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바구미 성경 말씀 묵상
흔히 남편이 은퇴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으면 아내들은 삼식三食이라고 싫어한다. 직장에서 일에 쫓겨 정신없이 지내다가 은퇴하니 닭 쫓던 개처럼 할 일이 없어져버린다. 그러나 아내들은 스스로 취미생활을 찾아 해 오던 터라 남편이 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심한 사람은 황혼이혼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내가 삼식이다. 그런데 조금도 싫지 않다. 삼식이든 사식이든 많이만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두 달 간이나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식욕을 잃고 소식小食을 해 와서 뭘 준비해 주어도 먹지를 않는다. 재활운동을 더 하고 퇴원해야 하는데 빨리 퇴원하자고 우긴 것은 나였다. 집에 와 있으면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 와서 끓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음식을 들지 않는다. 식욕이 돌아오지 않았고, 곧 포만감이 왔고, 음식 냄새를 역겨워 해서 두 번 다시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요즘 쇼핑의 달인이 되어가는 중에 있다. 마트에 있는 식품 이름들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호박 고구마, 알타리 무, 부추, 꽈리고추, 쌀보리, 찰현미, 서리태, 느타리, 팽이 버섯, 한우 중에도 채끝 등심/안심 살, 장조림 용 아롱사태, 건어물 중에도 명태, 동태, 황태, 코다리 구별하기… 등이다. 종이에 쇼핑 리스트를 써서 가져가지만 모르면 곁에 서 있는 어떤 아주머니라도 붙들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 쇼핑 후 집에 오면 아내는 식탁 의자에 앉아 살림 9단이 되고 나는 조수가 되어 반찬을 만든다. 아내가 <고춧가루, 마늘, 파, 참기름,…>하면 나는 부지런히 대령하지만 완성된 요리는 아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간도 아내가 보고, 불 조정도 아내가 시킨 대로 했지만 제 맛이 안 난다고 몇 번 먹어보고 그만 둔다. 결국 만들어놓고 다 먹을 수가 없으니 늘 냉장고만 가뜩 찬다. 집에 퇴원해 있는 동안 아내가 교회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권사들로부터 안부 전화가 온다. 아내 곁에 전화가 없을 때는 내가 받는데 내 음성을 들으면 권사들은 내가 간병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느냐 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를 낸다. 아픈 사람보다도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 든다는 것이다. 밥은 제대로 먹느냐, 반찬은 어떻게 하느냐, 가서 청소라도 해 드려야 하는데… 등등. 나는 건강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씩씩하게 말한다. 밥은 전기밥솥이, 세탁은 세탁기가, 청소는 진공청소기가 해 주기 때문에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너무 힘들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 어쩔 때 세탁을 하고 세탁물을 빨래 걸이에 말리고, 어질러진 방안 청소를 하고 나면 점심때가 된다. 인터넷에서 사서 냉동고에 넣어 놓은 갈치나 새끼 굴비를 비늘을 벗기고 손질해서 구워 점심준비를 하면 집안에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아내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요리다. 요리하는 동안 아내는 TV를 즐기다. 상을 차리고 먹을 준비를 다 해 놓고 식사하러 오라고 말하면 걸어와 탁자에 앉는데 몇 번 반찬에 젓가락을 대다가 비린내가 나서 그만 먹고 싶다고 밀어 놓는다. 그리고 시원한 물김치는 없느냐고 묻는다. 나도 지금까지 아내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신문이나 읽고 있다가 와서 시큰둥하게 밥을 먹을 때가 없지 않았다. 그 때 아내는 내게 말했었다. 어떤 남편은 식사 자리에 앉으면 “아, 맛있다, 아, 맛있다.”고 입맛을 다셔가며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맛있게 먹어주면 안 되냐고 말했었다. 이제 내가 아내의 노고를 몰라 준 앙갚음을 당하는 것이다. 내가 간병하느라고 힘든 것을 알고 있는 한 친구는 그 동안 자녀들을 낳아 기르고 유학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고 내 아내가 얼마나 고생 했겠느냐고 말하면서 지금은 그 때 진, 무거운 빚을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갚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것보다도 나는 아내가 두 번째의 어려운 수술을 하러 들어갔을 때 나는 이번에 다시 하나님께서 회생 시켜 주시면 집에서 내 곁에 앉아 있기만 해도 감사하다면서 그 땐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기도했던 터였다. 나는 할 말이 없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아내의 간섭 없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침 상 차림이다. 단호박 죽에 오트밀귀리가루를 넣고 끓여 거기에 견과 가루를 섞어 주식으로 하고 당근, 브로콜리, 파프리카, 반숙 계란을 곁들인 것이다. 이중 반숙 계란 만드는 것은 내가 달인이다. 그리고 전기밥솥인 쿠쿠 압력밥솥으로 잡곡밥을 짓는 일이다. 잡곡밥은 백미 1, 쌀보리 1/2, 찰현미 1/2, 서리태 한 주먹을 섞어 씻어 만든다. 그런데 어느 날 쌀보리를 꺼내는데 컵에 거미줄 같은 것이 걸리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벌레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과연 쌀 속에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쌀보리로 지금까지 밥을 해 먹었던 것이다. 모조리 꺼내어 햇볕 비치는 마루에 신문을 깔고 쌀을 부어 놓았더니 작은 벌레가 기어 나왔다. 집으려 하자 몸을 둥글게 말아 굴러 갔다. 찰현미는 어떤지 가져와 보았다. 거기에서도 까만 벌레가 올라왔다. 아내가 쌀바구미라고 했다. 이것은 탁자 위에 신문을 깔고 그 위에 쌀을 부어 놓자 여러 마리가 기어 나왔다.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소름 끼쳐 하며 이 잡듯 잡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국제전화가 왔다. 우리가 바구미 잡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냥 밥해 드세요. 그것도 단백질인데요 뭐.”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지자 그걸로 떡을 해 먹었다는 사람도 있고, 알코올 함량이 30% 이상인 술에 탈지면을 적셔 접시 위에 올려놓고, 쌀을 담아 둔 용기를 밀봉해서 그 위에 접시를 올려놓으면 2,3일 내에 벌레가 다 죽는다는 이야기, 또 화랑곡나방이나 쌀바구미를 죽이는 살충제를 사서 쓰면 된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5kg짜리 잡곡을 샀는데 병원에 오래 있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 떡 해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알코올을 쓰거나 살충제를 사러 가는 것도 거추장스러웠다. 그렇다고 귀한 곡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이 벌레들은 일단 쌀눈부터 먼저 먹어치우고 나머지를 갉아먹기 때문에 쌀이 부스러지고 쌀에 영양가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먼저 쌀벌레 제거부터하기로 했다. 우리가 취한 방법은 양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비닐봉지에 넣어 밀봉해서 냉장고에 넣어 벌레들을 동사凍死시키는 방법이었다. 삼일 후부터 나는 잡곡밥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양은광주리에 쌀을 담아 물로 시체를 흘러내리고 다음 쌀과 잡곡을 섞어 쌀을 씻을 때 물 위로 떠오른 시체는 버리고 몇 번 이렇게 한 뒤 쿠쿠로 밥을 한다. 안 죽은 쌀벌레가 좀 섞였기로서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들 말대로 그것도 담백질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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