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가장 고귀한 생활(히11장1-7;창5장24) / 한경직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9. 16:47

가장 고귀한 생활(111-7;524)



 

창세기 5장에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족보들은 일정한 규범에 의지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가령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807년을 지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912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했습니다.

 

이렇게 아무개는 아무를 낳았고 아무를 낳은 후에 몇 년을 지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다고 꼭 일정한 규범에 의지해서 기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에 대해서는 꼭 같이 써 내려오다가 다만 마지막에 죽었더라 하는 말이 없고 지금 읽은 24절의 말씀이 첨가되었습니다.

 

에녹은 노아 전 시대에 산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아주 악한 시대였습니다. 결국 노아 때에 심판을 받은 패역(悖逆)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는 여러 시간 넓은 길을 걷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닌 줄 생각합니다.

이것은 때로는 저항을 의미하며 투쟁을 의미하며 용기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그는 죄악이 관영(貫盈)한 시대에서도 가장 고귀한 생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오늘 아침에 이 문제를 중심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히브리 11장을 읽었거니와 히브리 저자는 한마디로 에녹의 생활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에녹이 믿음으로 그렇게 살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와 같이 확실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믿음입니다.

 

모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은 것같이 그 안에서 사는 마음, 그것이 믿음입니다.

에녹은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분명히 의식하였습니다.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첫 걸음인 줄 생각합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높이 앉으신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볼 때에 부르짖은 말씀을 여러분이 기억할 것입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 만 군의 여호와를 뵈었음이로다.

 

인간이 하나님을 직면하게 될 때에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자복(自服)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는 방향을 돌이킴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녹도 회개하고 방향을 돌이킴으로써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동행하려면 방향이 같아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하나님의 가는 방향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회개하기 전에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질을 쳤지마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한번 만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방향으로 전향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코자 하는 이는 곧 온전한 회개,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세상 길로 가던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신 혁명을 의미합니다.

결단을 의미합니다.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둘이 같이 길을 걸으려면 뜻이 같아야 합니다.

뜻이 다르면 오래 동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에녹은 언제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의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고 순종한 줄 생각합니다.

내 욕심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내 정욕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내 교만대로가 아니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복(順服)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뜻이 아니고 언제나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의 뜻에 종순(從順)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사람의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희생한 것입니다.

 

이 순복 만이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은 먼저 믿음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뜻과 같게 해서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악한 시대에서 그런 고귀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극기, 절제를 의미할 뿐 더러 때로는 핍박을 받았을 것이요, 곤란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면에 많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의 축복이 무엇일까?

우선 그는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긴 여행을 해 본 이는 누구나 체험하는 대로 홀로 여행하려면 고독을 느낍니다.

인간 일생은 긴 여행인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아니하면 언제나 고독감을 면치 못합니다.

특별히 병들 때 슬픈 일을 당할 때는 더욱 외로워집니다.

 

살 때도 그렇거니와 죽을 때의 그 심령의 고독은 무엇이라 형언키 곤란할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일수록 이 고독감은 더 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고독해서 병도 나고, 고독해서 신경도 쇠약해지고, 심지어는 노이로제까지 들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제자들에게 그와 같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와 같이 갈 터이요, 쉼을 주리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또한 그대로 하신 것입니다.
인간 심령에 있는 이 깊은 고독감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에녹에게는 안식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 행로는 결코 늘 평탄치는 못합니다.

때로는 태산 준령, 험곡())이 있습니다.

장강(長江)대하(大河)가 앞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길가에는 많은 원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가는 길은 밤길과 같아서 앞을 미리 보지 못합니다.

 

70년대가 사실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올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행로를 걷는 이들은 언제나 불안감, 공포감에 싸여서 걷게 됩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만이 불안감이 해소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도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주께서 동행하실 때에 불안감은 없어집니다.

 

이사야 431-2절을 읽어보세요.

거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동행하는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 않을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찬송을 종종 부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에게는 불안감이 해소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에녹에게는 즐거움이 충만했습니다.

시편 1612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다윗이 노래하였습니다.

 

요한 복음 15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이에게는 주님의 기쁨이 충만합니다.

 

사도 바울은 백발노인으로서 감옥에 있으면서 당시 빌립보 교우들에게 편지할 때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외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와 동행한 까닭입니다.

 

또한 애녹의 생활에는 전진과 향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 인격은 장성합니다.

믿음에 덕이 더하여집니다.

덕에 지식이 더하여 집니다.

지식에 절제가 더 하여 집니다.

절제에 인내가 더하여 집니다.

인내에 경건(敬虔)이 더하여 집니다.

그 위에 형제 우애와 사랑이 더 가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욱 고귀한 생활로 향상하는 것입니다.

그의 모습은 점점 주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본래에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건한 이는 하나님께서 거저 하늘로 데려가십니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던지 안 하십니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던지 안 하던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곳, 주님의 계신 곳, 천군 천사가 있는 곳, 모든 승리한 성도가 계신 곳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의 받는 축복은 사람의 형언하는 말로는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는 이 땅위에 살지마는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이에게는 사실 죽음은 없습니다.

때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거저 데려가시는 것뿐입니다.

 

인생은 한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인생의 길은 외롭고 험합니다.

 

여러분,

행자가 있습니까?

아무리 가족이 가까워도 항상 동행하지는 못합니다.

갈라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친구가 가깝다가도 항상 동행자는 못 되고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헤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항상, 아니 영원히 동행할 수 있는 이는 주님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세요.

한 걸음 ,한 걸음을 주님과 동행하세요.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세요.

이런 생활은 가장 고귀하고, 가장 의롭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정하고, 사실 하나님 나라의 생활입니다.

 

에녹만 하나님과 동행한 분이 아닙니다.

모세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모든 선지자들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모든 사도들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아니 세기를 통해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참된 회개와 순복, 이 축복이 우리에게 오늘 아침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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