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몰락의 전조 있었던 것이
박근혜와 니콜라이 2세 공통점
타인 고통을 공감 못해 상식 배반
강자의 카르텔인 정경유착 끊고
사회적 약자 무시 잘못 속죄해야
매력국가 향한 리셋 코리아 가능
모스크바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와중에 황제는 무도회를 열고 황후와 춤을 추었다. 28세의 젊은 황제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부를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러시아 백성들이었지만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차르를 마음에서 추방했다. 이후 문호 톨스토이 백작이 황제가 학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외면하면 혁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 편지를 보내야 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1917년 2월혁명으로 폐위되고 다음해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되는 니콜라이 2세의 운명은 21년 전 상식을 배반한 무도회에서 예고된 것이다.
취임 1년여 만인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생명이 산 채로 수장(水葬)되는 세월호 참사를 만난 박근혜도 대통령답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비극의 심연(深淵)에 함께 가라앉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배가 침몰하는 동안에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헬스트레이너 출신 행정관과 함께 있었고,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했고,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안보실장은 최초 상황보고서를 본관과 관저로 동시에 전달했다.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고 7시간 만에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타나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이미 배가 가라앉았다는 건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TV를 보고 알았는데 대통령 혼자만 몰랐다는 합리적 의심은 참사 1000일이 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직의 가치를 스스로 모욕한 비상식은 민생에 눈감은 차르와 닮은꼴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어떻게든 강자의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것이 돈과 권력을 가진 이 나라 파워엘리트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 결과 탐욕의 정글에 내던져진 힘없는 다수는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그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하고 있다. 1만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이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시와 차별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촛불 시민혁명의 압도적 요구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한 사회다. 정경유착부터 확실하게 끊자는 것이다.
문명국가의 부자들은 만나면 이타적 선행(善行)의 방법을 토론한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만나서 돈 벌기 유리한 규칙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를 졸랐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한국의 전경련만 예외다. 전경련이 최순실의 사(私)금고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을 조달해주는 창구로 전락한 것은 국가적 수치다. 복지부 장관을 지낸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은 영국의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를 전경련의 대안 모델로 제시한다. 찰스 왕세자가 회장이고, 대기업 회장들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취약계층의 고용, 인종·성차별 해소, 지역 중소기업 육성, 전과자 취업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주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은 국가와 재벌의 동맹으로 굴러가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포스트 박정희 시대는 1%의 파워엘리트가 99%의 사회적 약자를 무시한 오만을 반성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 마음속의 피비린내 나는 무도회와 세월호 7시간의 비인간성을 지워내는 속죄의 제의(祭儀)가 필요하다. 그래야 매력국가를 향한 리셋 코리아의 힘찬 출발도 가능하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