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역사의 거울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김상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29. 17:37

 

역사(歷史)란 인간 사회가 거쳐 온 변천의 모습, 또는 그 기록을 말한다.

즉 인간의 모든 활동이 변화하고 발전해온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발견하고, 올바른 사관(史觀)을 가질 수 있는 안목(眼目)을 넓힐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사극(史劇)작가로 잘 알려진 지난 해 4월에 작고하신 신승봉 교수가 2002년에 펴낸 성공한 왕 실패한 왕󰡑이란 책에서, 조선왕조시대의 성공한 왕과 실패한 왕을 각기 5명씩 선정하여 말한바 있는데, 성공한 왕으로는 태종, 세종, 성종, 선조, 정조를 꼽았고, 실패한 왕으로는 세조, 중종, 광해군, 인조, 고종을 꼽았다. 필자도 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그분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한다.

 

성공한 왕들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개관하면

3대 태종은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역성(易姓)혁명을 성공시킨 주역으로서,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遷都)하고, 사회정책을 펴 신문고(申聞鼓), 호패(號牌)법을 제정하고, 부국강병(富國强兵)정책을 펴 왕권을 강화하고, 경제와 문화정책을 통해서 왕조의 기초를 다졌다고 보겠다.

4대 세종대왕은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創製)를 비롯하여 각종의 과학기구 발명, 경제 사회정책, 46진을 개척하고,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여 왜구(倭寇)의 잦은 침략을 예방하고, 민족중흥(民族中興)을 이룩하여 성군(聖君)으로 지금도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다.

9대 성종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완성하여 조선왕조의 각종 제도를 정비하였다.

14대 선조는 편협하고 너그럽지 못한 성격을 지닌 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군사적으로 잦은 혼란, 즉 임진왜란(壬辰倭亂:1592)과 정유재란(丁酉再亂:1597)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도, ()나라의 원군(援軍)과 이순신 장군의 구국항전으로 왜적(倭敵)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전(保全)할 수 있었기에, 성공한 왕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紆餘曲折) 끝에 왕위에 오른 21대 영조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세자인 아들을 뒤주에 넣어 굶어 죽게 한 잔인한 왕으로 악명을 얻었으나, 조선왕조 역대 왕 중에 가장 장수한 왕으로 탕평책(蕩平策)과 형제개량(刑制改良), 균역법(均役法) 등을 제정하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인 손자를 대를 이어 왕위에 올렸다.

22대 정조도 탕평책, 권농규휼(勸農救恤), 규장각(奎章閣)설치, 서적편찬, 활자개량, 수원축성(水原築城) 등을 통해 수원부(水原府)를 유수경(留守京)으로 승격시키고 성을 쌓았다. 각종 사회 문화 진흥책으로 실학(實學)과 산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실패한 왕들과 정치인

실패한 왕들은 하나같이󰡐뒤틀린 야망, 우유부단한 지도력, 무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중에서 인조(仁祖)의 실패는 적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屈辱) 때문이다. 중견역사학자들이 펴낸 반년간지󰡐한국사 시민강좌󰡑는 좌절한 정치인 8명을 지적한바 있는데, 연개소문, 궁예, 공민왕, 광해군, 김옥균, 김홍집, 여운형 등이다.

이중에서 연개소문(淵蓋蘇文)과 궁예(弓裔)는 독선(獨善) 때문에, 광해군 김옥균 김홍집 여운형 등은 국내 역량 결집(結集)을 도외시했다가 좌절한 경우라고 했다.

미국작가 네이슨 밀러도 몇 년 전 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란 책에서 미국대통령 10명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 리처드 닉슨과 지미 카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알려지기로는 이 두 지도자는 미국사회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대통령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닉슨 전 대통령은󰡐키신저, 럼즈펠드, 파월 같은 인물을 발굴한 당사자󰡑로 중국(中國)과의 수교나 월남전(越南戰) 종식 등에서처럼 세계전략을 꿰뚫고 있었던 인물이고,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당시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1979년에 핵무기를 제한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 협상을 성공시킨 당사자이다. 대통령 직을 물러난 후로는󰡐평화의 전도사󰡑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세계평화와 화해와 소외된 세계인들을 위해 손수 망치를 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한국에 와서도 봉사한 고마운 분으로,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02년에 노벨 평화상(平和賞)을 받기까지 했다.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으나, 닉슨 대통령의 경우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의 거짓 증언(證言)이 결정타가 아니었나 생각되고, 카터 대통령의 경우 아름다운 믿음과 품성의 소유자임에도 낙제점을 받은 것은,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지도력, 숙달(熟達)된 참모(參謀)진의 부족(不足) 때문이라 믿어지기도 한다.

네이슨 밀러가 말하는 성공한 대통령의 덕목으로는 소명의식(召命意識), 협력(協力)하는 능력(能力), 취임초기의 순발력, 숙달된 참모 진, 대중(大衆)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能力)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뛰어난 군주로 자타가 공인하는 당태종(唐太宗: 626-649)은 수양제(隋煬帝)의 외정(外征)과 폭정(暴政)으로 내란(內亂)이 발발하자, 아버지 고조(高祖)를 도와 수나라를 멸망(滅亡)시키고 당()나라를 세우는데 공헌했다. 그는 즉위 후 수양제의 실패(失敗)를 거울삼아 자신의 과실(過失)을 직간(直諫)하는 위징(魏徵) 등 충신(忠臣)들의 의견(意見)을 받아드려 선정(善政)을 베풀기에 힘썼다. 때로는 위징이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직언(直言)으로, 죽여 버리고 싶도록 미운 때도 있었으나, 개인적인 사감(私感)을 누르고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힘썼다. 그리하여 그의 치세는 정관의 치(貞觀之治)’ 라는 칭송을 받으며 당을 중흥시켜 후세 제왕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후 중국왕조에서 특출한 황제들은 물론 오늘의 등소평, 강택민, 저오지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지도자들까지도 역사의 교훈을 거울삼아 치도(治道)를 구하며 세계최강국(世界最强國)을 향해 달리고 있어, 우리들에게는 두려 운감마저 든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어떠한가?!

조국광복 이후 국부로 칭송을 받아야 할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3‘15 부정 선거의 오명(汚名)으로 아직도 지탄을 받고 있다.

19615월 군사반란을 일으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18년 동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외교, 문화 전반에 걸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획기적인 공헌을 하여 한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중진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독재자의 오명(汚名)과 국민들의 애도(哀悼) 속에 내외분이 비참한 최후를 보게 되었다.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독재세력과 투쟁하여 민주화를 달성하고, 문민정부의 대통령에 취임한 후 금융실명제 실시, 군부세력의 온상인 하나회 해산을 통해, 군인들의 재집권과 부정부패의 온상을 제거하고, 조선식민지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조선왕조 건물로 복원하고, 자신은 청렴한 정치를 폈으나, 경제정책의 실패로 IMF를 가져왔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햇빛정책으로 북한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켜, 남북화해 협정과 노벨평화상 까지 받았으나, 각종명목으로 북한에 제공한 원조가 오히려 그들의 핵무기제조에 보탬이 되어,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핵 위협에 놓이게 했다는 지적을 받아오고 있다.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남북화해와 개혁정책을 시도했으나, 세련되지 못한 돌출 행동과 발언, 편향된 코드정치로 이념갈등 만을 조장해 국민들을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고, 언론들로부터 부정과 연류 되어, 자살이라는 비참한 최후를 선택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부터 청계천을 복원하여 국민들의 휴식과 안식의 공간을 만들고, 대통령에 취임 후에도 4대강 확충, 복원으로 물 보족과 농업개혁과 산업전반에 걸쳐 큰 업적을 이루었으나, 4대강 부실과 부정 등에 연류 되어,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형님을 옥살이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칭찬보다는 비판을 더 받고 있는 실정이다.

참신하고 청렴결백 한 이미지로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초기에는 많은 기대와 칭찬을 받으면서 북핵(北核)의 위협아래서도 국토방위와 안보를 굳건히 지키면서, 각국의 방문외교를 통해서 한국의 위상을 더 높이고 경제발전에도 공헌한바가 크다.

그러나 여당의 실질적인 총재로 군림하여 독선과 아집, 포용력부족, 소통과 화합의 부재로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만 조장시켜, 지난 4월 총선에서 대패(大敗)하여 제1당의 자리를 더불어 민주당에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로 국회에서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탄핵을 받아 대통령 직을 정지당하고, 당이 분열도게 만들었다고 보는 국민들이 많다.

여기에다 임기 말년에 의례히 따라오는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이 점점 짙어지는 때를 맞춰, 북한은 지난 83일 노동미사일 2발을 동해로 발사해 그 중 한발이 1000km를 날아가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떨어졌다. 북한은 금년에 들어서서 스커드, 노동 무수단 등 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강도를 높여 도발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점점 더 높아지는 도발 중 노동미사일은 부산항 등 유사시 미군의 증원전력이 들어오는 주요 시설과 주일 미군 기지를 요격하기 위한 수단과 단계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군사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군은 물론이고 주한 미군도 노동미사일을 요격할 방어수단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이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은 일단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외교적 대응은 그다음이다. 군사적 대응이 되지 않는, 외교적 대응이란 말장난이거나 굴욕적 협상일 뿐이다.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1905)과 한일합방(韓日合邦: 1910) 등은 결과적으로 우리민족의 단합된 힘과 국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36년간 고통을 당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역사적인 교훈을 망각하고 최근 국내일각에선 대중(對中)관계 만을 맹목적으로 내세우면서, 북 핵미사일에 군사적인 조치는 완전히 도외시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이를 부추기는 듯 한 세력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음을 국민들은 예의 감지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우선 한국 내에서 일고 있는 사드 반대론을 최대한 증폭시켜, 남남 갈등을 키우고, 적당한 시기에 보복조치를 내밀어, 한국 내 반대론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실질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담보해 한국이 북 핵 위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사드 배치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야당의 일부국회의원들이 북한의 핵 공격이 있을 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는지?! 확고한 명분과 대응책도 없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는 우려와 분노와 질타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응책을 내놓고 반대하기 바란다.

네이슨 밀러가 말한바 있는 참된 지도자로 성장하는 비결은 역사의 거울을 교훈삼아, 그 토대위에서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설계할 줄 아는 지도자로, 나라와 국민에 대한 소명의식, 협력하는 능력, 취임초기의 순발력, 숙달된 참모진,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매사에 경건과 겸손과 섬김의 마음으로, 무리와 지나침이 없이, 상식과 형평을 유지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정신으로, 나라와 민족,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나타나기를 위해서 기도드린다.

김상태 ; 교육학박사 모스크바장신대 객원교수,  한국장로문인회 상임고문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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