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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의 승리자가 되려면(욥42:10-17, 히10:35-39) / 호현낙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6. 25. 07:14

신앙의 승리자 되려면 욥42:10-17, 히10:35-39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 부인은 1867년 11월 7일 동부 유럽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생 중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방사능을 함유한 라듐을 발견하여 여성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1903년) 받았는데 어려서부터 철이 들 때까지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진실로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왜 한 번도 키스를 해주지 않는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의심으로 무척 고민을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어머니가 딸에게 사랑의 키스를 해주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가 일생 동안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사실을 그녀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은 다음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주님의 사랑도 때로는 내 곁에서 멀리 떠난 것처럼 생각 되어 나 자신의 고통이나 절망이나 아픔을 전혀 돌보아 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은 결코 아니라 우리 곁에서 지켜 보호하시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시련을 통해 연단을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우리는 뒤로 물러서지 아니하고 인내로서 감당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욥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만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사단의 시험으로 웬만한 신앙으로는 견디기 힘든 불 시험을 당했지만 마침내 시험을 이기고 신앙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신앙의 승리자 되려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 히10:35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하다보면 어려운 시련을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도 항상 하나님을 신뢰 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욥이 당한 시험은 욥기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욥기 1:1-3절에 기록하기를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남자가 일곱이여 여자가 셋이며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며 소가 오백겨리요 암나귀가 백이며 종이 많으니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부자가 사단의 참소에 의해서 순식간에 재산과 자식을 잃고 육체가 병들고 가정이 파괴되면서 일시에 망해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이 욥이라는 사람이 당한 환난을 우리가 당했다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건 상상도 못할 환난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이 무너지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한 마을도, 한 지역도, 한 나라도 아닌,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이니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이런 부자가 사단의 시험으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짐승의 무리와 욥의 온 소유물이 대적과 천재지변에 의해서 죽고 흩어지고 약탈당하고 자식은 집이 무너지면서 압사 당해 모두 죽고 자신은 병들어 망해버렸으니 이것이 상상을 초월한 기가 막힌 환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욥은 이런 시험을 당하면서도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욥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 하나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구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진심으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보호와 인도와 섭리를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욥은 욥1:20-21에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이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욥이 인내하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주권자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의 가는 길을 나도 모르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욥의 이런 신앙이 귀한 신앙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분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해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으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했고, 자기들이 노예로 팔아버린 동생 요셉이 애급의 총리가 된 것을 알고 두려워하는 형제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보고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던 사도들과 스데반 집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본을 끼친 모든 신앙의 선진들과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신뢰했기에 죽음 앞에서도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을 본받기를 소망합니다.

2.뒤로 물러서지 말고 전진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 히10:38-39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은 모세보다 높다."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심부름꾼이고 예수님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를 배반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가운데 고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라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모세에 대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도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다시 뒤로 물러가 종살이 하던 애급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땅이 갈라져서 고라와 그 일당과 그들의 재물이 일시에 삼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불이 나와서 고라를 따르던 나머지 사람들을 불살랐습니다. 이 모습이 뒤로 물러가다 망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다가 주님이 에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소망을 가지고 천성을 향해 가는 자들입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된 자들이요, 죄악 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결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어떤 달콤한 죄의 유혹이 와도 다시 예수 믿기 전 욕심과 정욕으로 살았던 구습으로 되돌아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종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바 된 자들입니다. 벧전 2:9의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확실한 자신의 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자기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일생이 달라집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야!"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보잘 것 없이 살게 됩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군이 왕궁에 쳐들어가서 왕과 왕비를 죽였습니다. 시녀 한 사람이 어린 왕자를 데리고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이 시녀는 어느 시골에 숨어살면서 왕자를 자기 아들처럼 키웁니다. 왕자는 그저 평범한 산골소년으로 성장합니다. 시녀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숨을 거두기 전에 왕자에게 비밀을 말해 주었습니다. "애야, 오늘 네게 꼭 할 말이 있다." 하고서 큰절을 한 다음에 "왕자님!" 했습니다. 어리둥절해진 소년을 향해 "왕자님, 지금까지 왕자님을 내 아들처럼, 시골의 천한 아이처럼, 아비 없는 아들로 키어왔지만 사실은 내 아들이 아니고 왕자님이십니다."하고서 자초지종을 다 말 해준 다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소년의 자기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나는 보잘 것 없는 시골 아이 야!" "나는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식이야!"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나는 왕자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이 나라는 내가 다스려야 하는 나라야!"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애써 실력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이 왕자는 옛 충신들의 도움을 얻어 나라를 되찾게 됩니다.

히브리서 본문 39절은 성도들이 어떤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다.”,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장차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이 성도들이 꼭 가져야 할 자기 인식입니다. 이런 자기 인식을 갖지 못한 사람은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인식이 없으면 성도답게 살지 못합니다. 세상 죄에 빠져 살다 멸망에 이르고 맙니다. 우리 모두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버릴 것 과감히 버리고 하늘 백성다운 모습 가지고 살다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소망 중에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본문 히 10:36-37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환난을 만날 때에도 참고 인내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기 전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고난과 시련 가운데도 큰 흠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합니다. 욥은 인간적으로 회개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특별히 어긴 것도 없었습니다. 욥의 회개는 하나님의 주권을 더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욥의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내가 왕 노릇 하지 않고, 나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보면서 보잘 것 없는 자기를 들어 낸 것을 회개합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한걸음 더 깊숙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전에는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 중에서 겸손을 배워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큰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크게 보고, 인간을 작게 보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은 주인으로 삼고, 자신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신앙으로 오래 참고 인내한 욥에게 있던 모든 시련은 물러가고 모든 것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욥 42:10에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했습니다.

회복은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산불로 잿더미가 된 산도 시간이 지나면 생태계가 복원됩니다. 난지도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 매립장이었는데 생태계가 잘 복원되어서 지금은 쾌적한 시민공원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물며 참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회복의 그날까지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얼마 전 자살을 돕는 독극물을 판 20대가 경찰에 구속되었습니다. 자살하지 못해서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더 문제입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도 일종의 자살입니다.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납니다.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바울은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이 되었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했습니다. 소련이 개방되기 이전에 소련에 들어간 한 외국인이 지하교인 가정을 방문했는데 집에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바닥에 앉아서 교제를 나눴는데 이 지하교인이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저도 여러 번 감옥에 다녀오고 또 벌금형도 받았는데 그 벌금 마련하기 위해서, 또 갇힌 성도들 빼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구를 하나하나 내다 팔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더랍니다. 그 때 방문한 분이 바로 히브리서 10장 34절 뒷부분의 말씀으로 위로했다고 합니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을 알고 기쁘게 감당하십시오." 우리 모두 장차 들어갈 천성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참고 인내하는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신앙의 승리자 되려면,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전진해야 합니다.

◎.소망 중에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아멘.

<2017. 6. 25. 성산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호현낙선 원글보기
메모 :

 욥42:10-17, 히10: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