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기도하면서성령께서깨닫게해주시기를]/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7. 15:31

060618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11:9-13)

성경본문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요즘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을 들어가 보니 ‘완소 해모수’ 그런 표현이 있더라구요. ‘해모수’는 알겠는데 ‘완소 해모수’는 뭐냐 했더니 줄임말로 ‘완전 소중 해모수’란 뜻이에요. 해모수 역을 맡은 연기가 너무 감동적이라는 젊은 네티즌들의 표현이죠. 제가 그걸 보고 그게 그 정도인가 해서 빌려 보았습니다. 잘 만들었더라구요. 원래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보면 우리나라 역사 초기를 서술하는 과정에 그저 짤막하게 나옵니다. 특별히 고구려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주몽과 연결해서 천제 아들 해모수가 이 땅에 내려와서 유화라고 하는 한 여인을 만나서 그와 관계를 가졌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주몽이다. 정말 간단해요. 그래서 사실은 고등학교나 중학교 역사교과서에는 그런 표현조차도 실려 있지 않죠. 그러나 그 짧은 표현을 가지고 작가가 말이죠 창의력을 불어 넣어서 요란한 그림을 만들어낸 거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고 몰입해 들어가서 그걸 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옛글에 실려 있는 한 문장을 찾아내어서 입체적으로 그려 보여준 거죠. 거기에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죠.

제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것을 보면서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멋있기도 하고 대단하구나. 사실 그 때 분명히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화석화된 문자가 되어 기록에만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건인줄 알았던 그것을 되살려 줌으로써 역사를 모르던 젊은 사람들이 거기에 몰입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우리나라 우리민족 역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게 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한단 말이죠.

여러분 또 하나의 드라마가 있어요. 제목을 붙이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역사적으로는 2000년 전 유대땅에서 있었던 사건이에요. 그러나 사실은 그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있었어요. 나사렛 한 청년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건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어요. 역사적으로도 예수의 그 사건보다 한 70년 먼저 일어난 사건이에요. 저는 어릴 때 영화로 봤지요. <스팔터커스>-스팔터커스의 반란이에요.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정복전쟁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붙들어 옵니다. 그리고 로마가 차지한 대농장을 경영하기 위해서 그들을 다 노예로 부리게 되죠. 또 로마사람들이 하나의 오락으로 잔인하게도 그 노예들 가운데 건장한 노예들을 불러내어서 검술연습을 시켜 검투사로 키워서 서로를 죽이는 그러한 일들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드디어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 우두머리가 ‘스팔터커스’죠. 역사를 보면 10만명이 일어났어요. 로마가 무너지는 거죠. 로마가 그 노예군과 대접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다 진압합니다. 그리고 스팔터커스를 비롯해서 6천명을 로마로 들어가는 ‘아피아가도’라고 하는 거리 양쪽에 십자가를 6천개를 세워가지고 그들을 다 못 박는 거죠. 나사렛 촌구석에서 태어난 한 청년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계적인 사건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는 다른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실려 있는 내용을 우리가 읽지만 사실은 성경은 수면제에요. 성경을 펴서 한번 그 대목을 읽어보세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머리가 몽롱해질 겁니다. 눈이 감길 겁니다. 어떤 분은 그래요. 신약보다는 구약이 훨씬 약효가 세대요. 잠이 안 올 때 그저 구약 레위기를 읽으면 한 장을 못 넘기고 코를 골고 잔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당연한 얘기죠. 하나님이 계시한 사건이에요. 하나님이 자기를 예수를 통하여 드러낸 사건이에요. 이건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어요. 세상의 지식으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면 아 똑똑한 사람들이 먼저 알았겠죠. 성경이 말해요.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을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경을 읽을 때에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단 한 문장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이 깨우쳐 주시면 마치 문자화 되어버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죠. 알고 보니 그것은 나를 위한 사건이었어요.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에요. 성령께서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깨닫게 해주신다. 신학적으로는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되는데 내 마음에 말씀을 비춰 주셔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내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꼭 필요한 게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게 이루어지느냐? 기도가 열쇠에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어야 되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오늘 이 말씀을 내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구해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열고 내 생각을 열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죠. 자 그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사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습니다’하고 소리치는데서 믿음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오늘 밤에 프랑스하고 시합이 있죠. 많은 분들이 기도하시는 것 같아요. 이기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생각이에요. 여러분의 소원을 신앙화한 거예요. 그 답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거예요. 혹시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그 누구에겐가 또 뛰는 선수에게 그런 확신을 주셨을 수도 있죠. 그러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약속에 대한 반응이 믿음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힘주어 말한다고 그걸 믿음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건 자기 착각이에요. 오히려 말예요, 너무 뜨겁게 얘기하는 건 못 믿는다는 증거에요. 지금 못 믿기 때문에 몸부림이라도 쳐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렇게 몸부림 쳤으니 이만큼 했으니 어디 한번 대신 달라는 거예요. 그건 ‘땡깡’이라고 합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은 분명한 약속이 있어요. 내가 네게 아들을 주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이제는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에요.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에요. 물론 저도 우리 팀이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그것까지도 하나님은 하나님 손안에 다 쥐고 계셔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해요. ‘하나님, 우리나라가 이기는 것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우리 코리아의 이름이 드러나고 그것이 선교에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이 알아서 잘 해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지고 다음에 더 크게 이기게 하실 수도 있겠죠. 거기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88올림픽, 월드컵, 이런 것을 통해서 코리아의 이름이 알려지고 코리아 선교사들이 나아가서 방방곡곡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인하여 마음을 열고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면 한번 하나님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예수님을 성령의 사람으로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굉장히 중요해요. 누가복음 그리고 사도행전은 소설의 전편, 후편과도 같아요. 그것은 한 사람이 쓴 거예요. 그런데 누가복음은 예수는 어떤 분이셨는가, 하나님의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사신 분이다. 어느 정도였느냐? 십자가의 자기 죽음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성령이 주시는 은혜로 당당히 죽음에 맞서 싸워서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거죠.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뭐냐?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그런 역사를 주셨다.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것은 아마도 거의 다 가지지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안락하고 편리한 이런 삶은 없어요. 곤고함으로 말하자면 정말로 불쌍한 인생들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오늘 모든 성도들이 흠모하는 사람들이 됐어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됐어요. 우리도 저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됐어요. 그 이유는 딱 하나예요. 성령에 이끌리며 사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몇 년 살겁니까? 50년 후에 한마음교회에 한번 와보세요, 어떻게 돼있나? 내 알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어요. 그게 교회에요. 목사도 불러가고 장로도 불러가고 집사도 불러가고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불러가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여인천하>에서 엄상궁으로 인기를 모았던 ‘한영숙’이라고 하는 탈렌트가 심장질환으로 어젠가 그제 돌아가셨대요. 그분 나이가 이제 55세 밖에 안됐어요. 전 그분이 60세가 넘은 줄 알았는데... 쉰다섯 넘으신 분들은 겸손해져야 됩니다. 제 동생은 사실 열일곱에 죽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내일을 얘기할 수 없는 것이죠. 강건한 사람일지라도 어찌 자기 건강 하나 믿고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얘기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부으시니까 그의 삶의 조건에 매이지 아니하고 그들은 참으로 평강을 누리고 행복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 짧은 인생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의 조건 가운데 건강, , 아름다운 가정 다 필요하죠. 그러나 그 조건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멋있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그분이 주신 말씀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 한걸음 한걸음 속에 하나님이 동행하신다. 내가 한마디 한마디 하는 이 말 한마디 속에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었어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바로 누렸던 것이고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거죠.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에요.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거든요. 이게 정말 내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면 왜 양보하겠어요.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시려고 그 믿음의 열쇠를 주셨어요.

오늘 누가복음 11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이끌리신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수많은 이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적들이 가능하게 된 숨은 비밀들이 군데군데 나타나요. 그게 뭐냐? 그건 바로 기도였어요. 누가복음 321-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며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누가복음 516절을 보니까 나병환자를 고치셨어요. 사람들이 놀라서 막 흥분하고 떠들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조용히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흥분 안되겠어요? 그러다가 자기 흥분에 도취돼가지고 이거 내가 대단하구나 하면 실패하는 거예요. 이단이 된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단이 된 게 아니에요. 처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적을 보고는 그만 이게 내 것이로구나, 내가 이런 능력이 있구나. 이렇게 하나님의 깨우치심을 받지 못하고 자기 기분대로 나가다 보면 이단이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엔 이적을 조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주시지도 않은 이적을 막 조작하고 만들어내는 거예요. 사람들로 하여금 집단최면에 빠지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월드컵 응원 가고 싶으시죠?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면 사람이 반 돌아버립니다. 그러다가 이겼다. 이제 난리납니다. 이런 우스개가 있잖아요. 2002년 서울광장에서 응원하다가 밤새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기뻐 응원하고 흥이 맞아가지고 이겼어요. 그런데 집에 가려고 보니 차가 없다고 해요. 그 옆에 있던 남자가 우리 집에 가서 자자고. 가서 밤새도록 술마시면서 얘기하다가 쓰러져 엎어져 잤어요. 그리고는 그 다음날 이 사람이 깨가지고 이 집이 어느 집이냐? 그러고는 빨리 내 집으로 가야지 하면서 갔다는 거예요. 이름도 모르고 밤새 그러다가 흩어졌다는 거예요. 흥분하면 안돼요.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자꾸 우리는 뭘 보기를 원해요. 거기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면 안돼요.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부흥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나도 좀 은혜를 받아봐야지 하면서 부흥회를 찾아가서 기도하고 했는데 영 저는 부흥회 체질이 아니었나 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그렇게도 은혜를 주시지만, 손익을 계산한다면, 우리는 참 너무나도 무지한 방법으로 정말 하나님 앞에 땡깡을 부리면서 은혜를 내어 놓으라고 했구나. 하나님이 말씀에 분명히 모든 것을 다 밝히 보여주셨는데 제대로 깨닫지를 못했구나.

여러분 하나님은 인격이에요.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시고 느끼시고 말씀하시고 의지를 가지고 행하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을 맺습니다. 약속이에요. 서로 인격인 것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약속대로 일이 이루어 집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야. 오늘 예수님이 아주 기가 막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예수님, 예수님이 이루신 그 많은 일들을 보니까 반드시 예수님은 그 일 이전에 기도하셨는데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잖아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잖아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잖아요. 그 기도의 핵심은 뭐예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 다음에 일용할 양식과 서로 용서하는 것과 죄로부터 유혹에 빠지지 아니하고 건짐을 받는 너 자신의 일을 구하라. 순서가 분명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을 때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있어요. 순서가 틀리면 뭐든지 그렇잖아요. 응답이 있을리 없어요.  그리고는 말씀하셔요. 비유를 들어 말씀하세요. 어떤 사람이 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밤에 잠자리에 들려고 애들과 함께 자려는데 막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지금 손님이 왔는데 그 손님을 대접할 밥이 없으니 밥 세 그릇만 좀 달라고. 아무리 친구라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잖아요. 친구라서 들어준 게 아니라 하도 땡깡을 부리니까  귀찮아서 빨리 보내려고라도 밥을 내어주지 않느냐. 여기서 조심해야 돼요. ‘그러므로’ 이렇게 가면 안돼요. 그러므로 너희들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냥 막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다. 오늘 문맥이 그게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리석고 못돼먹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땡깡에 못이겨서 나 편하자고라도 응답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희가 자그마한 것을 구할지라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가장 귀한 것을 주신다. 예를 들었어요.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가 너희 자식에게는 어떡하느냐? 계란을 달라는 아이에게 뱀알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돼요.

기도할 때 찬송을 먼저 하세요.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거든요. 기도하려면 입이 안 열려지고 마음이 안 열려지잖아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여러분이 즐겨 부르시던 찬송으로 우리의 마음을 먼저 열고... 어디 가서 된장찌개를 시키면 거기에는 에피타이저가 안 나옵니다. 그냥 된장찌개만 덜렁 나와요. 그러나 근사한 식당에 가면 반드시 먼저 스프가 나오고 야채가 나오고 입맛을 돋우는 것이 나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으로 나의 마음을 여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성령의 인도를 구하세요. 이거 내 열심으로 기도 못하거든요.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돼요. 하나님 오늘도 나를 인도해주십시오. 제가 금요일 밤에 설교를 준비하다가 설교준비가 안 될 때도 있거든요. 어떤 분은 목사님은 돌아서면 그냥 말이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거 여러분 착각하는 겁니다. 엎드려 기도하는데 말씀이 안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떡하느냐, 그럴 때는 기도하는 거죠. 어떻게 기도해야 됩니까? 성령하나님,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요. 그런데 나 급한 것을 위해서 기도할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주장하시도록 내 생각을 성령께 맡기고 기도하는 거죠. 그때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어요. 그럼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에요. 연속으로 계속 떠올라요. 기도해요. 그날은 제가 우리 교인들 모두 다 위해서 하나 하나 이름을 다 기억해가면서 기도했어요. 제 수첩에 있는 구역 순서대로, 무작위로 하면 빠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예 구역 순서대로 구역장부터 시작해서 한분 한분, 어떻게? 그들 마음 가운데 살아계신 성령께서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눈물을 아시고 아픔을 아시오니, 하나님 나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저들을 아시기에 그들의 호흡을 이날까지 지켜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삼고초려’라는 유명한 말 아시죠? 유비가 한나라를 어떻게든지 일으켜 보려고 제갈공명을 찾아 가는데 세 번씩이나 그 누추한 초가집에 찾아가서 그에게 엎드렸다. 그리고 그를 모셔왔다. 우리가 왜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는 언제 죽을는지 모르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죽는 건 그만두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어요. 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안다 할지라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죠.

제가 여기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많은 분들이 꼭 운동하셔야 됩니다 라고 권하시더라고요. 여기서는 오히려 날씨는 더워도 밤낮 차를 타고 다니고 사무실에 있고 집에 있고 에어컨 아래에 있기 때문에 운동하고 땀내지 않으면 건강이 약해져서 안됩니다. 권유하셨지만 그 속은 명령이죠. 그것은 사실은 자꾸 얘기했으니까 명령이죠. 그러나 제가 ‘그렇다.’ 여러분이 말씀하시는걸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그래서 제가 운동했어요. 짧지만 하루에 30, 40분 또는 1시간 꾸준히 운동했더니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어요. 아직 제 배에 왕()자는 새겨지지 않았지만 건강합니다. 건강해요. 어느 때보다도 생각도 맑고요, 너무 너무 감사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기 위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명령이기도 해요. 왜 그건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아가씨가 어떤 청년으로부터 사랑고백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이 청년이 날마다 선물을 보내는 거예요, 날마다. 이 선물을 날마다 우체부를 통하여 보냈어요. 드디어 이 아가씨가 결혼했잖아요, 우체부하고.

성령, 하나님의 선물이죠. 그러나 성경에는 두 가지예요. 성령을 받아라. 마치 하나님의 선물 같아요. 누가복음에는 ‘성령을 받아라’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성령을 네 안에 모셔라.’ 신앙이 깊어질수록 성령은 내가 받고 말고 하는 선물에 그치는 게 아니에요. 그분은 하나님이에요. 내 안에 오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오셨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겸손하게 무릎 꿇고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내가 살 수 있습니다.’ 고백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기도

나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주장하시는 성령이시여, 오늘 내게 주시는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순간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