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만물을 새롭게하리라[진정으로새로워지려면삶의목적이분명해야]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9. 3. 21:07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 20:1-8)  설교집Ⅰ<아침마다 새로우니> 3 No.20

성경본문[개역개정]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1.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2.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3.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날에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Cyber Space’ 예요. 가상공간 이죠. 1980년대 초에 캐나다의 공상과학 소설가인 윌리암 깁슨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이것은 거리가 없어요. 서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정보가 무한히 복제되는 세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인터넷에 들어와 접속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시장이 형성되었어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었어요. 온라인 신대륙이에요.

우리나라의 경제가 많이 위태롭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살 길이 무엇이냐? 한국경제를 먹여 살릴 혁신적인 기술,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이 어디냐? 놀랍게도 가상공간 속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싸이월드가 있습니다. 싸이버 월드의 약자이죠. 옛날에는 각자의 홈페이지를 각자 만들었는데 이것이 좀 복잡하거든요. 이젠 어떤 식으로 하느냐? 대 단지 아파트를 지어서 사람들에게 분양하듯이 아예 회사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을 하는 거예요. 미니홈페이지예요. 거기 들어가서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가입한 사람들은 아주 쉽게 왔다갔다하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거예요. 이 싸이월드의 회원이 일천 일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10, 20대는 필수이고 30대 초반인 사람들이 많이 한답니다.

저도 어제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 그 곳에 들어가 뭐가 있는지 봤어요. 거기에 도토리라는 것이 있어요. 도토리가 뭐냐 하면 사이버 머니(cyber money)예요. 자기 방을 꾸미고 하는데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 사이버 공간 안에서 필요한 돈이에요. 그것이 도토리예요. 그 회사에서 그것을 판매한 연수입이 470억이라고 합니다. 물건 만들어서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최고의 재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의 완전한 제국입니다.

또 하나 있어요. 한국이 지금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온라인 게임입니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기업으로 엔씨 소프트가 있습니다. 리니지라는 게임을 만들어 그것을 보급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기업이죠. 한 해 매출액이 이천오백억, 경상이익이 천억 원 이상이랍니다. 돈을 버시려는 분들은 뭔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앞으로 세상에서 엘도라도, 황금의 땅은 어디냐? 사이버 공간 안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는 그 안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본래의 우리 몸은 그 안에서도 여전히 그대로 남습니다. 좋다. 그러나 도대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 안에서 내가 돈을 벌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느냐 하는 목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급하게 말을 몰고 갑니다. 그를 지켜보던 한 농부가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시오 어디를 가시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합니다. ‘나에게 물어보지 마시고 이 말에게 물어보시오.’ 너무 빨리 달리기 때문에 떨어질까 봐 어디로 가는지 미처 알지도 못하고 말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것만은 분명히 하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방향을 분명히 하고 하루를 살아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이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Idul Fitri (이둘 피트리) 아닙니까? 바로 오늘 시작이기 때문에 기사들이 오늘은 일을 할 수가 없대요. 다들 오늘 아침 일찍 옷을 차려 입고 마스짓 (Masjid) 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거예요. 지난 달은 이슬람력으로 라마단이었거든요. 이슬람력 9번째 달인 라마단. 그 한 달간은 단식을 하는 것이지요. 일상이 흐트러졌던 그들의 신앙심을 다잡기 위해서 스스로 그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지요. , 그렇게 하고 오늘은 새로운 이슬람력 10월의 첫날입니다. 성공적으로 우리가 이 고난을 함께 잘 이겨냈으니 이제는 새로 변화를 맛보고 이것을 함께 기뻐하면서 축제로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근본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 삶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자고 일년에 한번 이런 기회를 갖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여기에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렸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여기 또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사도 요한이 본 세상이지요.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 새로운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 눈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죽음, 아픔, 애통, 근심을 거두어주신다. 그리고 목마른 우리에게 생명수 샘물을 주시고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여러분,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공간이 아니고 어떤 시간도 아니요, 우리의 본질적인 삶에 새롭게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본질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발붙이고 살고 있습니까? 현실 세계이지요. 여기에 우리의 갈등과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천국을 우리에게 이어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영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영화의 예고편과 같은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는 마치 그 천국의 본질을 우리들에게 맛보게 하는 예고편입니다.

어느 미션스쿨(기독교 학교)의 수업 시간입니다. 선생님이 과학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증기기관은 누가 발명을 했지?’ 그런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요. 저 뒤에 있던 애가 손을 듭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누가 발명을 했지?’ 그랬더니 그 학생이 능청을 떨며 대답합니다. ‘아마 그것도 예수님이 아닐까?’ 그것은 무슨 말이에요? 드리고 싶지 않은 예배 채플시간에 가서 졸면서 귓가에 들은 이름이 예수였기에, 혹시 그것도 예수님 아닐까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인간 이성을 신뢰했던 한 계몽주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말씀하시고 계심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졸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모르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 아유 목사님, 성도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참 좋으시겠네요.’ 그러나 목사의 고민은 또 따로 있습니다. 사실 잘 안 듣거든요. 그냥 앉아 있는 것입니다. 세미나는 그래도 돈을 내고 뭔가를 얻으려고 앉아 있지만 예배는 밤낮 들어본 예수 얘기 같고그리고 예화를 들면 듣다가도 이게 바로 예수님의…” 하면 또 아 저거 날마다 듣는 거구나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기대가 없는 예배. 그래서 목사는 고민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잘 얘기할 수 있을까?

제가 군에 있을 때 보니, 군인 교회에 많이 나오긴 하는데 어떤 생각으로 나오냐 하면 열의 아홉은 이 고달픈 군 생활에서 그래도 적어도 한 시간 확실하게 쉬고 잘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앉기가 무섭게 잠을 잡니다.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젖히고대장님이 앞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시간이기 때문에 차마 얘기도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대감 없는 예배. 비극이죠. 왜 그럴까요? 메시지가 매번 반복되기 때문이지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예화는 듣는 것 같은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하면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구나하고 마음을 닫아요. 이것이 고민이에요.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고민이 있어요. 정말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이 우리 안에 없어요. 정말 진리를 만나고자 하는 열정이 없어요. 오히려 정말 진리 앞에 서게 될 때의 나의 이 어두움과 거짓이 다 드러난다고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IMF 이후에 우리 나라에도 노숙자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참 고통스럽지요. 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마는 놀랍게도 막상 조사를 해보면 변변찮게 일해서 변변찮게 돈을 버느니 차라리 이 생활이 낫다고 합니다. 밥은 거저 주는 데 가서 얻어먹고 소주 한 잔 하고 일찌감치 드러누워 쉬는 것, 이것도 괜찮습니다 라고 해요. 이미 생활패턴, 사고유형이 되어버린 거예요. 아무런 기대를 하지 못하게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요.

여러분, 노숙자 같은 심정으로 교회를 나오시는 것은 아닙니까? ‘안 나오려니 허전하고 천국 지옥 얘기하니 차라리 확실하게 보험을 들어두자. 이 한 시간만큼 와서 앉아 있다가 가야지 그래야 심리적으로 뭔가 마음이 편안하지.’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아십니까? 데이빗 시멘즈라는 상담 심리학자의 <Healing Grace> (치료하시는 은혜)라는 책에 오늘 많은 크리스챤 가운데에 이런 유형이 많다고 합니다. 늘 마음 속에 아침 안개가 끼어 있듯이 그 마음에 죄책감이 있습니다. 그것을 굳이 분석해보면 뭔가 하나님 앞에 서면 두려운 느낌. 하나님이 나의 인간성을 보면 칭찬할 것 같지 않다라고 하는 느낌. 죄책감. 또 낮은 자존감. 아이구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옆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도 않고. 뭔가 비교해서 오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열심을 내는 듯 하면서도 돌아서면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합니다. 뭔지 모를 불안이 있습니다. 내가 불안하기에 나에게 가까이 온 사람에게, 나를 부르는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분노가 생겨요. 또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분노가 생겨요. 그리고 누구를 만나서 한 두 마디 인사로 얘기하는 것은 그럴듯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정말 마음을 열고 나의 속을 내놓으며 이야기하는 데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은 이미 그 존재 양식이 되어서 항상 생각이 매어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의 하나의 행동양식이 되어서, 이것은 잠깐 동안에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종 의식이에요. 직장에 가면 누가 그냥 월급을 줍니까? 열심히 일을 해야 월급을 주지요. 일을 안 하면 해고를 당하잖아요. 그러니 열심히 일을 합니다마는 이것은 계약관계예요. 내가 성실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나는 해고당할 수 있어요.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니에요. 이것을 벗어야 되는 것이지요. 종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그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자녀의식으로 바뀌지 않고는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예방주사 맞는 것을 겁냈어요. 그래서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하면 늦게 나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5학년 때로 기억이 나는데, 생각을 해보니까 이럴 것이 아니다. 그게 뭐가 무섭다고그래 그 후부터는 선생님이 예방접종 하러 나오라고 하면 1등으로 나가서 줄을 섰습니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팔을 내밀어 딱 하고 주사를 맞았습니다. 잠깐 아프고 말더라고요. 그리고 그 후로는 주사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극복을 한 것이지요. 따끔하지만 잠깐 참으면 괜찮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앞에서든 뒤에서든 줄을 서는 대로 맞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고 영접하는 여기에 우리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해요. 종 의식에 머물러서는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것이 살로 가지 않는 거예요. 정말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그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이 자유로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가 그리스도가 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라고 하는 것은 첫째, 우리를 죄로부터, 죄의식으로부터 자유케 하셨다. 둘째,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우리 미래에 분명한 길을 열어주셨다. 셋째, 오늘을 살아가는 데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새로워지려면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살고 계십니까? 돈 벌기 위해 사는 사람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유를 누리며 살고 적극적으로는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든 70년을 살든 여러분의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보다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그의 삶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델이요,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목표요 모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방법이에요. 성령께서 우리를 일깨워주십니다. 가르쳐 주십니다. 정녕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그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self-control,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다스려 가는 것이지요.

제가 군에 가기 전에 들으니까 군에 가면 구보가 아주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이 되었어요. 이것을 어떡하면 좋을까? 근데 마침 대학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어요. 이번에 내가 이 대회에 나가서 나를 테스트 해봐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주 잘 뛰었습니다. 완주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는데 상당히 잘 뛰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런 후 군에 가서 구보할 때는 너무 너무 쉬었습니다. 짐은 좀 무거웠지만. 사람은 생각이 참 무서워요. 나는 이 정도는 했고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한 번 오버한 적이 있죠. 옆에 친구가 너무 힘들어 하길래 제가 철모를 들어주었는데 그 철모를 하나 더 들었더니 균형이 깨져서 혼났습니다. 그리고 제대를 했는데, 그러고도 제가 아직 덜 깨달았는지 제가 살던 곳이 시로 승격하여 그것을 축하하는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제가 또 조금 오버를 해서 나갔습니다. 시합이라 다르더라고요. 땅 하는 순간에 선수들은 다 나가고 없어요. 제가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고 해서 열심히는 달렸는데 꼴찌를 했습니다. 제가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행사는 다 끝났습니다. Self-control, 즉 제 자신이 컨트롤이 안되었던 것이죠. , 그렇구나. 내가 건강하게 내 체력을 관리하면서 뛰는 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는데. 여러분 오버하지 마십시오. 늘 나의 삶을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잘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는 귀담아 듣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삶의 어둠 속에서 지혜를 얻고 능력을 얻고 길을 발견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무리 뜨겁게 기도해도 비몽사몽 꿈속에 나타나시지 않으므로 그런 엉뚱한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분명히 주일마다 강단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내게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들으세요. 마음을 활짝 열고 들으세요. 그럴 때에 내게 문제가 되었던 아픔에 대한 응답을 말씀을 통해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만큼 기쁨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게 하시고 너는 내 아들이요, 딸이요 하시며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리라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종 의식을 내어버리게 하시고 건강한 자유의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