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독서인의 입장에서, 최근 목격하게 된 일련의 사태는 참으로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박근혜 정권이 문화예술 정책 집행에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그 단적인 예이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한 사람, 문재인이나 박원순과 같은 정치인을 지지했던 사람들인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이 억압·배제했다는 것은 입헌주의에 반하는 행위이다.최근 새롭게 드러난 바로는 창비나 문학동네 등의 출판사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저작을 출간한 것을 이유로 세종도서 등의 지원에서 배제할 것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도 독서량이 부족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 이런 위헌적 범죄행위의 주체였다니, 문화인들의 모욕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출판도매상인 송인서적의 부도 사태 역시 독서인들에게는 큰 재앙이다. 한국의 출판산업은 소수의 대형 출판사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 소형 출판사들이 주축이다. 소형 출판사들의 경우 영업·마케팅 부문의 전담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송인서적에 유통부문을 일원화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도매서점 부도로 그간 공급한 서적의 판매대금은 물론 서적 자체를 압류당하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극단의 경우 출판사의 존폐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그간 출판계의 관행을 보면, 서적의 판매부수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고 수금도 어려운 상황에서, 제작에 필요한 각종의 비용을 어음으로 결제하는 상황이 관행이었다. 이번 송인서적의 부도로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것 역시 이들 소형 출판사와 지업사 및 인쇄소인 것이다.물론 출판의 위기는 후진적인 유통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독서시민의 몰락이 초래한 인쇄·출판문화의 구조적 위기로도 보아야 한다. 즉 한 사회의 지적·문화적 위축, 교양의 위기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사태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한국 성인들의 평균독서량이나 미디어 문해능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줄곧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노동자의 책> 대표가 구속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1980년대에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사회과학 도서들을 판매했다는 것이 이유인데, 목록을 보니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있었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는 교육학의 고전으로, 프레이리 자신이 브라질 등 남미에서 행했던,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해교육의 사례와 이론을 서술한 책이다. 나도 감동적으로 읽은 바 있다.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한국에서는 마르크스를 불온시한다. 그런데 열독률로 보자면 미국의 교양교육 고전 100선 가운데,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4위에 링크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일본에서는 1945년 이후 각기 다른 번역자에 의해 5종 이상의 <자본론>이 출간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 <자본론>은 도쿄대 법학부의 필수 강좌였다. 요컨대 도쿄대 출신 공안검사도 <자본론>을 읽었고, 사상범도 <자본론>을 읽었으며, 역대 총리나 관료 모두 <자본론>을 읽은 셈이다. 그런 까닭인지 <자본론>은 일본 내에서만 200만권 이상이 팔렸다.데카르트를 참조해 볼 때,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삶의 존재의미 역시 없다. 사람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