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안아주기 운동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6. 6. 19:03

안아주기 운동|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17 |추천 0 |2016.06.06. 06:21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74 

6월의 말씀 산책

 

    안아주기 운동(Free Hugs Campaign)2001년 제이슨 헌터라는 사람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누구나 그들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라는 유언을 남긴 것 때문에 시작된 운동으로 포옹을 통해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호주의 후안 만(Juan Mann)이라는 펜네임을 가진 분 때문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영국에서 오랜 동안 힘들게 상처를 받고 살다가 고향인 시드니에 돌아왔는데 가족도, 반기는 사람도 없고 집이라고 부를 곳도 없어 마치 자기는 이방인으로 비행장 출구에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반기는 친구와 가족을 만나고 포옹하고 웃고 즐기고 있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자기도 누군가가 마중 나와서 자기를 만나 행복해 하고 안아 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카드보드에 <Free Hugs>라고 써서 분주한 길거리에 서 있었는데 모두 쳐다보고 킬킬거리고 자나갈 뿐 안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15분 쯤 지날 때 한 나이 든 부인이 다가와 그를 안아 주었다. 그녀는 아침에 강아지가 죽고 일 년 전엔 차 사고로 딸을 잃은 분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이었지만 포옹하고 미소하며 헤어졌다.

   2004년에 그는 본격적으로 안아주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시드니 중심, 피트(Pitt) 가에 있는 몰(Mall) 앞에서 <Free Hugs>라는 카드보드를 들고 낯선 사람들에게 안아달라고 호소하였다. 자기가 안아주고, 안김을 받으며 또 상대방에게 자기처럼 카드보드에 글을 써서 낯선 사람들과 안아주기 운동을 시작하라고 권한 것이다.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는데 이 상처를 포옹으로 서로 치유 받고 밝은 미래를 살자는 것이다. 이는 점차 사회의 호응을 얻게 되었으나 어려운 일도 없지 않았다. 2005년에는 열린 광장에서 낯선 사람을 붙들고 포옹하는 것은 공공질서를 문란케 한다고 경찰은 이런 활동을 하려면 250만 불(25억 원)의 책임 보험에 든 뒤에 활동하라는 경고를 했다. 그러나 만 명이 넘는 지지자들의 호소문으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호주 뮤직밴드인 ‘Sick Puppies;병든 강아지들은 만(Mann)과 그의 추종자들이 포옹하고 감격해 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만들어 로스앤젤레스에 유포했다.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으나 2006년 만(Mann)의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 호주의 뮤직밴드 사가 그에게 선물로 보낸 비디오와 음악은 큰 효과를 거두어 이것이 유튜브에 올랐으며 그 해 1030일 그가 유명한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의 인터뷰를 끝내고 나왔을 때는 많은 인파가 그와 포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드디어 2015년까지 유튜브(YouTube)를 방문한 사람은 770만 명을 넘었으며 안아주기 운동은 매년 7월 첫 토요일부터 한 달 간을 국제 포옹의 달로 선포되기도 했다고 한다

  

    상처를 안고 돌아온 탕자를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가 달려와 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이는 잃었다가 다시 얻은 내 아들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이런 아버지의 포옹이면 아무리 큰 상처인들 치유되지 않겠는가? 나는 절친한 친구를 권유하다가 오해를 받고 깊은 상처로 괴로워 하고 있는 교인을 안다. 그는 신앙으로 쌓아올린 소망이 산산조각이 되어 그 친구의 얼굴을 대할 수 없다고 교회를 그만 나올 생각을 여러 번 내비쳤다. 나는 그를 위해 상대방을 만나 오해를 풀라고 권고했으나 상대방은 자기는 잘못이 없으며 상처를 준 일이 없으니 만날 필요도 없다고 당당했다.

    아무 불의도 죄도 없는 예수님은 비난을 받을 이유도 없는데 창에 찔리고 저주를 받고 침 뱉음을 받으면서도 저들이 몰라서 그런다고 인류를 용서하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나는 주님께서 오셔서 내 친구를 안아 주며 나는 많은 시험을 받고 고난을 당하였다. 그것은 시험받는 너를 능히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으면 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내가 그를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화적인 차이인지 도저히 팔이 그의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마음으로만 수없이 안아줄 뿐이다.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라는데 내 사랑이 어떻게 전해져서 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나도 <Free Hugs>라는 카드보드를 들고 그의 앞에 서고 싶다. 만일 그가 이 팻말을 보고 달려오면 용감히 그를 진정 안아주고 싶다.



'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의 기도   (0) 2016.06.29
내게는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0) 2016.06.24
예수 공동체  (0) 2016.05.13
두 가지 걱정  (0) 2016.04.29
늙었는가, 젊었는가  (0) 201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