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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전범(典範) / 나사왕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1. 9. 07:16

덕후의 전범(典範)

2017. 11. 2.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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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평생을 두고 한 가지 테마를 탐닉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장엄한 일”


   40년을 ‘비틀스’에 빠져 살고 있는 한 일반 회사원이 펴낸 저서에 음악평론가 강헌이 단 추천사는 결코 과도한 상찬이 아니다. 1112쪽에 달한다는 이른바 ‘베개책’ 두께가 7년, 2555일을 한결같이 비틀스를 파고들어 자료를 모으고 회사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3시간씩 글을 쓴 역정의 이면을 대변하듯 충분히 압도적이다. 더군다나 비틀스만을 한정해도 수많은 관련 서적이 나와 있고 깨알 같은 정보가 다 기록된 책들이 즐비한 일본에서조차 “이런 책은 찾을 수 없다.”라고 단정할 정도로 ‘기록’이란 측면에서도 기념비적이라 할 만하다. 정규 앨범에 담긴 213곡과 그밖에 라이브 앨범 등에 담긴 69곡을 더한 282곡에 대한 정보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말 다 했다.


   2017년 10월 30일 한겨레신문에는 비틀스 전곡 해설집인『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비틀즈 전곡 해설집』을 펴낸 한경식 씨(55)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는데 ‘덕후’라는 단어로 통용되는 마니아들 거개가 그러하듯 한 씨도 처음엔 ‘그냥 좋아서 ’ 비틀스 노래에 빠졌지만, “왠진 모르겠지만 40대가 되기 전에 뭔가 하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에 매달렸다고 한다. 구판 격인『더 비틀즈 콜렉션』이 2001년에 나왔으니 20대에 막연히 생각했던 일을 40대 전에 실행으로 옮긴 건 분명해 보인다. 이 부분에서 내가 새삼 각성하는 건, 한 씨는 본인이 흥미를 두고 몰입한 방면에서 제 흔적을 남기고자 치열하게 발분한 끝에 스스로 정해놓은 기한 내에 완결을 봤는데 ‘기한 내’라는 전제는 숭배의 대상에 누를 끼치는 어떠한 하자도 불허하겠다는 경도자의 견결한 의지의 표명이자 스스로를 을러매 마침내 무결한 낙착을 보려는 엄격한 인고의 시간에 다름 아니라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2017년,『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비틀즈 전곡 해설집』개정판이 나오기까지 한씨는 다시 ‘비틀스 테마의 장엄한 탐닉’을 위한 ‘압도적인 성실함’의 역사(役事)를 재개 했다는 점에서 이 시대 진정한 덕후의 전형으로 평가받을 만하고 ‘무관의 스페셜리스트’란 칭호가 결코 과분하지 않을 아우라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기사 말미에 ‘인 마이 라이프’를 282곡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그냥 들으면 편안해요. 제가 쉬운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는 의외의 반응에서 무릇 모든 공교함은 졸렬함에서 비롯된다는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불현듯 떠오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