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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396호 /율법에 나타난 다양한 기능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5. 26. 05:38

창골산 칼럼 제3396호 /율법에 나타난 다양한 기능들


제33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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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에 나타난 다양한 기능들 

 

 


 

 

 

홍종찬 목사

시19편은 다윗의 작품으로 1-6절까지는 자연계시에 대한 찬양이고, 7-14절까지는 특별계시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특기할 사항은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였고, 후반부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지칭하는 “엘”(ל󰔞)이라는 이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1절). 그리고 “여호와”(הוֹיה)라는 호칭은 “스스로 있는 자”(출3:14), 즉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이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언약 백성과 맺은 규정이 율법을 통해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7-10)

 

시인은 7-9절까지에서 한 절에 두개씩 여섯 가지 이름으로 율법을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들은 기본적으로 동의어로 사용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위해 주어진 율법의 다양한 기능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0절에서 그 율법의 무한한 가치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感情)의 극치를 최고조(最高潮)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에 나타난 율법의 다양한 이름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피로 맺은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1. “율법”(ה󰙜וֹתּ, 토라)입니다. 율법은 넓은 의미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4:4)고 하신 것을 보면,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율법의 완전함을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완전하여”(ים󰗬󰚛 타밈 )라는 단어는 “온전한”, “흠 없음”, “건전한”, “순결한”, “올바른”이란 뜻으로 주로 제사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용어는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완전하여”라는 말은 성경의 충족성(充足性)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경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인 측면에서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인간의 영혼을 소성시키기에 충분히 완전하고 가장 좋은 영양식이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증거”(תוּד󰘠 에두트)라는 단어는 항상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범죄한 자에게는 심판과 형벌의 증거가 되고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위로와 상급의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에서 “우둔한 자”(י󰚕󰘸, 페티)라는 단어 역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둔한 자”라는 단어는 “어리석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미련한”, “단순한”, “순진한”이란 뜻이 있습니다.


먼저, “우둔한자”를 “어리석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미련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율법의 지혜를 배우지 않는 자는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죄를 저지르게 될 뿐만 아니라(잠 1:10-14;7:7) 결국은 지옥으로 추락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단순한”, “순진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자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 혹은 열린 마음의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둔한 자”(י󰚕󰘸 페티)는 무엇이든지 믿는 경향이 있는 순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두 번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둔한 자”가 “여호와의 증거” 즉 율법의 지혜를 배우고 받아들인다면 죄의 유혹과 형벌을 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급을 받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3. “여호와의 교훈”입니다. 여기서는 율법이 교훈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교훈”(דוּקּ󰘳 피쿠드)이란 단어는 “지정되어진”, “명령”, “율법”, “계명”, “가르침”, “법령”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가리킵니다. 언약 백성이 교훈의 말씀을 통해 이방인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며 여호와만 섬기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에서 “정직하다”(ר󰚂󰖷 야솨르)라는 단어는 “공평”, “정직한”, “적합하다”, “옳은”, “곧은”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옳고 바른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이 옳고 바른 까닭은 먼저 성품이 올바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며, 다음은 “여호와의 교훈”이 인생을 올바른 목적지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의 계명”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는 문장에서 “계명”(ה󰕯󰙃󰗬 미츠바)이란 단어는 “명령”, “율법”, “법령”을 의미합니다. 이는 “명령하다”, “맡기다”, “명령을 주어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차바”(ה󰕯󰘼)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그리고 “순결하여”(ר󰔰 바르)라는 단어는 “사랑받는”, “순수한”, “빈”, “깨끗한”이란 의미입니다. 주로 “깨끗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때로는 “빛나게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아 6:10;사 49:2).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구절에 “밝게 하도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밝게 하도다”에서 “밝게 하다”(רוֹא 오르)라는 말은 “빛나다”, “영광스러운”, “밝히다”, “불붙이다” 사역동사로서 “빛나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칼빈(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 스스로 참된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선악을 분별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고 했으며,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인간의 영안을 뜨게 하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밝혀주는 유일한 등불입니다.

 

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입니다. 원문에는 “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본 구절을 직역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경외함”(האָ󰙣󰖹 이르아)이란 단어는 “두려움”, “무서움”, “무시무시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모든 율법이 한결 같이 선포하는 대주제입니다. 여기서는 율법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17:18-1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5:33)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라는 말씀에서 “정결하여”(רוֹה󰖧 타호르)라는 단어는 “순수한”, “정결한”, “깨끗한”, “흠 없는”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순금과 같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도 “is clea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세속적인 것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타냅니다(레 13:17). 따라서 “정결하여”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자체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고 순수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도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깨끗하고 정결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원까지 이르고”라는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 가장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썩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즉, 세속적인 것은 더러운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라질 것이지만 순전한 경외는 영원토록 보존된다는 의미입니다(요일 2:17). 이처럼 율법은 신자로 하여금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도록 교훈하고 양육하십니다.

 

6. “여호와의 규례(법도)”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여기에서 “확실하여”(ת󰗮󰔟 에메트)라는 단어는 “안정성”, “확실한”, “진리”, “진실”, “참된”, “신뢰성”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확실하여”라는 단어는 “진리”로도 번역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율법은 이방 종교의 법 조항들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의 표준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인간이 믿고 따르기에 완전한 법전입니다. 어느 정도 완전한가? “다 의로우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율법에 대한 결론적인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의롭습니다. 질적인 면에서 율법은 그 기원이 하나님이므로 의로우며 그 목적이 선한 것이기에 의롭습니다. 양적인 면에서 역시 모든 율법의 조항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의롭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10)라고 찬양합니다. 이 말씀은 외적인 가치와 내적인 즐거움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찬송입니다. 다윗은 먼저 율법의 가치를 찬양합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정금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세상의 모든 재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주는 행복감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송이꿀”이란 말은 히브리어 “노페트 추핌”(פיםוּצ ת󰘭󰗿)입니다. 여기에서 “노페트”(צ󰘭󰗿)는 “흔들어 조각내다”, “방울방울 떨어짐”이란 의미가 있고, “추핌”(פיםוּצ)은 “벌집”을 의미하는 “추프”(󰘹וּצ)에서 파생한 것으로 “흘러넘치다”, 뚝뚝 떨어지는 “꿀”이란 의미로 “벌집에서 흘러넘치는 ‘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송이꿀”이란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덩어리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꿀은 팔레스틴 산지에 흔하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꿀은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율법을 금이나 꿀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에게 있어 여호와의 율법이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외면적으로는 그의 모든 재산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내면적으로는 달콤한 행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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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자


홍종찬목사(사랑에빚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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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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