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고려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0. 4. 15:38

고려장|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67 |추천 0 |2016.09.25. 17:49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87 

9월의 말씀 산책

 

고려장이란 늙은 부모를 산속 구덩이에 버려두었다가 부모가 죽으면 그 구덩이에 묻어 장례를 치루는 풍속으로 우리나라 고려 말에 있었다는 전설인데 실제 우리나라에는 그런 법도가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효자전(孝子傳)이나 불경의 기로국설화(棄老國說話) 등을 사실화해서 늙은 부모를 실제 버리는 일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고령화 현상이 일어나고 저 출산과 구직난이 겹치자 자구책이 없는 늙은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너무 힘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를 제주도에 가서 버리고 오거나 생명보험을 노리고 존속살인을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정말 고려장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부부가 열심히 벌어도 자녀 교육비도 감당하기 힘 드는데 부모가 치매라도 걸리면 보건복지부를 통해 요양시설을 찾거나 방문 간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편하겠다고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버리는 것은 점잖게 고려장을 하는 것 같은 괴로운 느낌을 준다.

우리교회에도 독고노인인 한 권사(가명)가 계신다. 90세가 훨씬 넘었는데 하나님 집 곁에 살고 싶다고 남편을 여의고 혼자 된 뒤 하나 있던 집도 교회에 바쳐버리고 값 싼 전셋집에 살고 있으면서 빨리 하나님 곁에 불러 주시라고 새벽마다 기도를 하는데 몇 년을 기도해도 세상을 떠날 만큼 건강이 나빠지질 않는다. 한 번은 찜통더위가 한 달 이상 계속 되던 때에 교회에 갔다 집에 왔는데 발에 힘이 빠지고 어지러워 서있지 못해 쓸어졌다. 그 뒤로 이제는 자기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요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데 요양원은 등급 없이 들어갈 수가 없다. 친구는 뇌졸중으로 쓸어져 요양원에 갔고 또 어떤 분은 집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나가 거동불편으로 요양원에 가서 세상을 떴는데 자기는 노인성 질환이라면 난청으로 보청기를 했고 치아가 나빠져 의치를 한 것이 전부라서 그것으로는 요양원에는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 있다 죽게 되면 큰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노치원(老治園)이다. 이곳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인들에게 식사와 놀이, 치료 등 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 복지시설이다. 버스가 순회운영을 하면서 노인들을 데려가니 밤새 안녕한지 보살펴줄 수 있는 너무 좋은 곳이다. 얼마간의 비용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한 권사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사귀고 싶지도 않으며 간다면 공주 요양원에 가서 살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한 권사가 그곳을 고집하는 것은 그 요양원에서 선배 권사를 보내드렸는데 그분은 아픈 곳도 없었는데 거기서 잘 살다 갔기 때문이었다. 공주를 고집하는 것은 자기가 대전의 기독교 종합봉사회관에서 영아원 원장으로 있을 때 관장이던 배애시덕(Miss Esther Laird) 선교사가 공주의 기독교 사회관을 다시 세워보라고 자기를 보내서 일 년 반 동안 그곳에서 수고하며 탁아를 보살피고 간호사들을 두어 가정방문 등을 하면서 초대 이옥실 관장이 일을 맡기까지 수고한 일이 있어 공주와는 끈끈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1958년도의 일이요 공주 요양원에서 선배 권사가 돌아가신 것도 30년도 넘은 일이었다. 나와 아내는 그분의 뜻을 꺾지 못해 기독교 기관에서 운영하는 공주의 요양원에 갔었다. 그리고 거기서 알아낸 것은 그곳은 양로시설과 요양시설이 있는데 비등급자로 양로시설에 들어가려면 최소 8천만원의 계약금과 월 생활비 60만원을 내야 했다.

실망하고 돌아온 우리는 원룸 값이 비싼 대전보다는 우리가 사는 계룡시 쪽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분은 고층 아파트에 불이 켜진 것을 보면 나는 언제 반 지하를 면하고 저런 방에서 살다 죽을 수 있을까?”하고 한숨을 쉰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토요일 일과가 끝났다는데 부동산 중개사를 찾아 원룸의 싼 전셋집을 찾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싼 전세금에 월 150만원의 월세 집을 찾았다. 기본 시설은 갖추어 있는 곳이었고, 6층 건물에 4층이었으며 엘리베이터도 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교회, 홈플러스, 은행, 노인종합복지관이 있는 곳이었다. 대전 교회까지는 우리 차로 가면 된다. 또 노인복지관에 가면 새 노인들을 만날 수 있고 점심은 천원이며 가끔 관광 여행도 다닐 수 있고 공기 좋은 가까운 곳을 마음대로 산책할 수도 있다. 새벽기도나 밤 예배는 가까운 교회로 가면 된다. 그래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전세금은 대전 것을 해약하고 오면 되고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연금, 기초노령연금 등 50 여만원이 나온다니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본인의 승낙이었다. 부동산 중개사에게 다음날 교회 끝나고 한 권사를 모시고 오겠다고 약속한 뒤 나는 그분이 노인종합복지관에 적응하기까지는 내가 그곳에 나가리라고 결심했다. 그곳에 가면 붓글씨를 새로 쓰기 시작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한 권사가 장기요양인정등급을 받기까지는 기쁘게 이곳에서 살며 하나님 앞에 서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음날 교회에 갔다.

권사님, 우리 계룡에 가서 원룸을 한번 안 가보실래요?” 했더니

장로님,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알지만 나도 염치가 있는데 거기까지 가서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나는 절대로 안 갈 거요.”하고 거절 했다. 그러나 한 번만 가보자고 한 권사를 강권하여 모시고 계룡의 원룸까지 왔다. 그리고 우리는 부동산 중개사의 소개를 따라 돌아보는 한 권사의 눈치를 보며 이곳 생활에 불편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덧 붙였다. 집 소개로 수고한 중개사가 승용차로 떠나기 전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나는 밖으로 나갔더니 그녀는 벌써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 문을 두들겼더니 중개사는 기분이 썩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래 그 노인 권사님이 입주하겠다고 하던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퉁명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절대 안 올 테니 그리 알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 버렸다.

어쩌면 좋아.” 아내도 안타까워 한 마디 했다. 장기요양등듭을 받을 만치 아프지도 않고, 다른 사람 폐는 끼치기 싫고, 자기는 힘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노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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