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다. 사법연수원 기수 면에서 양승태 현 대법원장의 13기 후배라는 점도 그렇지만 50여년 만에 대법관 출신이 아닌 현직 법원장이 발탁됐다는 점도 획기적이다. 국회 임명동의 과정을 통과한다면 법원에도 쇄신 바람이 예상된다. 현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법원 안팎의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점을 고려하면 혁신을 위해 불가피한 인선으로 보인다. 기존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초강수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김 후보자는 1988년 2차 사법파동을 낳은 판사 서명에 참여한 이래 우리법연구회 회장, 국제인권법연구회 1·2대 회장 등의 이력에서 보듯 뚜렷한 개혁 성향을 지닌 판사다. 지난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에도 법원장 중 유일하게 참석해 인사말을 통해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는 등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다. 소장 법관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어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사법부 개혁의 적임자로 꼽을 만하다.
지금 사법부에 가장 절실한 것이 법원 안팎의 신뢰 회복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을 뿐이지 ‘양승태 체제’는 판사들로부터 사실상 불신임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법관대표회의가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 등을 공식 요구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채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간 뒤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인천지법의 한 판사는 단식까지 감행할 정도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의심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 구성과 판결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판사를 뜻하는 이른바 ‘서오남’ 위주의 대법관 구성은 보수 편향의 판결을 낳았다. 전교조 시국선언 유죄와 법외노조 추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정리해고 패소, 과거사 관련 퇴행적 판결 등이 잇따랐다. 최악의 사법부 신뢰도(27%)는 당연한 결과였다.
김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는다면 법원의 신뢰 회복을 위해 당장 법관대표회의가 제기한 판사 블랙리스트 문제와 법관회의 상설화 등 현안부터 해결해야 한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관철하는 것은 물론 사법개혁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어야 한다. 법원행정처 쇄신을 통한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 해체와 고등부장 폐지는 물론 민사배심제 등 시민 참여 확대, 노동법원 신설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