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살면 외로운가성경 말씀 묵상
2월의 말씀 산책 우리 교회는 그 달에 5째 주가 있으면 가정주간으로 정해 오후예배가 없다. 주중 내내 바쁘게 일한 직장인들이 주일에는 더 바쁘기 때문에 가족끼리 모여 안식일을 쉬면서 지내라는 뜻이다. 그 날은 교회에서 점심도 주지 않으니 가족끼리 즐거운 식사를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던 교인들도 쉬라고 막상 자리를 깔아 놓으면 무엇을 할 줄 몰라 하고 오히려 허전해 한다. 우리부부는 집에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려 빅맥과 커피, 콘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와 먹는다. 먹고 가자고 해도 아내는 노인들이 입을 크게 벌리며 빅맥을 먹고 있는 것을 보이는 것은 꼴사납다고 드라이브수루(Drive-through)로 테이크아웃 런치를 고집한다. 누군가 우리가 둘이서만 사는 노부부인 것을 알면 불쌍한 표정으로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순간이 행복하다. 우리는 여행도 패키지 여행을 즐기지 않고 둘이서 여행할 때가 훨씬 많았다. 미국에서 마지막 학위과정을 하고 있을 때는 175마일이 넘는 시골 길을 주일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우리 부부는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을 태우고 교회를 다녔었다. 세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기 때문에 아침 7시에 밥을 먹지 않고 던킨도너츠 가게에 들려 도너츠와 커피를 사 들고 먹으며 교회에 출석하면 밤늦게야 귀가했었다. 그 때는 내가 시골의 미 침례교 대학(Howard Payne University)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댈러스의 한국장로교회에서는 내가 너무 멀어 시무하기가 힘들다고 했는데도 매주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교회에 나온다고 나를 장로로 장립시켜 주기까지 했다. 밤늦게 올 때는 내가 졸리기 때문에 아내는 CCC의 주제별 성경암송 카드로 나에게 성경 암송 테스트를 하거나 내가 힘들어 못하면 자기가 찬송을 부르거나 나를 꼬집어서 내 잠을 쫓곤 했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좀처럼 찬송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고 있으면 옛날 그 때가 연상되어 행복하다. 미국에서도 뉴햄프셔의 아름다운 단풍 길도, 버지니아의 웨인즈보로에서 테네시의 스모키마운틴까지 460마일의 산 정상을 공원화한 블루리지 파크 웨이도 둘이서 다녔다. 가는 길에 블랙마운틴의 한국 선교사촌도 들렸고 한미성(노스캘로라이나 거주, 전 한남대 교수) 선교사도 만났다. 이것은 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캐나다를 여행할 때는 차가 갓길에 부딪쳐 섰는데 길 가던 행인이 토요일인데 다 문을 닫은 정비소를 찾아다니며 나를 도와주었고 교회에 오가는 길에 차가 서면 꼭 누군가가 와서 도와주었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갖는 남이 모르는 기쁨이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교회의 꽃 당번인 때가 있었다. 강대상의 꽃을 책임 진 집사에게 집에서 꽃을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전날 저녁부터 정원에 탐스럽게 핀 붓꽃을 꺾어 물에 담갔다가 다음날은 막내에게 물통과 함께 꽃을 잘 붙들게 해서 교회에 가지고 갔는데 교회에 가보니 꽃집에서 주문한 꽃이 벌써 강대상에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집이 멀어서 우리의 출석을 믿지 못하고 그랬으리라 생각하고 목사님 방에 꽃꽂이를 하고 교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예배당에 들어 왔는데 막상 예배를 드릴 때는 그 꽃이 강대상 양쪽에 놓여 있어 너무 놀란 일이 있다. 아들과 아내가 너무 상심하지 않게 해달라고 자리에 앉아 묵도를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그 꽃이 평소에 올라가 있을 수 없는 강대상 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심하지 마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려주었던 남모른 기쁨이 있었는데 이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미국 찬송가 작가 마일즈(Charles Austin Miles)가 작곡·작사한 찬송 ‘정원에서;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의 가사를 생각한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출신으로 약학을 전공하였으나 그만 두고 찬송가 작가가 된 사람이다. 평생 398곡이나 찬송가를 썼다는데 우리 찬송가집에는 단 한 곡이 있을 뿐이다. 그는 “나는 찬송가 작가로 알려진 것이 자랑스럽다. 비록 내가 바라던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원해서 기뻐 섬기는 주님에게 이것이 내가 가장 쓰임 받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정원에서 주님과 기쁨을 나누었던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남 몰래 느끼는 기쁨이기도 하다.
나는 홀로 정원에 온다 아직 장미꽃 위에 이슬이 맺혀 있다 귀에 은은히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
그분은 나와 함께 걸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신다 나는 그분의 것이라고 우리가 함께 머무는 동안 우리는 기쁨을 나눈다 우리가 서로 나눈 이 기쁨은 알 사람이 없네
우리는 둘이서 살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며 남이 모르는 기쁨을 나누고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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