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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火山島 화산도]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9. 23. 20:50

“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등록 :2017-09-18 16:10수정 :2017-09-18 21:05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조선 폄하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분노”
18일 간담회에서 ‘조선적’ 관련 생각 등 밝혀

대하소설 <화산도>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 사진 최재봉 기자
대하소설 <화산도>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 사진 최재봉 기자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어딘가에서 ‘조선을 테마로 한 문학은 보편성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젊은 내게는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 일본문학은 상위 문학이고 재일조선인문학은 하위 문학이라는, 제국주의적 발언이었지요. 제 일생은 상상력을 무기 삼아, 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93·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18일 낮 서울 은평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화산도> 집필 과정과 ‘조선적’을 고집하는 까닭,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와 남북 관계 등에 관해 솔직하고도 열정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화산도> 1부를 쓸 때는 4·3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4·3 당시 거기에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걸 쓰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고향 땅을 밟아 보고 산천 냄새도 맡고 한라산도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원한을 품은 채 소설을 썼어요.” 그는 “4·3 직후 일본으로 밀항한 9촌 여자 삼촌한테서 지옥 같은 고문의 참상을 들으며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의 타격이 내게 소설을 쓸 힘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의 충격과 슬픔이 여전히 생생한 듯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대하소설 <화산도>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대하소설 <화산도>
“일본 문학은 사소설이 주류이고 정치를 다루면 하등의 문학이라 멸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거기서 벗어나 4·3과 같은 정치적 테마를 다루었죠. 정치와 싸우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문학으로 도망치는 작가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정치와 맞서 싸우면서 지금까지 써 왔습니다.”

그는 남도 북도 아닌 분단 이전의 한반도 전부를 가리키는 ‘조선’ 국적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지만, 국적 문제로 고민하는 재일동포 젊은이들에게는 굳이 조선적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고 밝혔다. “나 자신은 사상으로서 조선적을 지키는 것이지만, 젊은이들은 필요하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라고 말합니다.”

대하소설 <화산도>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 사진 최재봉 기자
대하소설 <화산도>로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 사진 최재봉 기자

“‘한겨레’란 남과 북으로 나뉘지 않은, 남북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말한 그는 <한겨레> 기자에게 “이번에 내가 받은 이호철통일로문학상처럼 한겨레신문도 통일로 신문 아니겠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북한 내부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외부에서 침공하거나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 정부 성립 과정 자체는 합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평화통일이 되기 위해서라도 해방 공간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필요해요. 이승만 같은 자를 국부로 모시는 상태로는 안 됩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가야 하고 또 갈 것으로 믿습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1448.html#csidxfd1a48cb9709cb3b30f2073c17a805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