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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선 모멸감·다른 쪽선 수치심…‘마봉춘’엔 무슨 일이 있었나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9. 23. 21:25

한쪽선 모멸감·다른 쪽선 수치심…‘마봉춘엔 무슨 일이 있었나

등록 :2017-09-21 18:20수정 :2017-09-21 21:54

 

임명현 MBC 기자의 잉여와 도구

2012·2017파업 사이에 주목
비인격적 인사관리에 휘둘리며
구성원 스스로 저널리즘 유예
저널리즘 실천되찾을 계기 모색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 앞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어 김장겸 사장 퇴진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 앞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어 김장겸 사장 퇴진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4<문화방송>(MBC) 구성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2012년에도 권력이 내려보낸 낙하산사장의 퇴진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무려 170일 동안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최근 출간된 <잉여와 도구>(정한책방)는 이 두 파업 사이, 1875일 동안 문화방송에 대한 어떤 기록이다. 임명현 문화방송 기자가 동료 27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 등을 통해 권력이 방송을 쥐고 흔들던 5년 동안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과 그들의 마음을 책 속에 담았다. 올해 초 임 기자가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이 책의 뼈대가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벌어진 4대강 사업, -미 자유무역협정(FTA), 내곡동 사저 의혹,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및 간첩 조작 의혹,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에, 문화방송의 비판 보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권력의 방송장악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최근 5년 만에 다시 불붙은 파업이다. 지은이는 두 파업 사이에 주목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동안 문화방송 내부에서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저항적 실천이 사라졌을까?

그 답의 실마리는 회사의 비인격적 인사관리에서 찾을 수 있다. 2012년 파업 이후 경영진은 공정방송을 요구했던 구성원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시용·경력 기자들로 그들의 자리를 채웠다. 저널리스트로서 본분을 다하려 했던 구성원들은 해고되거나, 보도국 바깥으로 배치되거나, 스케이트장 관리등 업무와 무관한 자리로 내쫓겼다. 최근 들어 회사가 이를 위해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했던 정황,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이 우리가 믿고 맡길 수 없는 사람들, 잔여 인력으로 이들을 작성한 정황 등이 속속들이 드러나고도 있다.

지난 2월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명현 문화방송 기자.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2<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명현 문화방송 기자.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은이는 업무배제를 당한 구성원들이 잉여적 존재가 되어 자신들의 고통과 공포를 개인화하고 사사화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거울의 반대편처럼, 잉여의 반대편에는 도구가 있다. 경영진이 대체인력처럼 채용한 시용·경력 기자들은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뉴스를 생산해내는 도구적 존재가 되어갔다. 잉여적 기자들이 모멸감과 소외감을 주로 느꼈다면, 도구적 기자들은 무력감과 수치심을 더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잉여적 기자들이나 도구적 기자들이나, 스스로의 저널리즘 실천을 유예하길 선택했다.

현재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파업을 통해 그동안 유예해뒀던 실천에 다시 나섰다. 지은이는 “‘파상의 시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기획을 실천하는 행위자라기보다 깨져나가는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겪는 자에 가깝다고 썼다. 지난 5년 동안 비참한 현실을 겪고 버텨온 것은, 한편으론 그동안 용기있게 실천하지 못했다는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제라도 새로운 길을 뚫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장으로서 문화방송의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도 되새길 만하다. 지은이가 그린 문화방송의 모습을 읽으며 권력이 어떻게 저항하는 주체를 갈라놓고 잉여와 도구로 삼는지, 또 주체들은 어떻게 다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등 우리 시대를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2021.html#csidx0e07a63018eaf2da2942f1db43a51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