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죽음 사랑하기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3. 8. 06:16

죽음 사랑하기|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33 |추천 0 |2016.03.07. 06:50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64 

3월의 말씀 산책

 

    죽음이란 슬픈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이애란의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에는 육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가 있다. 자기는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살 수 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까지 누려온 부와 명예를 박탈당할 수 없으며 쌓아온 인간관계를 끊고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래서 이 세상의 곳간에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 앞으로의 희망과 꿈을 접은 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죽음이 예고도 없이 삽시간에 코앞에 다가서는 일이다.

    지혜 있는 우리 조상들은 종교인이 아닌데도 죽음을 사랑하고 연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죽어 들어갈 관을 미리 만들어 집 처마 밑에 매달아 내놓고 수의를 만들어 장롱에 넣어두고 생각 날 때마다 그것을 꺼내어 어루만지며 죽음과 함께 사는 연습을 한다. 어떤 이는 자기가 묻힐 묘소도 미리 정해 두고 가끔 가서 거기를 거닐며 죽음을 연습한다. 그럼 막상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쌓아 놓은 재물도 없으며 탐하는 명예와 잃을 권력도 없다. 차마 눈 감고 떠날 수 없는 나약한 어린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나라에 마련된 거처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충분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고 생각한다. 내가 떠나고 나면 자녀들이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는 살림이 너무 많다. 옷가지와 가구는 다 태운다 할지라도 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아끼며 간직해 달라고 보낸 책들을 처분할 길이 없다. 4,50년 동안 추억으로 간직했던 30 권이 넘는 앨범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전제품은 버리려고 하면 아직도 쓸 만해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요즘 나는 깜박깜박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전화가 오면 그들과 가졌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름이 잊히면 추억도 사라지고 영적으로 이별도 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어떤가? 내가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와의 관계를 청산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영정사진도 찍어 놓았는데 너무 오래 되어 새로 찍어야 한다. 수의도 준비해 놓고 우리 침대의 헤드보드(headboard) 뒤편에 놓고 매일 잠든다. 그런데 아직은 쓸모가 없다. 나이가 들어 물건을 못 버리니 더 사지는 말자고 했는데 오래 살다 보니 주방기구도 바꿀 수밖에 없다. 한번은 30년 이상 덮은 오리털 이불 카버가 낡아서 닳아 구멍이 났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새 카버를 사서 씌워보려고 백화점에 갔더니 요즘은 이불 사이즈가 다 바뀌어서 맞는 것이 없다. 할 수 없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려고라는 생각하면서도 새로 이불을 사기로 했다. 이불을 사려니 베게가 허름해서 안 되었다. 그걸 바꾸려니 또 침대 시트도 새로 사야 했다. 모처럼 새로 바꾸다 보니 나쁜 것은 살 수가 없어 신혼 부부 이불을 사게 되었다.

    집에 와서 침실 치장을 하고 보니 새로 시작한 신랑 신부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자 이제 첫날밤을 보냅시다.”라고 했는데 왕 할머니가 된 아내는 이제는 나긋나긋하지 않고 팔베개를 해 준다 해도 숨 막힌다고 밀어낸다. 그러자 한 순간이었지만 갑자기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구약의 롯의 아내처럼 세상에 미련이 생긴 것이다. 어떤 목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 심방을 하고 예배를 드려 준 일이 있었는데 떠나려고 했더니 환자가 가족들을 다 내보내고 목사만 남아 달라고 했다 한다. 병실에 사람이 없어지자 그 피골이 상접한 환자는 목사를 붙들고 나랑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혼자 가려는 저승길이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천국을 사모하고 산다고 평소에 말하고 있던 목사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얼결에 먼저 가시지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두려운 것이다.

로마의 장군이 원정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장군으로 금의환향할 때는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노예들을 뒤에 이끌고 귀환한다고 한다. 그 때 그 하루는 신처럼 추앙을 받는데 그 행렬에는 한 노예를 두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계속 큰 소리로 외치게 한다고 한다. 승리의 최절정기에도 인간은 죽음을 이마에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지상으로 추방되어 사는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  


소피아 16.03.07. 18:19 new

장로님~
몇 주 안뵈어서 인사드리려 식당에 가보았더니 안계셔서...... ... 편안하시지요?
죽음사랑하기 잘 읽고갑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은혜 16.03.07. 22:13 new
교회는 꾸준히 나갑니다. 그리고 평안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아멘. 큰 깨우침을 주시는 귀한 말씀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항상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여러 가지로 체험하신 증거를 보여주시는 은혜님의 삶이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