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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성찬.../ 박완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5. 01:39

말의 성찬...

                        보낸사람

박완규 <pawg3000@naver.com> 보낸날짜 : 17.12.04 00:12                

  

 

 


 



  


 

 

 


말의 성찬...



 


    


한 때, 내 호주머니에는 500원이 전 재산이었을 때가 있었다. 아주 옛날 내가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심한 몸살감기가 들었는데 약 사먹을 돈이 없었다. 그래서 차가운 고시원 바닥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끙끙 앓아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가 요즘 같은 초겨울이었는데 온 몸에 한기가 들어서 사시나무 떨듯 떨어야 했다. 그때 내가 이불 속에서 이를 악물고 했던 생각은 오직 이겨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자신도 이기고 다른 사람도 이기고 세상도 이기겠다는 굳은 각오뿐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그렇게 늘 낭떠러지 위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이 언제나 절박했고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내 삶에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삶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그냥 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는 그리 순한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독한지는 내 아내가 잘 안다. 단지 남들에게만 순하게 보일 뿐이다.


혹시 혈서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써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손가락을 이빨로 깨물어서 흘러내리는 피로 뭔가를 쓴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을 밥 먹듯이 했다.


실제로 손가락을 이빨로 깨물으면 아프다. 진짜 아프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태해질 때마다 그리고 내가 뭔가 큰 결심을 해야 할 때마다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었다.


가진 것도 없고 모든 것이 형편 없었던 그때의 여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렇게 내 자신을 몰아붙이는 일이 전부였다. 어쩌면 그렇게 독하게 내 자신을 다그쳤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이만큼이나마 사람노릇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나의 삶은 언제나 전쟁터 같아서 지면은 끝이었다. 이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지금껏 그렇게 알고 세상을 살았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내 자신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꼭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에게 져주거나 양보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좀처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이겨서 뭐하게?’ 하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면 그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내 자신을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기보다는 다른 사람 아래에 두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직위가 높은 사람이나 직위가 낮은 사람이나 나는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사를 할 때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나는 90도로 인사를 한다.


이렇게 낮은 자리에 나를 놓으니 내가 누군가에게 대접 받으려고 하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나를 뽑내거나 나를 내세우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나보다 아랫 사람이 없으니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부분 내가 뭔가를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거나 아니면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가 은연 중에 하고 있기 때문일 때가 많다.


거의 틀림이 없다. 내가 기분이 나쁠 때는 둘 중에 하나가 원인이다.


그럴 때 '아!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혹은 ‘아! 이 사람은 내 위에 있는 사람이라 내가 섬겨야 하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 그 서운한 생각이 많이 줄어든다. 결국 그러한 생각이 나를 웃게 하고 나를 편하게 한다.








 

  

  


  



최근 들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의 80%만 하려고 노력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바로 치받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할지라도 바로 대응을 하기보다는 조금 약하게 그리고 조금 줄여서 말하곤 한다.


우리는 날마다 어떤 말이든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하는 말에는 여러 종류의 말이 있다. 꼭 필요한 말이 있고 필요 없는 말이 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모두에게 유익한 말이 있고 해로운 말이 있다.


살다보면 내가 뱉은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 나는 무심코 한 얘기였는데 상대방에게는 꽤 큰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말로서 상처를 주거나 말로서 상처를 받은 경험...


그래서 옛 성현들께서는 생각을 세 번 한 뒤에 말은 한번만 하라고 했다.


나도 사실 조심스럽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글로써 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누구를 비판하는 글이나 반박하는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 그저 하루를 살다가 느낀 내 생각만 얘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새겨들어야 하는 존재다. 부정적인 말, 시비 거는 말, 남을 깎아 내리는 말, 퉁명스러운 말, 예의 없는 말, 배려 없는 말, 건방진 말, 이기적인 말...


이러한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남이 아닌 내 자기 자신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이러한 부정 적인 말을 날마다 내 귀로 듣게 되니 그 말이 다시 나를 세뇌시키고 나를 점점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결국 자기 말에 자기가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다른 사람의 흉을 보려고 하면 나는 그런 말을 가급적이면 나에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굳이 들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보다는 그냥 우리 얘기만 하자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같은 말이라도 밝고 환한 말이면 좋겠다. 상대방에게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는 말이면 좋겠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말이면 더 좋겠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또 어느 때는 그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상대의 사소한 변화에도 아낌없이 찬사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지적은 간단하게 하고 칭찬은 길게 하는 요령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대의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말도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부하건데 상대의 간을 보기 위해서 넘겨짚어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가 그것을 알면 상대에게 속을 뺏기는 것이고 그러면 상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험담에는 언제나 발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이 다시 말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은 내 입에서 일단 떠나면 책임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함부로 한 말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지불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듣는다는 사실도 우리가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내가 무시해도 좋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무시하면 언젠가는 그것은 내게 되돌아오는 법이다.


그런데 내게 되돌아 올 때는 그냥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낸 무시보다 훨씬 더 아프고 힘들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 무시를 받으면 내가 벼르고 있듯이 그 사람도 나를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나와 생각도 다르고 철학도 다르고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조건도 다르다. 그래서 나처럼 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내 조건과는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식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고 부하직원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우리가 날마다 하는 말은 고스란히 우리의 인생이 된다. 내가 하는 말 속에는 나의 인격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말이 참 많았다. 세상을 살면서 가급적이면 말 많이 하지 말고 져주면서 살자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말이 많다.


대원(대원)
박완규 올림




 

오늘 사진은 김광중 작가님이

여수 인근에서 담아온 소담스런

가을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