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자화상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8. 29. 17:08

자화상|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158 |추천 0 |2017.08.26. 09:28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205 

8월의 말씀 산책 

아내가 수술 후 퇴원한 지 5개월째다.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하고 있으면 점차 좋아지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 된 게 아닐까 하고 걱정 된다. 통원치료로 재활운동을 해야 하는 걸 나이가 많아서 회복이 늦어지는 것으로 알고 무리하지 말고 서서히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자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퇴원해서는 완전히 환자였었는데 병실을 떠나 익숙한 침대에서 방해 받지 않고 지내게 되니 이제는 병원생활이 다 끝난 것 같았다. 퇴원 2주 만에 수술 했던 병원에 정기 진료를 갔을 때는 휠체어를 빌려 진료를 받았는데 담당 의사가 회복이 정상이라고 진통제를 끊어도 되겠다고 해서 만세를 부르고 귀가 했었다. 그러나 바로 진통이 심해져서 시 보건소에 가서 2개월 분 진통제를 받아 와 그것으로 견뎌 냈다. 그 뒤 일 주일 후에는 수술 시 병원을 심방 오셨던 권사님이 요양원에 입원 하셨다 해서 심방도 갔고 그 후 2주 째에는 미국에서 아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조치원 근처의 경관이 좋은 식당에서 우리 형제 가족 모임도 가졌다. 동생 내외들이 너무 회복이 빠르다고 칭찬해서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8월이 다 가는 지금 퇴원 후 5개월째인데도 걷는 것이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진통제를 너무 오래 먹고 있으면 습관성이 되어 좋지 않다고 하루 두 번을 한 번으로 줄이면 어떠냐고 여러 사람들이 권해서 아내에게 그렇게 해 보자고 건의했더니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아는데 아파서 끊을 수가 없는 것을 왜 그러느냐고 짜증이었다. 모처럼 친구가 식사 대접을 하겠다면 허락하고 나서 아내는 더 외부 출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외식을 하러 가자, 대형매점을 운동 겸 걸어서 둘러보자, 금요 장에 나가 보지 않겠느냐고 하면 그러고 나면 더 아파서 친구도 만날 수 없다고 집 안에 앉아 있기만 한다. 실내라도 걸어보자. 의자에 앉아 무릎 굽혀 펴기,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 찜질 같은 것을 해보자고 하면 그러고 나면 다음날 더 아프다고 거절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사도우미로 일한 것이 5개월째 되어 간다. 걷는 것이 불편하고 무거운 것을 잘 못 들기 때문에 처음 얼마동안은 식사, 설거지, 청소, 빨래, 쓰레기 비우는 일 등을 도맡아 했었다. 그러나 점차 나아져서 고맙게도 식탁에 앉아 요리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게 되었다. 요즘은 내가 만드는 것은 맛이 없다고 나를 조교로 두고 자신이 조심스럽지만 요리를 한다. 그러나 식단에 올라온 내용이 일정한 아침식사는 내 몫이다. 나는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 5시 반에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40분 쯤 산책하고 샤워를 한 뒤 아침 준비를 한다. 아침 메뉴는 당근, 브로콜리, 파프리카, 달걀 반숙, 그리고 홈쇼핑으로 산 모싯잎 개떡이다. 아내는 아침 단잠 깨우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모바일에 알람을 맞춰 놓기가 어렵다. 내가 잘 알아서 일어나 산책을 나가야 한다. 아침 준비에 달걀 반숙과 냉동고에 얼려 놓은 떡을 알맞게 데우는 데는 내 작품이 환상적이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이것들은 내 자랑이다. 그러나 당근이나 파프리카는 아내가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아내는 꿈쩍 않고 TV의 뉴스나 여행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다. 아침 준비를 다 마치고 아내에게 브로콜리나 당근을 삶을 때는 소금 양을 잘 맞춰 넣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면 어때?” 하고 묻는다. 나는 그녀의 운동량이 부족한 것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그럼 그녀는 왜 그런지 몰라. 요즘은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며 씽긋 웃는다.

그렇게 싫으면 어떻게 해? 회복이 늦지 않아?”

회복이 늦는 것은 당연하지.”

?”

내가 늙었잖아?”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 내고, 원두커피를 끓여 가져가는 것까지는 내 몫이다. 차를 마시면서 아침 연속 방송을 본다. 이것이 우리 두 사람이 거실에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이다. 또 무슨 출생의 비밀이 들어나나? 음모가 들어날 때마다 또 어떻게 모면하고 다른 기발한 나쁜 짓을 모의하는지 그런 것을 보는 것이 빤한 재미다. 두어 편을 보고 나면 나는 설거지를 한 뒤 서재로 가서 생명의 삶’, ‘CTS 큐티’, ‘Our daily bread' 등을 통해 말씀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온 초창기에는 선교사들이 사경회査經會를 한다고 하면 먼 길을 자신이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와서 몇 주 동안 잠자리를 구해 자면서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참 쉽게 믿는 세상이 되었다. 성경공부 하는 재미도 그때를 따를 수 없다. 당시 한 여인은 옛날에는 출가한 딸을 만나러 가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더니 사경회가 그와 같았다고 쓰고 있다.

11시에 나는 아내를 찾아간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그녀를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아내는 침대에 가서 피곤한지 잠깐 눈을 붙이고 자고 있다. 깨울 수가 없어 천천히 골절된 다리 마사지를 시작한다. 아내가 실눈을 뜨고 묻는다.

왜 그래요.”

여름 다 가기 전에 냉면 먹으러 나가면 안 될까?”

나가기 싫은데

바깥 공기 쏘이면 정신이 번쩍 들고 상쾌할 거야. 늦게 가면 자리가 없는데.”

배도 안 고픈데, 그럼 차라리 늦게 가요. 배가 고플 때.”

나는 다시 서재로 돌아와 읽다 만 책을 꺼낸다. 디이트리히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이다. 내가 장로로 장립할 때 후배인 철학 교수가 준 것이다. 옛날 것인데 밑줄 쳐진 곳만 듬성듬성 읽는다. 30세도 되기 전 그가 쓴 책은 너무 심오하다. 39세에 나치의 형무소에서 형 집행으로 생을 마친 그를 생각하며 나는 지푸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나는 내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해 왔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내 자화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림없다. 너무 나는 세속적이며, 자기중심적이며, 탐욕스럽고, 부끄러운 내 자신을 왜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다. 새 생명으로 거듭나서 변화되고, 온유하고, 용서하며, 영원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런 내 모습으로 바꾸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의 표현을 그렇게 말한 것일 게다. 그런 꿈을 가지면서도 요즘 내가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은 너무 저속하다. 장사꾼인 트럼프와 전쟁광인 김정은과 코드인사라고 비난 받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하는 말과 행동 때문에 날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또 세상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세상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아니 세상보다 더 못한 사고와 행동으로 뉴스앤조이의 소식란을 가뜩 메우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내가 부끄럽다. 이것이 분단 된 우리나라에서 내가 살면서 보고 느끼는 실상이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을 지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야, 자네 잘 지내는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 했네.”

그래 웬 일이야? 어부인께서도 여전하신가? 고스톱도 잘 치고?”

그의 부인은 약간 치매환자여서 혼자 집에 두고 잘 나다니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내가 혼자서 두 목 치고 있네.”

자기가 아내 표까지 챙겨서 무얼 내라고 가르쳐가며 화투를 친다는 뜻이다. 나는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던 친구 소식도 묻는다.

잘 있어. 일찍 아내가 암으로 소천하고 젊은 아내와 재혼 안 했는가? 그런데 그 친구는 자신이 약간 치매야. 그래서 지난번에는 아내가 모시고 동창회 모임에 왔더라고.”

문인협회의 내 친구는 상처를 하고 귀가할 때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싫다며 시간 내서 대전에 나를 찾아오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내가 미국의 아들 집을 2개월 동안 갔다 왔더니 그 친구는 세상을 떴다고 장로 신문에 부고가 떠 있었다.

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고령자들의 이야기다.

이 때 아내가 외식을 하러 가자고 나를 부른다. 나는 너무 좋아 서재에서 뛰어 나온다. 그리고 그녀를 부추기고 지하주차장으로 간다. 그러면서 깜짝 놀란다. 이렇게 하루를 지내는 모습이 내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사랑하는 자(하나님)의 포도원에 대하여 노래했다. “내 사랑하는 자에게는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極上品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내가 그리고 싶은 자화상이 바로 이 쓸모없는 포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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