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업체 경비원 ‘고무줄 해고’ 관행에 제동
아파트·빌딩 등 경비원 처우개선 계기 될 듯
아파트·빌딩 등 경비원 처우개선 계기 될 듯
아파트 경비원들은 용역업체와 아파트 간 위탁관리계약이 끝나면 자동으로 해고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가 많다. 이런 ‘고무줄 해고’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아파트 경비원이 경비 초소에서 근무하는 모습. 사진 최우리 기자
아파트와 용역업체의 위탁관리 계약이 끝나면 고용 기간이 남은 경비원도 모두 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 근로계약 조항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아파트와 빌딩 등의 경비용역업체와 경비원 사이의 ‘고무줄 해고’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로,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경비원 박아무개씨가 옛 소속 용역업체인 ㄱ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인 박씨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박씨는 2015년 12월1일부터 ㄱ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서울 송파구 ㅇ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해왔다. 3개월의 수습근무 뒤인 2016년 2월 말, 회사는 박씨만 해고했다. 박씨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해고는 무효지만, 복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박씨의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 중이라도 회사와 아파트 사이의 위탁관리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근로계약은 자동 종료된다’는 조항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가 근무하던 아파트는 ㄱ사와의 위탁관리계약을 2016년 5월31일 해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씨가 별다른 잘못 없이 직무를 수행한 점 등에 비춰보면 회사가 수습기간 종료 뒤 본 근로계약을 거부할 객관적·합리적 이유가 없을뿐더러 근로계약 거부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도 않아 해고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그러나 “아파트 위탁관리 업무의 특성상 위탁관리계약의 해지나 종료를 근로계약 기간에 연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으므로 아파트 위탁관리계약의 종료로 근로관계 역시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 시점 이전의 임금만 청구할 수 있을 뿐 복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런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아파트와의 위탁관리계약이 종료됐더라도 용역업체와 경비원 사이의 근로관계가 당연히 종료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해고 외에 당연퇴직 사유를 정했더라도 근로자의 사망이나 정년, 근로계약 기간의 만료가 아니라면 그 역시 근로기준법의 제한을 받는 해고일 뿐”이라며 “아파트와의 위탁관리계약이 해지될 때 근로계약이 자동 종료되는 것으로 약정했다고 해도, 이런 약정을 근로관계의 자동소멸 사유(당연퇴직 사유)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위탁관리계약이 해지되더라도 경비원을 자동으로 해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아파트와 빌딩 등의 경비원 상당수는 근로 기간을 위탁관리계약과 연동하는 내용의 독소조항이 담긴 근로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경비원과 용역업체 간 근로계약 관행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