소수에게만 계시하셨지만 신약에서는 (민족의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 비밀을 드러내셨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가치가 있거나 자연의 빛을 더 잘 사용하는 것에 기인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주권적인 기쁨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 형벌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들의 자격과는 무관하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은혜를 인정해야 한다. 반면에 그들은 사도와 더불어 이러한 은혜를 받지 못한 다른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와 공의를 찬양해야 하며, 결단코 호기심으로 심판의 엄위와 공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제 8 항 : 복음의 진지한 부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의해 부름을 받은 모든 자들은 진지하게 부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안에서 무엇이 그를 기쁘게 하는지 진지하고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신다. 즉, 부름을 받은 자들은 그에게 반드시 나아와야 한다. 주께서는 또한 주께로 나아와 믿는 모든 자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위한 안식과 영생을 약속하신다.

 

제 9 항 : 복음을 거절한 자의 책임

복음의 사역을 통해 부름을 받은 많은 자들이 나아오지 않고 또한 회심하지 않는 것은 복음과 복음을 통해 제시되는 그리스도, 또한 복음을 통하여 그들을 부르시고 심지어 그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부름 받은 그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다. 자아 확신에 빠진 어떤 이들은 생명의 말씀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이들은 생명의 말씀을 듣지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시적인 믿음의 즐거움이 사라지면 그들은 불신앙으로 되돌아간다. 또 다른 이들은 생활의 염려라는 가시와 세상의 쾌락으로 말씀의 씨를 질식시킴으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교훈은 우리 구주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르치고 있다(마 13장).

 

제 10 항 : 하나님의 사역에 의한 회심

복음의 사역을 통해 부름받은 자들이 주께 나아와 회심에 이르는 것은 사람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펠라기우스의 교만한 이단이 주장하듯이) 믿음과 회심을 위해 균등하고 충분한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상태에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나아와 회심한 것이 아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소유로 택하셨으며 이에 때가 되자 주께서는 효력 있게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허락하신다. 또한 그들을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그의 아들의 왕국으로 데려가신다. 이에 그들은 성경에서 사도들이 종종 증언한 것처럼, 흑암으로부터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놀라운 행사들을 선포한다.

 

제 11 항 :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

더욱이,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 안에서 이 선하고 즐거운 뜻을 이루실 때, 또는 그들 안에서 참된 회심을 일으키실 때, 주께서는 복음이 그들에게 외부에서 전파되도록 배려하시고, 또한 그들의 마음을 성령에 의해 강력하게 조명하신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바르게 깨닫고 분별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성령의 중생의 효력있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셔서 닫혀 있던 마음을 여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을 할례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의지에 새로운 자질을 주입하시고 죽은 의지를 살리시고 악한 의지를 선하게 하시고 꺼려하는 의지를 자원하는 의지로, 완고한 의지를 순종하는 의지로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의지를 감동시키시고 힘을 주시니 이제 그 의지는 선한 나무처럼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제 12 항 :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인 중생

성경에는 중생은 새로운 창조이며,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고, 살아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포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생은 외적인 가르침이나 도덕적인 설득이나, 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신 후에 사람이 중생 또는 회심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생은 (중생의 창시자에 의해 영감된) 성경이 가르치는 바처럼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사역으로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즐겁고, 기이하고 신비하고 형언할 수 없는 역사로서, 창조 및 죽은 자의 부활의 능력보다 덜 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이한 방법으로 마음에 역사하신 모든 사람들은 확실하고, 틀림없이, 효과적으로 중생하며 실제로 믿게 된다. 그 후 이제 새롭게 된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 되살아나 활동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살아난 상태에서 스스로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은 그가 받은 은혜에 의해 친히 믿고 회개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제 13 항 :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방법

이생에서 신자들은 중생의 역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한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구주를 믿고 사랑하게 된 것을 알고 체험하는 것에 만족하며 안심한다.

 

제 14 항 :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는 방법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택하도록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실제로 영감과 주입에 의해 부여되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어떤 잠재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한 후에, 사람이 동의하고 믿는 행위를 보이기를 기다리는 식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이 믿음은, 의지나 행위 양면에서 역사하시고 또한 참으로 모든 사람 가운데 만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 안에 믿는 의지와 믿음 그 자체를 발생시키는 식의 선물이다.

제 15 항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줄 수 없어서 되갚을 수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빚질 수 있겠는가? 참으로 죄와 거짓 외에 아무 것도 자신의 것이 없는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빚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빚을 지며 이에 영원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 은혜를 받지 않은 자는 이러한 영적인 일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그가 처해 있는 상태에 대해 만족하며 또는 자아 확신에 빠져서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게 자랑한다. 더욱이 우리는 믿음을 외적으로 고백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에 대하여 사도들의 본을 따라 가장 호의적인 태도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들을 위해 없는 것을 불러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들과 다른 존재인 것처럼 구별하거나 또는 그들보다 더 낫다고 여기며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제 16 항 : 중생의 효과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여전히 지능과 의지를 부여받은 사람인 것처럼, 인류 전체에 퍼져온 죄 역시 인간의 본성을 없앤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본성을 일그러뜨리고 또한 영적으로 죽였다. 따라서 중생의 신령한 은혜가 사람들 안에서 역사할 때 마치 그들을 벽돌이나 돌처럼 여기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의지 및 그 속성을 없애거나 또는 꺼려하는 의지를 강제로 강요하는 식으로 역사하지 않고 그 대신 영적으로 소생시키고 치료하고 개혁하고, 단번에 선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그 의지를 반대 방향을 향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역사한다. 그 결과 이전에는 육체의 반역과 저항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성령으로 인한 준비되고 진실한 순종이 우세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는 신령한 의지의 회복과 자유가 가능하다. 따라서 만일 모든 선한 것을 지으신 놀라운 조성자께서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는 그의 타락으로부터 일어설 아무런 소망을 얻지 못한다. 이는 그가 과거에 올바르게 서 있을 때 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스스로 파멸하였기 때문이다.

 

제 17 항 : 중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편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역사로 우리의 자연 생명을 생기게 하시고 유지하실 때 방편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도리어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을 따라 그의 능력을 사용하기를 원하셨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께서 우리를 중생시키실 때 사용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는 결코 복음의 사용을 배제하거나 취소시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지혜 가운데 복음을 중생의 씨와 영혼의 양식으로 정하셨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과 그들을 계승한 교사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에 대해 경건한 방법으로 그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모든 교만한 자들을 겸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들은 복음의 거룩한 훈계를 수단으로 하여 그 백성이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시행 아래 있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교사들 또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신 즐거움 가운데 친밀하게 연합하도록 바란 것들을 분리함으로서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은혜는 훈계를 통해 부여되고,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더욱 감당하려고 노력할수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호혜는 일반적으로 더욱 광채를 낼 것이며 그의 사역은 더욱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도들 및 그것들의 구원의 열매와 효과로 인하여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원토록 돌아가야 한다. 아멘.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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