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선거·정치에 개입하고 불법으로 국정에 관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검찰이 2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제출한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입을 다물기가 어렵다. 4대강 여론조작과 보수단체 지원을 넘어 언론공작과 개별기업 노조 개입 등 국정원의 전방위적 불법·탈법 행태가 생생하게 드러난다.이 녹취록을 통해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2012년 대선 ‘댓글공작’이 일부 직원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국정원장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실행된 선거개입이란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심리전단 같은 데서도 그런 것 가지고 심리전도 하고 그렇게 해서 좌파들이 국정을 맡은 것을 차단시키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심리전단이란 부서를 콕 찍어 북한보다는 주로 우리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에 나설 것을 주문한 셈이다. 각 부서장과 전국 지부장까지 참석한 공식 회의 자리에서 국정원장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니 그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총선·지방선거 등의 후보 결정 과정에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내비치는 대목도 나온다. 원세훈 원장은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라며 일선 지부장들에게 ‘현장 교통정리’를 주문했다. 여당의 구청장 후보를 ‘국정원이 다 나서서 (조정)했다’는 과거 사례도 거론했다.19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1년 11월 회의 발언이니, 이런 지시가 실제로 이행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원세훈 원장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우리 지부에서 후보들 잘 검증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이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선거에 개입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녹취록을 보면, 원 원장이 자신을 정보기관 수장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 많다. 대법원은 ‘증거능력 부족’을 이유로 원 원장의 선거개입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보다 명확한 증거가 또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 원세훈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정권 차원에서 기획되고 실행된 것은 아닌지 철저히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