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예수 공동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5. 13. 20:41

예수 공동체|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37 |추천 0 |2016.05.12. 20:34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73 

5월의 말씀 산책

 

    미국 미시건의 이스트렌싱(East Lansing)은 내가 1966년 하와이의 EWC(East- West Center)에서 일 년 반 동안 과학-수학 교사 연수를 받은 지 10년 만에(1976) 다시 학위를 받으러 간 곳이고 아내가 처음으로 해외로 비행기를 타고 그 다음 해에 9살의 막내아들을 데리고 미국 땅을 밟은 곳이기도 하다. 아내는 당시 처음 해외 나들이였는데 하와이-엘에이-디트로이트를 용케 거쳐 왔을 뿐 아니라 그 때 미시건 주립대학(MSU)101일의 단풍과 학교 경치가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던 곳이다. 이번 오랜만에 보스턴에 있는 아들 집을 방문하면서 38년 만에 아내가 그곳을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디트로이트 공항까지의 왕복 비행기 표와 그곳에서 3일간 MSU를 방문할 차를 빌려 놓았다.

    막상 갈 때가 되니 유학생 부인으로 고생만 했던 곳에서 무얼 볼 수 있을 것인지 또 거기서 기억나는 것이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아내는 내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다 일기예보를 보니 가는 날은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 하와이에서 한 방을 쓰던 미국 친구가 살고 있어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까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망설였는데 날씨 때문에 포기하기로 하고 50년 지기(知己)였던 친구에게 갈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그날 약간 구름이 낀다는데 무슨 말이냐는 것이었다. 운전 때문이면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가 데리러 가서 데려 오며 갈 때는 또 공항까지 배웅해 주겠다는 것이다. 택배비나 두둑이 내라고 했다. 농담이 심해서 나를 짐짝 취급하는 것이었다. 아들내외는 내가 운전하지 않게 되었다니 대 찬성이었다.

    50년 동안 연락을 해오던 내 친구는 디트로이트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EWC는 동서양의 학생을 한 방에 넣어서 서로 사귀며 살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룸메이트가 된 데이비드는 당시 총각이었고 나는 세 어린애의 아버지로 그보다 6살이나 위였다. 그 때 교제하고 있던 일본의 예쁘장한 처녀 아이리스가 지금의 아내다. 그들의 큰 딸 다미꼬는 1991년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을 때 대학교 일학년 학생이었는데 벌써 시집을 가서 13살과 11살의 두 딸의 어머니가 되어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MSU에서 국제학생 상담실장으로 오래 근무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학교 근방에 살고 있었으며 딸 다미꼬는 주청이 있는 다운타운의 외진 곳에 싼 집을 사서 그곳 주민들과 공통체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총각 때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지금은 장로 교인으로 장로로 은퇴는 하였지만 가까운 교회에 충성스런 교인이 되어 있었다. 아내 아이리스는 고등학교 선생을 은퇴하고 APAWA(Asian Pacific American Women's Association;아태미국인여성협회) 회장 격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본인 2세로 미국에서 자기와 같은 약소민족으로 자기네는 누구이며, 어떤 기여를 하고 있으며 미국을 위해 어떤 걱정을 하고 사는 소수 민족인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이들의 자녀들에게 모금을 하여 장학금을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딸 다미꼬는 주청 주변의 빈민가와 같은 곳에 살면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터를 공동 관리하며 닭집을 만들어 19마리의 암탉을 기르는데 이것도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가정들이 공동 관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월요일이 자기가 닭을 관리하는 순서가 되면 닭 관리를 하고 또 그 때 암탉들이 낳는 알은 자기가 다 먹는다는 것이다. 공동 텃밭에 심는 무공해 농산물은 무엇을 심을 것인지 함께 상의하고 주말에는 모두 음식을 장만해서 함께 먹으며 일주일의 계획을 또 상의한다는 것이었다. 세탁기도 몇 개만 놓고 공동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신앙공동체라고 말하면서 교회에 모였다 흩어지면 그만이다. 서로 함께 살며 걱정하며 같이 고난을 이겨내는 일이 없다. 정말 기독교인은 이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 친구 데이비드는 나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내가 불편하다고 자기 집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자 호텔을 빌려 대금을 다 지불하고 공항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내가 밖에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해도 굳이 집에서 먹자고 말하며 호텔에 가서 먹으라고 이것저것 싸준다. 나는 그들을 보며 내가 진정 예수의 사랑을 나누는 기독교인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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