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가이사 집의 성도들(빌4장22) / 한경직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9. 16:46

가이사 집의 성도들(422)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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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모든 권면(勸勉)을 마친 후에 마지막 문안을 하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는데 특별히 가이사집에 있는 몇 성도들도 너희들에게 문안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성도들이라고 하는 말은 천주교에서 중세기 이래로 사용해 온 것과 같은 특별한 성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성도라는 말은 모든 믿는 사람을 의미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聖別)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가이사집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가이사라고 하는 말은 그 때 로마 황제의 칭호입니다. 또 가이사집이라는 말은 개인의 집을 말한 것이 아니라 궁중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 황제의 궁정에서 일하는 궁내 대신을 비롯해서 비서, 궁녀, 시위대장관, 군인 등을 포함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것은, 이 때에 벌써 로마 제국 황제의 궁중에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올시다.

그 때의 황제가 누구였는지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 때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로마 역사상 가장 악한 제왕이라고 말합니다.

그이가 얼마나 포악하였는지 그는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자기 아들도 죽이고 자기 아내까지 죽인 사람이올시다.

 

악마의 화신 그대로였습니다.

로마 성을 자기 손으로 불 놓고 그 책임을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많은 기독교도들을 학살한 왕입니다. 학살을 하되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 것입니다.

 

더러는 십자가에 못박고 더러는 사자 굴에 내어 던져서, 혹은 옷에다 골탈 칠을 해서 기둥에 비 끌어매고 불을 질러서 죽인 가장 잔인한 제왕입니다. 그러니 당시 궁중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포악하고 잔인했습니다. 공포와 불안에 쌓인 궁중입니다. 반면에 음란과 사치와 방탕과 온갖 죄악의 구렁텅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시위대 군인들 가운데 혹은 비서들 가운데 혹은 궁녀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 가이사집의 성도들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오는 큰 느낌은 이런 죄악의 소굴에도 성도들이 있었던 것을 보니 신앙 생활은 어떤 환경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항간에요사이 관청에 있으면 신앙생활 못해하는 말이 들립니다.

혹은요새 장사꾼으로서는 신앙 생활하기 힘들어하는 말들이 들립니다.

여러분 가이사집의 성도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런 거슬리는 환경 가운데서 신앙 생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장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다녀온 어떤 분의 말 가운데, 그 곳에서 북한에서 유학 온 청년 몇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자기를 조용히 보자고 하더니 자기 포켓에서 조그마한 책을 하나 꺼내 보이면서 이것이 무슨 책인지 아세요?

이것은 우리 한국말로 된 신약성서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청년입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북한에 그리스도를 믿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에도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가이사집의 성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생활은 쉬운 것이라 말씀하신 적은 절대로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받으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우리가 사방으로 욱여 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함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기록했습니다. 내가 비천(卑賤)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나는 너무 가난해서 못 믿겠다. 나는 너무 고독해서 못 믿겠다. 혹은 나는 우리 부모가 믿지 않으니까 믿기 어렵다. 혹은 내 남편이 믿지 않으니 못 믿겠다. 혹은 내가 받드는 사장님이 믿지 않으니 내가 믿기 어렵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여러분 가운데 혹 있습니까?

이 가이사집에서 예수를 믿던 성도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 가이사집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 들어오는 생각은 참 신앙은 모든 환경을 극복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빌립보서는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록했습니다. 감옥은 고독한 곳입니다. 감옥은 침울한 곳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안에서도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환경을 극복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12절 이하를 보면,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알기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남이 되었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감옥이라는 환경을 극복한 분입니다.

이렇게 전도함으로써 가이사집의 성도들이 생긴 모양입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그와 같은 이교의 궁중에서 양심적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양심적 신앙 생활을 계속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불신 사회에서 살게 될 때에 언제나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점점 세상을 따라가면서 마지막에는 세상에 물들어 맛 잃은 소금이 될 수가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을 그런 가운데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점점 세상을 변화하게 해서 복음 화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을 가진 사도 바울의 신앙 생활이었습니다.

이것이 가이사집 성도들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 후의 역사를 보면 여러 가지 핍박과 환난을 불구하고 이 가이사집 성도의 수는 점점 많아 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콘스탄틴 황제 때는 황제도 믿게 되고 그 어머니도 믿게 되어 온 가족이 다 믿고 마지막에는 로마 전국을 영적으로 정복한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보통 집에 들어 가보면 한란계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 무엇 하는 겁니까?

한란계는 방안의 온도가 더운지 찬지를 얼른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집에 가보면 한란계가 하나 더 있지요.

 

제온기(制溫器)라는 것이 있지요.

이 제온기라는 것은 온도를 내가 원하는 대로 놓으면 방안의 온도가 변해서 그 제온기의 온도만큼 됩니다.

냉난방이 자동으로 제온기를 따라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압니까?

믿는 사람들 가운데 두 가지 종류의 믿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한란계 비슷합니다.

 

자기 주위 환경의 온도에 따라서 같이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제온기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자기가 표준 한 그 표준대로 다른 사람을 따라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신자입니까?

제온기와 같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 젊은 남녀들이 새로 학습을 썼습니다.

제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마는 아마 여기 특별히 여자들 가운데 이 다음에 출가할 때에 혹 믿지 아니하는 가정으로 출가하는 여자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믿지 아니하는 가정에 출가를 한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교회도 나오고 또 교회 봉사도 하느라고 애쓰다가 몇 해 지나 보면 점점 믿음이 식어져서 믿지 아니하는 가정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믿지 않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꼭 같이 믿지 아니하는 가정 출가를 하였는데 그 가정에 출가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킬뿐더러 남편도 회개시키고 시어머니도 회개시키고 또 시아버지까지 교회로 인도하고 온 가정을 다 복음 화하는 그런 여자들도 있음을 많이 보았습니다.

 

참 신앙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첫째는 참으로 중생한 믿음으로 죄를 회개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거듭난 믿음, 새 사람이 된 믿음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중생 한 후에도 계속해서 기도를 힘쓰고 성경 읽기를 힘쓰고 예배에 출석하고 성례에 참여하고 봉사와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는 믿음입니다. 그리해서 간단없이 새로운 힘과 은혜를 받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로는 행함이 따르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믿음입니다.

리해서 어디 가든지 성경과 건실(健實)과 근면과 단정함으로써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적 생활을 하는 신자입니다.

 

넷째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믿음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새로운 은혜를 받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어디에 갖다 놓든지 모든 환경을 극복합니다.

오늘 학습을 서는 여러분들 특별히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 중에 불우하고 고독한 환경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하며 때때로 낙심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가이사집의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새로운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쉬운 환경이 아닙니다.

중생의 은혜와 또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산 믿음입니다.

먼저 온전히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고 산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이든지 그 환경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결 가는 대로 떠다닙니다. 그러나 산 고기는 비록 쏟아지는 폭포수라도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산 믿음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사회는 포악과 무도가 가득하고 음란과 방탕(放蕩)이 가득 찬 세상, 허영, 사치, 부정, 온갖 죄악이 가득한 말하자면 한 큰 가이사의 집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킬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을 이기며 이런 세상을 변화시켜 새 세상을 만드는 사명이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명을 다 하려면 옛날 가이사집의 성도들이 가졌던 신앙과 같은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원에 가면 연못 둘이 있지 않습니까?

연못의 연꽃이 아주 아름답게 잘 피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꽃의 줄기를 보면 그 줄기는 더러운 진흙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꽃은 어떻게 아름답고 깨끗한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비록 이 더러운 세상에 산다고 하지마는, 우리 몸은 이와 같은 환경에 있다고 하지마는, 우리의 심령만은 연꽃과 같이 아름답고 청아한 향기를 품는 심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이사집의 성도들을 기억해서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그 환경 가운데서 환경을 극복하고 내 신앙 생활을 할 뿐더러 온 환경을 변화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게 하는 큰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메모 : 한경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