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본것을 증거한 사람[데이빗그레고리예수와함께한가장완벽한하루]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7. 21:59

061105 본 것을 증거한 사람 (1:1-6)

성경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어느 주일 아침에 70대의 어머니와 40대 중반의 아들이 실랑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 일어나려고 해요. 늙은 어머니가 “일어나야지” 하면서 드디어 견디다 못해 이불을 끌어당기니까 아들은 “못 일어나요”하면서 이불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드디어 실랑이 끝에 아들이 먼저 제안합니다. “어머니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제가 교회를 갈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대겠습니다. 듣고 타당하면 나 좀 내버려두세요. 첫째, 나는 오늘 너무 피곤합니다. 나는 갈 수 없어요. 오늘 좀 쉬어야 돼요. 둘째, 교회에 가봤자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건 무슨 성경공부를 하는 건지 난 도저히 그거 못 듣겠어요. 셋째, 찬양대 너무 못해요. 그거 못 들어주겠어요. 이게 내 세 가지 이유에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말합니다. “그래,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얘기도 좀 들어봐라. 내가 이제 네가 교회를 가야만 할 세 가지 이유를 댈테니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벌떡 일어나야지. 첫째, 주일은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셨으니 빠지지 말고 지켜야지. 둘째, 교회는 사람을 보고 가는 곳이 아니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니까 사람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셋째, 아 네가 담임목사 아니냐! 그러니 빨리 가야지.” 이번에 제가 휴가를 나가서 많은 친구 목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행복하게 목회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정말 교회만 생각하면 그만 골치가 아프고 고민이고 그렇더라고요. 담임목사라도 이불 끌어안고 버틸만하겠더라고요.

제가 지난 주일에는 어느 큰 교회에 가서 모처럼 회중석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죠. 제가 강단에 서지 않고 회중석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죠. 참 집중하기 어렵더라고요. 장터 같아요. 저도 우리 예배가 그리워지더라고요. 우리 식구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만 거기에 응답해서 우리가 함께 주파수를 맞추어 나갈 때 하나님의 음성을 깨끗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럴 때 각 사람, 그리고 우리 교회, 우리 구역, 내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이죠. 어떻게 장터에 은혜가 있겠습니까.

요즘 다들 돈 벌려고 눈이 시뻘개지는 세상인데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란 책이 있어요.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박경철’원장입니다. 경북 안동의 한 병원의 원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의 의술보다 재테크의 고수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이분의 인터뷰기사가 실렸기에 제가 읽어봤습니다. 원래 인터뷰기사가 중요하거든요. 그 사람이 뭔가 가지고 있는 엑기스를 다 내놓는 거잖아요. ‘재테크에도 고수가 있다.’ 된장으로 얘기하면 요즘 마켓에 가면 큰 기업의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된장들이 쏟아져 나옵니다마는 시골 할머니가 빚은 된장 맛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첨단의 금융공학으로 돈의 흐름을 얘기하고 연구해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이 분의 지론은 돈 냄새를 잘 맡는 고수가 있다는 거예요. 고수한테 배우라는 거예요. 자기가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그런 고수들을 만나서 하나하나 배운 것이 축적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 얘깁니다.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때를 주목하라. 예를 들어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 친일파들이 떼돈을 벌었대요. 광복을 맞았을 때는 일제의 적산 기업과 가옥, 이런 것을 불하 받은 사람들이 돈을 벌었대요. 전쟁 때는 군수품 사업에 뛰어든 사람이 돈을 벌었다 이거에요.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쓰러져가는 수많은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거에요. , 이런 건 좀 문제가 있지만 이분 얘기로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개편될 때 자기는 그 흐름을 보고 큰돈을 벌었다는 거예요. 그럼 다 지나갔느냐? 마지막 기회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이라는 거예요. 지금 나라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 시끄러운 이때야 말로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때인데 이런 때가 바로 돈을 벌 때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고도성장의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약 10년 이상의 경기침체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그 때까지 약 7년간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보다는 젊은 층의 인구가 많은 인도라든지 베트남같은 외국에 투자하든지 아니면 채권에 투자하고 기다리든지 또는 투자성과가 주가지수하고 연동되어서 수익을 가져오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은 의사인데 무슨 돈 버는 얘기를 하느냐?” 그랬더니 자기가 의대를 들어가 보니 의사의 길이라는 것은 빤하게 정해져 있어서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어서 다른 걸 하나 더 해보고 싶다고 해서 선택한 것이 뭐냐, 이 재테크에 뛰어들어서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많은 고수들을 만났다는 것이죠. 이제 중요한 얘기를 합니다. 아주 쓴 맛을 경험했다는 거예요. 쓴 맛! 자기는 인턴, 레지던트 때 받았던 월급은 다 날려버렸다는 거예요. 시장이 얼마나 냉혹하고 무서운가 하는 것을 절감했다고 하는 거예요. 어설프게 듣고 뛰어들면 돈 다 날린다는 거예요. 이것저것 다 필요하지만 특별히 현장의 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가 며칠 전에 평택에서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들어갔어요. 그러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사람이 없어요. ‘아이고 이 집 잘못 들어왔구나.’ 이렇게 파리 날리는 집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나 어떡해요, 들어간 걸 돌아 나올 수도 없고. 마음이 약해서 그냥 앉았습니다. 냉면집이었어요. 그런데 맛있더라고요. 아마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 주인이 저한테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오장동 함흥냉면에서 자기가 6년을 배우고 내려와서 이렇게 여기다 차렸는데 세상에 못 믿을 것은 손님들이라고. 이 입맛이 얼마나 냉혹한지 맛없으면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떠나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는 그나마 이 건물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러고 버티고 살지, 전에 이 자리에서 갈비집도 했고 이렇게 저렇게 음식장사 하다가 1~2년에 다 문 닫고 나가버렸다는 거예요. 시장이 무섭다 이거죠. 사는 게 만만합니까. 함부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그것은 망하겠다고 다짐하는 거하고 똑같죠.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고 고수에게 배워야 되는 거죠.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본 것을 말하게 돼있어요.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게 돼있어요.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게 돼있어요. 여기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돈 버는 얘길 하고 있어요. 지금 이런 세상이 된 거죠. 그저 우직하게 한 자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시대가 용납하지 않아요. 성실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다가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흐름을 보아야 하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아는 지혜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눈을 우리 신앙으로 돌려봅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요한, 사도 요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그것을 내가 쭉 지켜보았노라.” 그리고 예수 부활 이후에 나타난 사도행전에 드러나 있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다 지켜보고 신앙의 새로운 차원을 이야기해요. 전설에 의하면 지금 사도 요한은 열두 제자 중, 다 죽고 지금 마지막 남은 제자에요. 그리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갔어요. 그리고 끝내 그곳에서 순교 당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었어요. 그러나 오늘 그 앞에 하늘이 열려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큰 기쁨을 누리고 있어요.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뭔가를 붙들고 배워야 할 고수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서 그는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역설적 행복이에요. 자기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서 기쁨이 넘쳐흐르는 그런 행복.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합니다. 중요하죠. 벌어야 되겠죠. 그러나 물질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감옥에 갇혀 있으며 이제 곧 죽게 될 그러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내면의 깊은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행복의 비밀이 뭐라고 말하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어제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실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영으로 계신 성령. 일곱영이라는 것은 숫자의 의미가 아니라 완전하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영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이 사건을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셔서 베풀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실재를 믿고 알기에 역설적 행복이 가능하다고 말해요. 그 하나님을 만날 때에 은혜와 평강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증거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게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제사장 삼아서 이제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건을 세상에 드러내시기를 원하신다.

제가 여행하면서 책을 한 권 사서 보았습니다.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 예전에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라고 하는 책이 있었는데 제목이 비슷하죠? 이게 자매가 되는 책이에요. ‘데이빗 그레고리’라고 하는 사람이 다시 한 번 책을 써낸 것입니다. 얘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의 주인공은 ‘닉’이라고 하는 30대 중반의 회사원이었어요. 예수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신앙의 물음들을 다 내어놓고 드디어는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합니다. 마지막 들었던 것이 요한계시록 320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책은 그 다음 얘기에요. 닉의 아내 '매티'는 불만에 싸여 있어요. 남편이 좀 이상해졌단 말이에요. 남편이 이제는 성경을 읽더라고요. 남편이 기도하더란 말이죠. 매티의 불만은 뭐냐. 종교가 내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사람이 좀 은혜를 받으면 남편과 아내를 더 세심하게 챙기면 좋은데 당장은 그게 안되거든요. 당장은 지금 받은바 은혜가 너무 뜨거워가지고 더 기도하려고 하고 더 성경을 읽으려고 하고 그러거든요. 사실 저에게도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평생 빚을 진 거에요. 둘째 아이를 낳아가지고 고생하는 그 때, 공교롭게 그 때 말이죠, 저는 고등학교 교사로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면, 전세 살던 집이니까 얼마나 좁아요, 부엌의 식탁, 거기가 제 기도처였어요. 거기서 성경 읽고 거기서 기도하고. 이 둘째 애를 가지면 여자들이 굉장히 외롭잖아요, 우울증이 오잖아요. 그걸 좀 진작에 알았어야 되는데 그걸 모르고 저는 잠을 잊으면서까지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아, 내가 너무나 무지했구나. 같이 돌봐주고 챙겨야 했었는데.’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지금 매티의 불만이 그거에요. 남편이 이상해졌다 이거에요.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비행기 타고 자기 홀로 어디를 가는 거에요. 그런데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분이 예수님이셨다, 이렇게 상황설정이 된 거죠. 그러면서 우연히 얘기를 하다가 "나는 종교가 너무 싫어요"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 예수님이 말합니다. "나도 종교를 싫어합니다." "왜 그렇죠?" "종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저것을 하게 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을 막아버리고,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신 그 기쁨을 어설픈 여러 가지 규율이나 형식으로 다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억지로 하게 되면 자칫 잘못된 종교생활이 되잖아요.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것은 모호한 것도 아니에요. 그것은 마치 어린 아기를 대하는 부모와 또 그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어린 아이의 관계와 같은 사랑의 관계요, 생명의 관계지요.

종교는 삶을 만끽하지 못하고 엉뚱한 죄책감을 가지고 고통을 겪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건강한 신앙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은 뭐냐? 오해죠. 하나님에 대한 오해예요. 여기서 매티는 자기의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꼭 필요한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만 그저 잠깐 필요한 목발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다리 다친 사람이 한동안 목발을 하고 다니다가 다 나으면 내던져 버리듯이 혹시 그런 하나님은 아닐까요?" 종교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진정한 만족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굉장히 지루하게 생각해요. 매티도 말해요.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지루해 보이는데요" 예수님이 말해요. "당신이 낳은 아이가 자라날 때, 그 때의 일을 기억해보세요. 아이의 그 웃음, 그리고 아이의 몸짓, 그것 하나로 당신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하나님은 그 자그마한 생명 뿐만 아니라 이 우주를 온통 놀라운 신비와 이적으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매력 있는 분입니다. 내 삶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분입니다." 사실은 그렇죠. 하나님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가 여기 있는 것이죠.

제가 어젯밤에 돌아올 때 우리 교회 식구들 몇 분을 뵈었어요. 그 중에 한 분이 굳이 저하고 자리를 바꾸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비즈니스석에 앉아서 왔잖습니까. 그런데 앉아오니까 또 얘기가 다르더라고요. 편안하게 왔어요. 아주 좋았어요. 너무 감사했고요.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가 생각났어요. 보통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옆 사람도 안 쳐다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좌석은 가까이 아는 사람과 함께 앉아서 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서먹한 관계라면 먹는 게 제대로 소화가 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어제 제 옆자리는 비어있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행복이 도대체 뭘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하나, 자기를 활짝 열고 자기의 허물까지도 다 내어놓고 받아주고 하는 이런 관계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다. 지금 우리 살아생전에 그 상벌을 다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다음 세상까지도 준비해 놓으셨어요. 그러니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죠. 세상은 마치 모델과 같이 완벽해지라고 우리에게 요구해요. 제가 한국에 나가서 광고 한편을 보면 지금 여기가 어떻게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게 감이 옵니다. 요즘 광고들, 정말 요란하죠. 그런데 그게 요구하는 것은 뭡니까. 너도 이와 같이 멋있게 매력있게 화려하게 살라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은 그게 아니에요. 나는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이 책 제목이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 이렇게 번역이 되었습니다만 제가 이번 여행 중에 참 즐거웠던 하루가 있었어요. 제 고향에 내려갔는데 한 30년 만에 함께 교회에서 중고등학교 청년시절에 같이 신앙생활 하던 친구들, 미국에 다 흩어져 살고 있던 친구들이 어쩐 일인지 이번에 다 모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야 이거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이런 날이 올까’ 싶더라고요. 남학생, 여학생 다 모였어요. 옛날에 서로 좋아하고 했던 사람들이 다 모였어요. 그들과 만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물론 소문으로는 다 듣고 있었습니다만, 뭐 이혼한 사람도 있고, 사업의 큰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있고, 그러나 그 분위기는 정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 아픔을 내가 안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 하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그 동안 이렇게 저렇게 삶에 치이고 어려움을 겪어서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다 돌아왔어요. 다 돌아와가지고 우스갯소리로 목사부터 시작해서 장로도 있고 권사도 있고 집사도 있고 평신도도 있고 다 우리끼리 교회 하나 해도 되겠다 할만큼.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서로의 허물을 용납해주고 들어주고 긍정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그게 은혜 아니겠어요. 하나님이 이날까지 우리를 은혜로 붙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잘났다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다 삶의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었고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고 지혜가 없고 어리석고 미련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붙들어 주셨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지요.

여러분 이미 아시잖아요, '이지선'이라고. 지난 2000년에 대학 4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신 55% 3도 화상을 입었어요. 7개월 동안 11차례에 걸쳐서 대수술을 해가지고도 아주 흉한 얼굴로 남았죠. 그러나 그는 그의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짧아진 여덟 개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1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진 오른 팔을 쓰면서 하나님이 왜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였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 채 흔들어 놓는 그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합니다.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시며 써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위대하시지만 사람의 생각은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하나님을 향하여 돌릴 때 이 모든 장애까지도 고난까지도 감사로 받아요. 우리 신앙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과거에 눈물이 있든 고통이 있든 나의 실패가 있고 나의 죄악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용서해주시고 덮어주시고 이끌어주셨던 그 일들을 찾아내며 감사하는 사람, 그리고 감사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또한 믿음을 생성해내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정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냐, 감사를 찾아내는 사람, 또 감사하는 순간에 내 생각을 하나님께 맞추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죠.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자랑하고 내어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참모습을 잘 알고 계십니다. 이것 저것 스스로를 크게 평가하고 자랑하려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다 헛된 욕심인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시고 사랑해주셨기에 오늘이 있었음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신 이 모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