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반 만에 화백님이 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화백님 말씀에 의하면 2만 9천 볼트 감전 사고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합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두 팔을 절단을 하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사람 되기 틀렸다’고 외면할 때 오직 사모님만이 화백님의 곁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살려만 주면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답니다. 다행히 그 간절한 기도 덕분에 화백님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사모님 몫이었습니다. 밥 먹여 주는 것, 물 먹여 주는 것, 약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양치질 하는 것, 옷 입는 것, 신발 신는 것... 어느 것 하나도 사모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둘째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모님께서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셋째 아들과도 같은 화백님을 수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이랬다고 합니다. 그냥 빨리 도망가라고.
그런데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날의 화백님을 만든 분이 사모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모님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엊그제 만났을 때 화백님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고 이후 30년 동안 자신을 위해 살아온 사모님을 위해 지금부터는 아내를 위해 살고 싶다고.
두 팔이 없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살아온 석창우 화백님의 삶도 존경스럽기 그지없지만 그 환경 속에서 씩씩하게 화백님 곁을 지켜주고 화백님의 재능을 응원해 주신 사모님의 삶도 존경스럽습니다.
석창우 화백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은 것은 자신에게 축복이었다고. 그 사고가 없었으면 자신은 지금까 지도 전기기사에 머물렀을 것이고 지금처럼 새로운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런 것 보면 세상 이치란 이런 것 같습니다. 내 운명은 내게 다가온 어떤 사건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석창우 화백님께서 두 팔을 잃고 좌절만 하고 있었으면 오늘날의 빛나는 삶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을 비춰보았습니다. 세상에 바라는 것이 많고 불평불만이 많은 제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더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조만간 석창우 화백님을 여수로 모셔서 그 분의 예술 세계와 지금까지의 삶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대원(大原)
박 완 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