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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행복 / 최기숙(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4. 08:39
제 442 호

타인의 행복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자기’로부터의 해방
  어느 날 연구실 복도를 지나다 영어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기말보고서 공지문을 보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은 영어로도 자기소개서를 쓰는구나, 졸업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자기소개서류를 쓰게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신입생은 오리엔테이션에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해서, 강의마다 이른바 자기소개란 것을 해야 한다. 글쓰기, 교양수업, 영어 강의는 물론이고 각 강좌마다 다양한 종류의 자기소개, 자기분석, 자기보고, 때로는 생애와 가족사를 서술하도록 요구받는다. 교육과정에 필요하고, 수업마다 교수에 따라 각기 다른 포인트를 제안하기 때문에 쓰기 방식과 내용은 달라질 것이다. 단순 반복은 아니기에 자기 구성과 표현 능력이 구체화되고 심화되는 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정련되는 것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 자기를 형성해온 가족과 사회적 요소, 글과 사진, 영상이라는 도구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효율적 방식,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감각이다. 이것은 매우 유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사에 모든 것을 자기로부터 출발하고 인식하도록 훈련받은 이로서의 피로도나 오류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또다시 회사와 직장, 새로운 삶의 터에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자기를 소개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진정한 자신에 도달하는 것일까(정작 일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남에게 절대로 소개하지 않는 그 사람의 성격, 취향, 사생활이다.).

  타인의 감각
  자기를 소개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글쓰기는 필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직 ‘자기’에게만 집중될 때, 타인에 대한 감각을 단련할 시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심지어 타인에 대한 감각마저 자기중심적으로 도용되고 비교의 대상이 되어버릴 수 있다. 타인의 장점이나 좋은 점을 눈부신 속도로 모방해서 자기화하는 사례가 그 단적인 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계 맺는 대신, 그가 가진 능력, 자질, 태도, 언어, 조건, 미래, 지향, 꿈까지도 자기 안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타인과 가장 성공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착각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자신의 가장 좋은 점을 알고 아껴주고 존중하며 격려하는 대신, 그것을 곧바로 자기 것으로 도용, 복사, 체화한다면 어떨까. 그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아니라 자기애가 지나쳐서 타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흡수하려는 놀라운 ‘자기 확장 욕구’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을 향한 소유욕과 지배욕의 표현이다. 타인과 자신의 관점을 ‘소유’와 ‘지배’의 관점에서 매개할 때 발생하는 놀라운 파괴력이다.

  자기 집중과 자존감
  누가 보기에도 호감이 가도록 자신을 소개하는 작업 보다는(대개는 자기를 채용/고용/관계 맺을 상대가 좋아할 자기 자신이겠지만) 자기 집중의 대상과 자존감 훈련, 나아가 자기를 성찰하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감각이 오직 자기 발전이나 자아 욕구의 확대로 흡수된다면, 이것이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식민화 욕구와 무엇이 다른가. 강자가 약자를 흡수, 모방, 소유, 지배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야만이다(마음의 제국주의, 욕망의 패권주의, 권력의 식민화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 방식은 정치, 외교, 국제정세, 역사의 흐름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성찰하는 방식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것을 모방하고 복사하는 형태라면 인류의 문화는 한 걸음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감각이다. 타인의 행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태도에 대한 훈련이다. 그것은 내면에 자존감의 힘이 있어야 비로소 행사되는 감성 능력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타인의 행복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침범하지 않는 마음과 행동의 훈련이 필요하다. 타인의 가장 좋은 점을 모방한 것이 가장 좋은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이 될 수 없다(우리는 이미 영화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를 통해 그런 사례를 접했다.).

  타인과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넘나든다. 말, 표정, 행동, 패션, 관심사, 희망, 꿈,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닮을 수 있다. 그러나 중심을 가지고 배워서 익힌 것과 욕망에 휩쓸려 얼룩덜룩해진 삶은 분명 다르다.

  마음은 사회의 호흡
  한국 전통적 글쓰기 문화에서는 타자의 생애를 관찰하고 공감하며 존경하는 태도가 발달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지켜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글쓰기 장르로 정착한 것이다. 쓰기 작업은 글쓰기 대상자가 사망했을 때 비로소 시작되었다. 애도와 추모, 기념의 뜻을 담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쓰고 읽고 듣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애도할 만한가, 어떤 삶이 아름다운가에 대해 저절로 생각해보게 된다. 손으로 쓰고 몸으로 기억하면서 마음에 새겨졌음이 분명하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좋지만, 그 결과가 자신의 존재값을 절대화하는 방식으로 정리되는 것은 위험하다. 언제나 타자를 배려하고 공생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타인의 불행에는 쉽게 동정하고 위로도 할 수 있지만, 타인의 행복을 축하하고 격려하며 제 일처럼 기뻐하는 데는 인격적 훈련이 필요하다.

  새해마다 무언가 새로 결심을 해야 한다면, 올 한해는 타인의 행복을 지켜보고 축하하며 격려하고 기뻐하는 마음의 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 같이 각박하고 하수상한 시절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태도야말로 귀하고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에 보인 마음은 돌고 도는 우주의 호흡처럼, 이 세상의 공공 자산이다. 사회의 공기는 저절로 정화되지 않는다. 누군가 전한 선한 마음이 미세 먼지처럼 반투명한 세상의 호흡을 한결 더 가볍게 정화할 것이다.

  마음이 사회의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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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기숙
·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한국문학 전공)
·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중편소설)

· 저서
〈감성사회〉 (공저) 글항아리, 2014
〈제국신문과 근대〉 (공저) 현실문화, 2014
〈감정의 인문학〉 (공저), 봄아필, 2013
〈처녀귀신〉 문학동네, 201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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