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과 함께 도덕성 회복을
박학래 (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
연말이 되면 늘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다사다난'이다. 12월 들어 이곳저곳에서 연일 이어지는 송년 모임에서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수식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일상은 한 해라는 시간적인 구획 속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연속되는 듯하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보내면서 가장 많이 접한 문구 중 하나는 '적폐청산'인 듯 싶다. 지난 해부터 연일 언론을 통해,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어지는 부패한 권력과 이와 결탁한 소위 '힘 있는 기관들'의 추악한 행태를 확인하면서 우리 사회에 쌓인 '적폐'에 대한 관심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적폐청산'은 당연한 일로 비치고 있다.
하지만 적폐가 어디 힘 있는 권력자와 기관에만 있겠는가? 그 뿌리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펼쳐져 있고, 그 깊이 또한 상당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적폐는 아닐까? 이러저러한 생각에 조선시대 여러 선현의 문집을 검토해 보니 적폐에 대한 논의는 조선이 개국하던 때부터 끊이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여러 폐단이 쌓여 왔고, 그 폐단의 시정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적폐와 이의 청산은 그리 만만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적폐청산이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와 마주하면서 "적폐란 과연 어떤 기준을 통해 규정지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법률조항을 위반한 것만을 적폐로 한정하고, 그것을 단죄하는 이른바 적폐청산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람다운 세상으로 변화하는 것일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교차하면서 사람다운 세상은 법만으로는 이루질 수 없으며, 법의 준수에 앞서 도덕이 지켜지는 세상이 필수적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물론 법과 도덕에 대한 입장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초에는 타율적인 강제규범으로서 법보다는 자율적인 도덕 규범이 자리를 잡아야만 사회발전의 건강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도덕에 대한 관심은 악화일로에 있음이 분명하다. 사회 곳곳에서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교육 현장에서 인성교육은 당장의 경제적 효율성과 무관한 것으로 비치고 있고, 학교 교육에서 도덕 수업은 진학이나 사회진출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권력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에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네 일상이고, 권력자들의 '내로남불'을 탓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적 기풍은 삶의 방향보다는 속도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풍조를 만들어 왔고, 그런 가운데 도덕 교육은 그저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살펴볼 일이다. 청소년의 55%가 10억 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응답을 했다는 한 기관의 최근 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음미해야 할 시점이다.
곪은 상처만 도려내는 외과적 처방만으로 우리 몸의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없듯이, 부패한 권력에 대한 단죄만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증적인 처방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치유책으로 일상에서의 적폐청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 출발점과 종착점에 일상에서의 도덕 실천과 건강한 도덕성 회복이 자리해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적폐청산과 더불어 도덕성 회복의 기운이 만연하길 기대한다.
2017년 12월14일 목요일 한겨레신문 13쪽 호남.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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