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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기성 목사 칼럼]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6. 15. 16:28


[유기성 목사 칼럼]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대만 까오슝에서 열렸던 [With Jesus Day]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살고자 하는 대만 교회와 성도들의 갈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4시간 주님 바라보며 살려할 때, 비판하는 이들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24 시간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느냐?’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고 위험하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 일상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 ‘세상 일을 도외시하는 이원론적 신앙이다’ 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님과 온전히 하나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자신 안에 거하는 연합의 관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언뜻 받아들이기 힘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가진 최대의 문제는 주님 앞에 설 때, 낯선 주님으로 만나느냐, 친밀한 주님으로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 7:23) 하는 말을 듣는다면 이 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재림해 오실 때, 도둑같이 오실 것이라 하였는데 (살전 5:2),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 3:3)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주님과 동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재림해 오시는 예수님을 친근하게 맞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장에 보면 주님께서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고도 ‘밭을 샀으니 못 가겠다, 소를 샀으니 못가겠다, 장가들었으니 못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상 생활은 중요합니다. 밭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천국의 초청도 거절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주한 일상 생활 중에 주님과 동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살전 5:4-6)
‘주님과의 친밀함’은 오랜 기간 주님과 동행하는 중에 얻어지는 보배입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3:20에 보면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밥을 먹자고 우리 안에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상에서의 친밀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임하였다는 말은 항상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살게 마련입니다.

'24
시간 주를 바라보라'는 것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주님은 모든 일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든 일상에서 주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할 수 없는 유익을 줍니다. 인간관계에서 더 사랑이 많아지고 시련을 만나도 더 잘 견디며, 악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이원론적인 신앙,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과 일상생활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원론입니다.
모든 일상에서 주님과 동행하기를 사모하는 것이야말로 신앙과 일상을 통합하는 일이자 신앙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24 시간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느냐?’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24 시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 여야 합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고 해도 때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거듭 은혜를 구하며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수없이 넘어지는 것 같아도, 어느새 뛰어다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주님을 항상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이 어느새 늘 주님을 의식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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