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진흥공단에 채용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 6월2일 경기도 안양 수원지법 안양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안양/연합뉴스
“재판을 공정하게 해달라고 하니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공정하게 해달라’는 전화가 (저한테) 자꾸 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고려’, 자꾸 이런 얘길 하면서 ‘분명하게 해달라’는 얘기를 합니다. 절대 앞으로 주변 분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7시간 넘게 진행된 공판 내내 인내심을 발휘하던 재판장이 최경환(62) 자유한국당 의원을 향해 일침을 날렸다. 지난 21일 밤 9시20분 수원지법 안양지원 301호 법정에는 김유성 부장판사의 목소리만 낮게 울렸다. 김 부장판사는 이어 “저는 일절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검찰이 제기한 공소를 입증할 수 있느냐 이 부분에서만 판단할 것입니다. 다른 쪽으로 얘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덧붙였다.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신입직원 채용에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사실상 비서로 근무한 황아무개씨를 합격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강요)로 불구속 기소된 최경환 의원은 이날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공정하게 봐달라”는 취지의 의견 진술만 두 차례나 했다. 이에 재판장이 “전화 오지 않게 해달라”고 응수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재판장 발언에 최 의원은 “저는 뭐 그런 사람들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이라며 얼버무렸다. 증인에 대한 인격모독성 심문을 길게 펼쳐 여러 차례 지적을 받은 최 의원의 변호인들도 이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의 ‘실세’ 부총리로 중진공 부정채용 사건의 청탁자로 지목되고도 좀처럼 수사 대상이 되지 않다가 지난 3월에야 기소된 최경환 의원의 두번째 공판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날 재판에서 최 의원에게 강압 수준의 취업 청탁을 직접 받았다는 사실을 증언한 박철규 전 중진공 이사장, 김범규 전 중진공 부이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최 의원과 진실 공방을 벌였다. 지난 5월 업무방해죄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박 전 이사장은 이날 법정에서 “2013년 8월1일에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최 의원을 만나 황씨의 불합격 소식을 전했지만, 최 의원이 ‘괜찮아. 내가 결혼도 시킨 아이인데 그냥 해(합격시켜)’라고 반말로 말해 강압·지시·협박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전 이사장은 합격자 명단을 고쳐 황씨를 합격자로 발표했다. 박 전 이사장은 “최 의원이 당시 실세 부총리이고, 황씨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박 전 이사장과의 만남 자체를 부정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씨의 변호인들은 특히 애초 진술을 번복하고 지난해 9월 법정에서 “최 의원에게서 채용 압력을 받았다”고 밝혀 결국 최 의원에 대한 재수사 국면을 만든 박 전 이사장을 4시간에 걸쳐 심문하며 공격했다. 박 전 이사장의 답변이 끝날 때마다 “두고 봅시다”, “거짓말하네요” 등 비웃는 언사를 해 재판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주의를 받았다. 최 의원의 다음 공판은 다음달 25일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