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작가 최일남 소설집 ‘국화 밑에서’
특유의 박람강기와 해학 돋보여
“노년소설 아니야, 그냥 소설일 뿐”
특유의 박람강기와 해학 돋보여
“노년소설 아니야, 그냥 소설일 뿐”
국화 밑에서
최일남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최일남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원로 작가 최일남(85)의 열네번째 소설집 <국화 밑에서>에는 2006년에서 2013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 일곱이 묶였다. 2004년에 낸 <석류> 이후 13년 만인데, 그 기간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 서너편은 “시의에 맞지 않아서” 이번 책에는 넣지 않았다고 작가는 밝혔다.
수록된 작품들은 거의가 작가 자신으로 보아 무리 없을 노년의 소설가 또는 비슷한 연배의 남자 노인을 등장시킨다. 이른바 ‘노년소설’인 셈인데, 작가 자신은 그런 규정이 “별로 있음 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젊다 늙었다 경계가 너무 재미없다”며 “소년소설이나 장년소설이 따로 없듯이 노년소설이란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21일 낮 한겨레신문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노년에 들면 마음이 너그럽고 사리 분별에도 밝다고들 하던데 믿을 것이 못 된다. 도리어 갈팡질팡 줏대 없이 구는 수가 많다. 남을 신뢰하지 못하는 만큼 자신의 언행에 미리 핑계를 대고 알리바이성 변명을 준비하기 일쑤다.”
‘밤에 줍는 이야기꽃’이라는 작품에서 그 자신 노인인 주인공이 노년을 두고 냉정하게 하는 말이다. 겸손을 겸해 내린 박한 평가라 이해해야 하리라. 이 작품의 주인공은 초저녁에 들었던 잠이 중간에 깨는 새벽 2시를 전후한 시각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며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같은 해외 스포츠 중계를 바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박지성의 활약상과 껌 씹는 감독 퍼거슨 옹의 묘사가 생생하다. 구청에서 마련한 무료 컴퓨터 교실에 다니는 일상이며 또래 친구들과 1박2일 여행을 가는 이야기 등이 섞이긴 하지만, 소설의 대부분은 주인공의 상념으로 채워진다.
이렇다 할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기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 한 사람의 독백 대신 맞잡이인 대화 상대와 말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축적해 온 수십년 경험이 되짚어지고 이런저런 책들에서 얻은 정보가 곁들여진다. 경험과 정보, 그에 대한 해석이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독서의 재미인즉 얼마 전 인기를 끈 텔레비전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노인 버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열네번째 소설집 <국화 밑에서>를 낸 원로 소설가 최일남. “중요한 건 좋은 소설을 써내는 것이고, 또 그걸 남들이 인정해주는 재미”라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소설은 사실과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하지요? 나이 먹을수록 상상력이 절감되고, 그보다는 경험 쪽에 자신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체험의 무게랄까 두께, 넓이, 이런 것을 무시하면 안 돼요. 제가 이번 소설집에서 일제 시대 이야기를 많이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예요. 이 책이 일본어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가 남긴 비망록 정도의 의미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표제작 ‘국화 밑에서’는 “장례식장을 하루에 두 군데나 가다니”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 말마따나 주인공은 예전 교사 시절 동료의 상가와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을 연이어 가야 한다. 먼저 옛 동료의 상가에 간 주인공은 썰렁한 빈소가 눈에 밟혀 뭉기적거리다가 상주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야기인즉 장례 의식의 변천사와 요즘의 추세, 장례식에 얽힌 이런저런 기억이고, 죽음을 경쾌하게 노래한 윤재철 시인의 시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의 인용과 그에 대한 품평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일제강점기의 일어 상용화를 둘러싼 소동을 회고한 ‘말이나 타령이나’의 말미에서 이 이야기에 주요하게 등장한 당시 국민학교 친구가 얼마 전 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주인공 겸 화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내 오죽잖은 이야기에 마지막 변화라도 주고자 멀쩡한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냈다면 죄로 갈 노릇이다. 절대 아니다.”
죽음조차 유머의 대상으로 삼는 여유가 부럽거니와, 최일남 소설의 참맛은 복선이나 반전을 포함한 극적인 사건에 있지 않다. ‘최일남투’라 해야 할 특유의 문체에 얹힌 경륜과 해학이 그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잘빠진 비유 하나 열 문장 부럽지 않다”거나 “(옛말을) 깨끗이 씻어 새말에 곁들이면 섞어찌개 같은 맛이 구수하고” 같은 문장을 최일남 아닌 그 누가 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