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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누군가는 김정은을 만나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한겨레21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0. 30. 03:31


“누군가는 김정은을 만나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지낸
이종석 전 장관 “현 정부 대북·외교 정책,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

제1179호
등록 : 2017-09-11 14:07 수정 : 2017-09-11 14:28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외교 정책에 대해 쌓인 말이 많은 듯했다. 이 전 장관은 9월7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세종연구소에서 진행한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외교 정책은 단순한 일회성 시행착오나 방법론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방향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쓴소리를 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로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 책사’로 불리며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이 전 장관이 남북대화 대신 강대강 대결로 전환하는 듯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며 내놓은 고뇌에 찬 작심 발언이었다.

제재는 이미 실패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으로 햇볕정책을 주도한 그는 대표적인 대북 대화론자다. 9월7일 새벽 이뤄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추가 배치에 대해 이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은 상대의 공격에 가장 취약했던 대선 후보 시절에도 사드 배치 문제에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며 버텼는데 가장 힘있는 임기 초기 이렇게 허무하게 사드 배치를 강행했다는 것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현 정부의 대북·외교 정책에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겠다”며 짙은 우려를 표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데 이어 6차 핵실험을 했다. 한국 내에선 너무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북한의 의도는 뭘까.

북한의 의도는 명시적이다. 미국이 적대 정책을 펴고 핵위협을 가하려 하기 때문에 ICBM과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게 북한의 공식적인 언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돼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나 공격에 가장 분명한 전략적 거부 능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 자신을 공격하려 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놀라고 분노하지만, 북한은 이 국면이 협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ICBM과 핵무기를 완전히 만들었다고 판단하기 전까지 계속 질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뒤 “지금은 대화를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한 7월 ‘베를린 연설’과는 기조가 상당히 다르다.

북한이 더 강한 핵 도발을 하고 있기에 분노하는 건 정서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강한 제재를 해도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8년 동안 국제사회가 유엔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에 취한 해법은 오로지 ‘제재’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제재는 더 강한 북한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후 고강도의 핵실험, 미사일 개발이 이뤄졌다. 악순환이 증폭됐다. 국제사회가 제재할 때마다 ‘사상 최강의 제재’라고 했지만 효과를 보진 못했다. 제재는 실패했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으면 실패인 것이다. 그렇게 실패한 정책을 우리는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나도 제재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객관적으로 실패로 드러난 이상 재검토해야 한다. 그냥 제재를 밀고 가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제재가 실패했으면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완전히 단절됐다. 악순환을 끊는 게 협상, 대화다. 현재 이게 없으니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워낙 격화되고 분노 게이지가 높아 당장은 힘들겠지만 일정한 과정을 지나면 대화가 불가피하다. 이때를 대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대화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압박과 제재’를 말할 수는 있으나, ‘대화할 때 아니다’라고 굳이 문 닫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을까.

대화 조건 제시는 비상식적

정부는 9월7일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경북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배치에 많은 분이 걱정한다. 대선 과정에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포용정책을 내세우고 공약하는 후보는 취약하고 공격당하기 십상이다. 대북 강경 공약은 ‘때려잡자 공산당’식으로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면 되지만 포용 정책은 3단 논법의 이성적 설득이 필요하다. 그만큼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대선 때 사드 배치 문제에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며 버텼다. 그런데 가장 힘이 있을 임기 초기에 이렇게 허무하게 사드 배치를 강행했다는 건 참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충분한 공론화나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청와대는 조기에 한-미 정상회담을 치르려는 의욕과 국방부의 사드 반입 허위 보고 사건의 미숙한 처리로 인해 사드 문제에서 스텝이 꼬인 것으로 짐작된다. 보수 언론은 청와대가 사드 문제를 제기하면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고 윽박질렀는데 이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 아닐까 싶다. 사드 배치 문제는 진지하게 시간 갖고 해법을 모색해야 했다. 대선 과정에서 버틴 것이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쉽게 결론 났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넉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중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사드 배치로 어떤 후폭풍이 있을 것으로 보나.

사드 배치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사드 문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시간을 두고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드를 배치하더라도 중국을 설득할 절충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상당히 투박하고 거칠게 진행됐다. 중국을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그래서 경제 보복이 돌아왔다. 이런 후폭풍은 오래갈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는 차라리 대선 과정에서 사드 배치를 찬성한 것보다 더 부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드 문제를 다룰 때 군사적 효용성, 한-미 동맹, 동북아 역학 구도, 한-중 관계 등을 두루 살폈어야 한다.

북한은 우리와 대화를 일절 거부한다.

대화는 상대방과 협상 조건을 교환하고 만들어내는 데 필요하다. 옛날에는 북한이 대화 조건을 내밀곤 했다. 대화를 보상으로 여기는 것은 북한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북한에 대화 조건을 내세우고 우리가 편승하고 있다. 대화를 하려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핵포기 의지를 밝히라는 조건이다. 이 조건들은 대화로 확인해야 한다. 대화는 갈등을 없애는 기본 틀이다. 조건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북핵 문제 때문에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그 긴장이 터지고 스트레스가 충돌하는 지점은 괌이 아니다. 바로 우리 휴전선과 북방한계선(NLL)이다. 군사력만 증강해 대결하는 것은 안 된다. 충돌을 막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우발적 충돌을 예방·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남북대화는 언제든 필수다. 상대와 대화해 휴전선에서의 긴장이 충돌로 바뀌는 것을 막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상시적 대화 틀을 가동해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야 지금 상황이 군사적 충돌로 향하는 더 큰 위험을 막을 수 있다. 대화를 마치 보상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는 한반도 위기를 격화한다.

실현 가능성 낮은 전술핵 배치, 진지한 논의 필요

국방부는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조심스러운 문제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의를 내세워 논의를 금기시하긴 어렵다고 본다.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논리, 당위, 현실의 세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논리 차원에서 보면 북핵 위험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 둘째, 이것이 한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국민은 북핵 고도화로 심각하게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다. 더욱이 북핵 문제는 남북관계에 끊임없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지난 20여 년간 국민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남북협력과 북방경제를 통한 한국 경제의 재도약 기회를 박탈해왔다.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럴 바에야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북한의 핵포기시까지 잠정적’이라는 단서를 달아 재배치해 북한과 핵균형을 이루는 것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역설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데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당위 차원에서 보면 핵 없는 한반도를 지향하는 대의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에 위배된다. 또한 북한의 핵보유를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편으론, 우리 국방의 주한미군 의존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북핵 위협이 엄존한 상황에서 ‘반핵’의 대의나 이미 빈 껍데기가 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만으로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반대하기에는 상황이 엄중하다. 주한미군 의존 심화 문제도 논란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은 우리가 하기 나름일 듯하다.

오히려 문제는 현실 차원에 있다.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미국 처지에선 북핵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핵 보유를 공인하는 꼴이 돼서 미국의 안보 전략을 재구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와도 갈등을 야기하는 문제다. 여간해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만약 사드가 배치되지 않았다면 사드 배치 계획 철회 대신 이 카드를 내밀 수 있지만, 이 경우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볼 때,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우리 처지에서 극우적 발상으로 몰며 무조건 금기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면 그 한계가 공유되면서 제3의 대안이 나올 수도 있다.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가 취해지더라도 효과를 발휘하긴 어려울 듯한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에서 원유 공급 중단이 결의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효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은 풀을 먹는다고 해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본다. 내 판단과 경험으로도 북한은 굴복하지 않는다. 북한의 체제 위험 속 행태를 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원유 공급 중단이 북한 경제에 타격을 주더라도 북한은 지금껏 내부적으로 근근히 버티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북한의 결전 의지만 강화하고 북한 주민의 고통만 가중할 것이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휴전선에서 상당한 긴장을 만들어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우린 김정은을 잘 모른다

미국은 북한의 무력 시위에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나.

미국의 무력 대응 여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태도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는 전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진폭이 큰 발언과 행동으로 볼 때, 그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한국 지도자가 군사적 제재를 반대하면 강행하기 어렵다. 군사적 옵션의 마지막 키는 한국 지도자의 의지다. 우리가 전쟁은 안 된다고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면 된다. 한국 정부가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북 특사 파견을 제안했는데.

북핵 위기로 대치하면 긴장이 터져나오는 곳은 대체로 휴전선 일대나 NLL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안정적 남북관계 관리를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고 특사가 필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1년 지도자 자리에 오른 뒤 만 6년이 지났다.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모험적인 도발을 해온 위험한 지도자로 인식돼왔다. 이런 김 위원장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분석하지만 실제 아는 게 무엇인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외부인은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과 과거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뿐이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물론이고, 후진타오 전 중국 주석,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뒤에도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정책 전환을 해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만났을 때는 일본인 납치 고백을 했고, 후진타오 전 주석과 만난 뒤엔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합의했다. 북한 지도자를 만나고 설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시도도 하지 않고 만나는 것 자체를 보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누군가는 김정은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권리의 범위와 의무를 알려줘야 한다. 또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이걸 왜 포기하나. 나는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김정은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안 되면 자기라도 가서 만나겠다고 천명했으면 좋겠다. “시진핑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 설득하라. 나 역시 그러겠다”고 해야 한다. 대화는 조건이 아니다. 대화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화 중엔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다. 추 대표의 말에 비판도 제기되지만 상식적인 말을 한 것이다.

미국 심기 지나치게 신경 쓰면 안 돼

한국은 미국에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첫째, 미국에 우리의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재는 실패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대화하자고 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합리적 대안을 내놓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둘째,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공조란 서로 다른 걸 맞춰가는 것이다. 퉁소가 여러 군데 공기 마찰을 통해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른 것을 조율해야 한다. 미국과 다르다는 걸 두려워하거나 미국의 심기를 지나치게 신경 쓰면 안 된다. 설득력과 용기를 지녀야 한다. 셋째, 미국과 함께 무작정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미국의 신뢰를 밑천으로 우리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자는 것은 천진한 이야기다. 대북제재에 강하게 동참한다는 것은 미국이 볼 때 우리가 미국과 같은 인식을 지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 뒤 우리가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미국은 우리 말에 신뢰를 보내며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중플레이를 한다는 식으로 의심한다. 그것이 강대국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외교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평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겠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정리 윤수현 교육연수생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