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다 성함을 얻으려면(막6장53-56) / 이동원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8. 9. 17:17

다 성함을 얻으려면(653-56)


출처: 이동원 목사

 

 

여러분, 병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병고칠 수 있다.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성경은 약속하기를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앞에 오기만 하면 다 치유될 수 있다.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56절의 마지막 구절에 보시면 '다 성함을 얻으니라' 그랬습니다.

얼마나 복음이예요?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다 성함을 얻으니라'

 

그러나 어떤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앞에 고침을 구하면서 나왔던 그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지 못한 것은 어떻게 말씀 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런 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 성함을 받는다' 이 말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앞에 붙어있는 전제가 있어요. 단서가 있습니다.

'다 성함을 얻으니라' 그 앞에 어떤 말이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까?

'손을 대는 자는' 그랬습니다.

손을 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조금 후에 제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만은 주앞에 나 오면 치유는 반드시 일어나는데 그 치유를 발생시키기 위한 상황적 조건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전제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야 한다."

여기 다 성함을 얻는다는 말은 비단 육체의 고침을 뜻할 때만 사용되는 그런 단어는 아닙니다.

성함을 얻는다. 온전하게 된다. 이 말은 육체적으로 잘된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으로, 영적으로 잘된다는 그런 의미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육체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인 차원에서의 치유를 약속합니다.

영적인 치유, 정신적 치유 그러면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구원이지요.

우리가 구원 받는 것 - 구원을 받는다.

여러분, 교회 나와서 구원을 받았는가?

내가 구원을 받았다라는 확신이 없이는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입니다.

구원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까?

성경은 누누히 약속하기를 누구든지 구원받는다. 누구든지 다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도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가 잘아는 로마서 10 13절에 보시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 사이에 들어가는 말이 있어요.

누구든지 어떡해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이 전제적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조건이라는 낱말을 신학자들 가운데는 좋 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무슨 조건부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조건'이라는 단어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건이라는 말 대신에 '방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구원의 방편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도 상황적인 그 무엇이 필요하단 말이예요.

 

, 오늘 우리는 전도 잔치를 금요일날 앞에 두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번 잔치에 나와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믿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 우리들이 기도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다 마음과 육체가 다 치료를 받고, 새로워지고, 구원을 경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예수앞에 나온 사람들이 오늘 성경에 보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고침을 받을수 있었던 어떤 상황이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다 치료되고, 구원받고, 인생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무엇이 도대체 필요할까요?

첫째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요즈음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 것 같아요?

제가 어제 저녁 토요 열린 예배에서 질문을 던지니까 앞에 앉아 계신 어느 분이 지구촌교회요! 라고 말하더라구요. 요즈음 예수님이 어디에 계세요?

, 본문의 55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오니"

자 본문의 상 황은 53절에 보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다시 배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오셨습니다.

게네사렛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유대나라 갈릴리 마을은, 마을 여기저기에 갈릴리 바다 호수가에 여러 마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들을 따라서, 자기 타운이름을 따라서 갈릴리바다의 이름을 여러가지로 부릅니다. 디베리야에 사는 사람들은 디베리야 앞에 바다가 있으니까 디베리야 바다라고 부르고 또, 긴네렛 타운에서 사는 사람들은 게네사렛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갈릴리 바다의 이름이 많아요. 다 한 수입니다. , 게네사렛 그땅에 예수님이 오셨다. 이 소문이 퍼지자 오늘 55 절의 말씀처럼 예수가 어디에 계시다.

예수가 거기에 계시다. 게네사렛 그 마을에 도착하셨다. 이 소식을 듣자 사람들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구원자 예수, 치유자 예수, 예수님을 만난 사람마다 인생이 변하고 고침을 받고 새로워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사람들은 달려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질문은 요즈음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무슨 그런 말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어디나 다 계시지요.

 

맞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고백의 가장 중요한 전제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는 누구이십니까? 우리가 분명 믿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고백이예요.

,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면 그가 전능자, 전지하신 분이라면 그는 어디나 다 계시지요. 하나님은 안계신 곳이 없어요.

 

그런데 구약에 보시면 어디나 계신 그 하나님이 한 특별한 장소를 선택하여 거기에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 신의 기적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지요?

하나님은 다 계신데 성전이 왜 필요해요?

내가 거할 성소를 지어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솔로몬이 짓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은 감격에 찬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그 다음에 이런 말을 했어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시겠거 늘... ”

이것은 참 중요한 말입니다.

,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 그래서 만물 안에 계시기에는 너무나 크신 하나님이예요. 그래서 그는 만물 위에 계신 분입니다. 만물을 초월해 계신 분, 하늘의 하늘도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분, 창조자이신 하나님 그런데 그 놀라우신 하나님이 이 성소에 과연 거하시겠습니까?

 

감격에 찬 그런 고백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술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고 말합니다.

초월하시는 하나님 -

우주도, 하늘의 하늘도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우신 하나님이 그러나 때로는 자신을 제한하시고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임재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교회주의자들의 문제점을 알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뭐 교회당에만 계시냐? 어디에서든지 예배할 수 있다. 교회 안가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부분적으로 옳은 생각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은 인지하면서 하나님의 내재성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계시지요. 그 말은 사실이예요.

그러나 그 하나님은 때때로 어느 특정한 장소를 선택하여 거기에 나타내십니다.

 

구약의 성전에서 자기를 계시 신 하나님, 지금은 어떻게 역사하실 까요?

저는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성전과 꼭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구약의 템플, 빌딩을 강조하던 그 사상은 신약적으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성전은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직도, 신약성경은 아직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합심해서 주님을 예배하는 그곳,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나도 그들 중에 거한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주의 이름을 높여 드리며 주님을 찬양하는 곳, 주께서 거기에 임재하신다. 거기에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신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 주신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배가 왜 중요해요?

예배 -

주님을 특별한 의미에서 체험하겠다. 주님은 우리 집에도 계시지만 그러나 예배에 오면 특별한 마음이 있잖아요? 특별한 설레임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설교가인 영국 런던의 웨스터 민스터 채플의 목사였던 마틴 로이드 존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살면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로맨스이다.’

로맨스가 뭐예요? 사랑하는 사람 만나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 두근거리고, 설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 올때 어떤 생각을 하고 오세요? 내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 곳, 거기서 당신의 모습을 계시하시는 내 사랑하는 주님을 경험한다. 찬양 중에 만나고 기도중에서 나는 사랑하는 주님을 만난다. 나의 소망의 소망이신 주님, 나의 사랑의 사랑이신 주님,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고, 내 삶에 꿈과 소망을 주신 놀라 우신 주님을 나는 예배를 통해서 오늘 새롭게 만난다.

 

그 주님을 생각만 해도 내 가슴속에 감격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예배는 황홀한 로맨스다. 황홀한 로맨스다. 예배는 특별한 감격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예배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경험할 수 있지만 저는 특별한 예배는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특별히 준비하고 주님을 기대하는 곳, 목이 타는 갈증을 주님을 기대하는 그 곳에서는 저는 특별하신 주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이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옛날,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각성이 일어나던 시대에 살았던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철학을 갖고 있어요.

가급적이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도, 어떤 예배에라도 나는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빠진 그 예 배에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낼 때 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miss할 수 있으니까...하필이면 내가 빠졌던 그 날의 예배에, 그 날의 특별한 모임에 하나님이 오셨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경험했다. 나는 불행히도 그 자리에 없었다.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섭섭한 일입니까?

그래서 청교도들의 인생철학 가운데 하나는 가급적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빠진 그 예배가 하나님의 영광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였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지나간 몇달 동안 특별한 의미에서 금,,일 이번 사흘간의 집회를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속에 애타는 기다림을 가지고 준비해 왔고,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서 복음을 들었으면 좋겠다. 내 친구, 내 가족,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들, 그리고 우리의 친척, 그리고 우리의 동네에서 만나는 익숙한 얼굴들...

그러나 예수가 없어서 마음이 공허하고, 삶의 방향을 모르는 이웃들. 그들이 와서 복 음을 들을 때 그들의 인생이 좀 변했으면 좋겠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번 집회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사모할 때 주님이 거기에 오시지 않겠습니까?

이 주말에 우리 교회를 찾아오셔서 특별한 의미에서 우리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실 주님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어디에 계신가? 마치 저 놀라운 구원자 예수, 치유자 예수가 게네사렛 땅에 오셨다. 이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졌습니다. 예수를 만나러 가자, 달려 왔던 것처럼 주님앞에 달려오는 영혼들의 모습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다 온전해지고 구원을 경험하고 새로워지길 위하여 두 번째로 하실 일이 있습니다.

예수께로 사람들을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 55절을 다시한번 읽어보시면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오니

 

왜 침상채로 메고 나왔을 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 스스로 일어설수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병든 사람. 이 완전한 무력속에 절망속에 주저앉은 이 사람.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사람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침상을, bed를 가지고 와서 들쳐업고 아니면 메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사 랑하시는 여러분. 비슷한 광경이 우 리 주위에 벌어지고 있잖아요? 자기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사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예수 만날 수 없고,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도무지 예수를 만날 수가 없는 그 들. 그들을 데리고 나올려는 노력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우리가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중 풍병자 한 사람. 그가 고침받고 그가 죄사함받고 그가 새로워지는 인생을 기대하면서 몇사람이 그를 도왔습니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아니, 예수님 앞으로 오려고 그러는데 벌써 예수님 계신 그 집을 사람들이 포위하고 있었어요.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포기했습니까?

, 이 네친구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휘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지붕으로 올라갔어요. , 그 안에 있던 예수님이나 그 일행들이 얼마나 많이 놀랬겠어요? 그 당시 지붕을 한국식 지붕, 극동식 지붕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중동지방의 지붕은 좀 허술합니다. 나뭇잎으로 엮어 대충 해놓은 거라 훨씬 뜯기는 쉬웠을거예요.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충격이었습니다.

, 우리가 앉은 이 자리에서 누군가 지붕을 뚫고 있어요.상상해보세요. 흙이 떨어지 고 있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 니,저렇게 무례한 사람들이 어디있어?“

 

그 순간 서서히 들것이 네 친구 에 의해 예수님 계신 곳으로 내려오고 있는 그 광경을 보세요."아니,당 신들 뭐하는거요? 사람들 다치잖아"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네 친구 에게는 오직 하나의 관심.'우리 사 랑하는 친구가

 

예수 만나야 된다,변화되야 한다'이 사랑하는 친구가 예수님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비난도 그들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오직 한 생각. 이 사람.내친구 예수 만나야 한다. 그것밖에는 다른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들은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지불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데리고 거기까지 오는 시간.시간을 썼습니다.

 

여러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그들의 운명의 변화,인생의 변화를 원한다면 그정도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어요? 시간 써야되요.

 

사람들의 어떤 비난도 감수했습니다. 심지어 이 중풍병자가 고침받은 다음에 어떻게 했을까요?

네 사람이. 남의 집 지붕 뜯어놨으니까 어떻게 해요? 손해배상 해야겠죠. 저는 생각컨데 이 네명의 친구들은 기꺼이 그런 대가를 지불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 기도했던 이 사람. 그가 성함을 얻기 위하여, 그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가 치료를 받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수 있다.아니, 왜 우 리가 이런 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놓으셨습니다.그리고 그를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지불하신 대가. 내가 구원받고 내 인생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하나님은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빌리 그레함이 마지막으로 한국에 와서 전도대회를 했을 때 저도 옆에서 도왔습니다만은 준비위원중의 한 사람으로. 지금 제생각으로는 조선 호텔이라고 기억하는데요. 기자회견 이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젊은, 예리한,샤프한 기자 하나가 빌리그 레함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들이 빌리 그레함 본부에 서 수없이 많은 돈을 쓰면서 그리고,한국교회를 동원해서 이 전도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경비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요? 차라리 사회봉사 기관에 그 돈을 기부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뭐라고 대답하나?' 제가 궁금했어요. 가슴 조아리면서. 이렇게 대답한 것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구요.

"만약 우리가 인도하는 이 전도대회를 통해서 만약 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할 지라도 저는 이 대회를 치룬. 그리고 이것을 위해 사용한 금액의 값어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만 구원을 받아도.

왜냐하면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는 이 세상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의 가치.한 생명의 가치. 사람이 자기의 목숨과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온 천하를 얻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신 한 영혼의 가치. 한 생명의 가치. 온 세상보다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지불할 수가 있다. 전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예수 믿기 까지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오기 까지 성숙과 성장을 돕기 위한 얼마나 많은 손길들이 우리 주위에 있을까요?

나를 위해서 기도했던 부모님. 내 친구들. 내 이웃들. 내 영혼의 구원에 관심을 가졌던 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수고와 눈물을 기억해 보십시오.

 

저는 저희 집근처의 사돈의 팔촌 까지 뒤져도 예수 믿는 사람 그림자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 나오기 시작하는데 워낙 배경이 없으니까 빨리 신앙이 안들어 오더라구요. 3년 가까이 거의 4년동안 교회 주변에서 빙빙 돌았습니다.

 

그러다 Bible study를 통해서 어느날 드디어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배경이 있었으면 빨리 깨달았을텐데 워낙 배경이 없으니까 3년 반쯤 교회 나간후에야 비로소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성경공부하다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종교와 복음의 차이.십자가의 감격.'나는 내 최선만 다하고 양심껏 살면 천당가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내 최선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가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갑자기 깨달아지더라구요. 어느날 갑자기.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구나..'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견딜수가 없어요. 그런 사건이 일어난 후 몇 달 후에 젊은이들 모인 모임에서 간증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15분 간증.처음으로 간증을 했어요.

간증이 끝나고 나니까 여러사람이 와서 제손을 잡아주 면서 Mr.Lee 간증이 좋았대요.그래서 Mr.Lee를 위해서 기도했대요.

 

어떤 선배가 후배가 와서 그러고 어떤 친구가 와서 그러고 또 나이 많으신 분이 와서 그러더라구요.목사님도 그러고. ..자네를 위해서 기도했대요.

난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깜짝 놀랬어요.

 

근데 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갑자기 한가지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 내가 빚졌구나..내가 빚을 졌구나.. 내가 순간 이 신앙의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도와줬는가? 나는 빚진 자야

 

로마서 1장의 바울의 고백.'나는 빚진자라..'그말이 얼마나 실감있게 이해가 됬는지 몰라요.나는 빚진자라. 나는 빚진자라..

 

따라서 해보세요.

나는 빚진자라..

 

여러분이 오늘 예수믿고 이 자리에 버티고 서서 주님을 찬양하기까지 나를 위해 기도한 그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사랑의 수고를 기억해 보세요.

여러분은 빚진자가 아닙니까?

빚좀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갚으시겠습니까?

이제 누군가 또 나를 통해서 내 수고를 통해서 예수님 앞에 나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걸어올 수 없는 사람 들.스스로 교회 나올 수 없는 사람. 스스로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 그들이 복음의 자리에 앉아서 복음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협력해서 교회가 협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치를 연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함께. 아니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바로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령하고 새로워지게 하기 위하여 교회가 존재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예수께서 역사하실 그 집회의 장소에 그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치료받고 펄펄뛰며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며 나가는 모습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데려오시겠느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하여 내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잔치의 소식을 알려주고 그들을 주 앞에 데리고 오시겠습니까?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들이 다 성함을 얻기 위하여 그들이 변화되기 위하여 그들이 다 새로워지기 위하여 우리가 세 번째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그들이 손을 내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절의 말씀이죠? . 5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56절 다같이 읽어요.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리라'

손을 댔다는 말이 그냥 손만 댔 는 뜻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손을 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손을 댔다는 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당신이 나를 고쳐주실 것을 정말 믿습니다"하고 손을 내미는 것.그것은 다른 의미예요.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touch. 믿음의 손을 내미는 것.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도 고칠 것 같다.' 기대가 일어나요."예수님..나 고쳐 주세요.예수님 나 구원 주세요.예수님 나도 당신을 신뢰하고 싶어요.나도 변화되고 싶어요. 당신을 믿습니다.

손을 내밀어 예수 님의 옷을 touch하는 그 순간. 그 순간.touch하는 그 순간.주의 능력 이 그에게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는 새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고침 받기 시작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 하는 사람들가운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와서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복음을 설명해 줄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내가 믿겠다'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결정적으로 내가 기도했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예수를 의지하게 되는 것. 아니,예수님의 구원을 호소하게 만드는 것.나 구원받고 싶어요. 어찌하여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부르짖음.구원을 향한 호소.구원을 향한 갈망.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이 부분은 하나님이 하시 는 일이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예수를 향해 그들이 손을 내밀어

"예수 님 나 구원해주세요."

 

소리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작정한 사람들.그들의 영혼이 구원될 수 있도록 좀 기도해 보세요.열심히 기도해 보세요. 그럴 때 그들의 마음속에서 믿음이 일어나요.이 부분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예요

.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에이브라함 링컨대통령은 자주 부상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야전 크리닉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부상자들을 위로하려고.

,한번은 야전 병원에 들어갔는데 중환자들이 쭉 누워 있습니다. 거기에서 제일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의 침상곁으로 에이브라함 링컨은 다가갔습니다.

"자네 아프지? 얼마나 아픈가? 내가 뭐 도와줄 것이 있나?"

그러자 가느다란 신음소리로 이 병사가 말하기를

"..편지좀 써주세요..편지좀 써주세요"

그러더래요.

 

"편지? 무슨 편지?"

"어머니에게 편지 좀 써주세요"

그는 얼른 참모에게 노트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그리고 펜을 꺼냈습니다. 그 병사에게

"불러요.제가 편지 써줄께요"

"그래요

 

병사 는 웃으면서 부르기 시작합니다.

"어머니..사랑하는 어머니..나는 어쩌면 병상에서 다시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저는 전선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고통스럽습니다.

저는 곧 제 생명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어머니.자랑스러워 해주십시오. 당신의 아들은 용감하게 싸웠습니다.조국을 위해서 그리고 자유를 위하여 싸웠습니다.저는 편안히 죽을 것입니다.

어머니..이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며 어머니의 나머지 생애가 행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병사가 불러주는 대로 에이브라함 링컨은 편지를 썼 습니다.

다썼냐고 다썼다고 그러니까 거기다가 에이브라함 링컨P. 를 쓰고 덧붙이는 P.S를 쓰고

"이 편지는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서했습 니다"

그리고 에이브라함 링컨의 싸 인을 했습니다.그러니까 갑자기 이 병사가

"그 편지좀 보여줘요"

그래서 보여줬더니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하는 표정으로 그 편지를 훑어보더니 깜짝 놀라는거죠.

그가 에이브 라함 링컨인 줄을 몰랐던 거죠.대통령. 하고 일어나려고 하니까

"괜찮 아요.누워있어요. 내가 뭐 도와줄 것 없어요?"

그러니까

"대통령 각하.제가 너무 고통스러운데 고통하지 않고 편안히 천국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편안히 천당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에이브라함 대통령은 조 용히 웃으면서

"그런데 말이야 그건 나도 할 수 없는 일이네.자네가 편안히 천당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하 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네. 자 네가 예수님을 마음에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자네를 편안히 천국에서 받아들일걸세. 내가 그것을 위해 기도는 할 수 있네.기도해 줄까?

"

"Yes, Sir“

 

에이브라함 링컨은 이 병사의 손을 잡고 기 도하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전선에서 싸우다가 피를 흘리고 있는 이 아들.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 어합니다. 편안히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여 그를 위해 피 흘리시고 그를 위해 돌아가셨사오니 사랑하는 이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품안에 편안히 안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 예수여 이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 앞에 가게 해 주세요.“

 

링컨이 열심히 기도하는데 가느다란 신음소리에서 작은 목소리로 청년 병사의 두마디 외마디 음성이 들리더래요.

"Jesus..oh Jesus.."

"예수여 오 예수여..“

 

얼마후에 그는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손에 힘이 없어졌습니다.

이 청년을 안아주면서 눈물을 흘리며 링컨은 곁에 있는 참모들에게 이런 유명한 얘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이야. 남북 전쟁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오늘 우리는 중요한 일을 했네.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이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네. 나는 말이야. 오늘밤 이 친구가 천국의 황금길을 걷고있는 꿈을 꾸게 될것일세. 예수님과 함께 말이야.Oh Jesus..감사합니다..“

다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찬양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역사가 이번 전도 잔치에 일어나기를 기대 하십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의 황금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 그 들은 우리들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교회에 끌려나오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들것에 실려 침상채 메고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들을 데리고 왔던 타의의 침대를 그들은 벗어던져 버리고 아니,침대를 들고 일어나서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빚진 인생이라면 내가 누군가 내 주변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들이 누구입니까?

데리고 나와 복음을 듣게 할 그들이 누구입니까?

아직도 작정되지 못했어요?

어떤 형제와 자매는 100명이 넘는 영혼들을 작정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내 주변에 한사람도 작정하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들이 다 변화되고 그들이 다 구원되기 위하여 지금부터 그들을 품에 안고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도록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복음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들을 치유하고 고치는 놀라운 축제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위대한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메모 :  이동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