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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빨갱이’로 모는 시절에 [한승동의 독서무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15. 17:47

대통령도 빨갱이로 모는 시절에

한겨레 등록 :2017-12-14 19:32수정 :2017-12-15 11:33

 

[한승동의 독서무한]
그가 열여덟 살 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라는 물음에는 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느님을 만들었는가?라는 더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걸 보는 순간 그는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1원인론이 허구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면 신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든 제1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하느님처럼 원인 없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을 만든 존재는 누구고 하느님을 만든 존재를 만든 존재는 누군지, . 그렇게 가면 세상이 코끼리 등에 얹혀 있고 그 코끼리는 거북이 등에 얹혀 있다는 힌두교의 해답 없는 무한반복과 다를 바 없다. 그 거북은 또.

버트런드 러셀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설파한 이런 주장 중에서 쉽게 와닿는 것은, 세상 만물이 인간이 살아가기에 꼭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목적론에 대한 반박이다. 토끼 꼬리가 그 모양에 흰색인 것은 포수들이 총 쏘기에 좋도록 하기 위해서고, 사람의 코가 이렇게 생긴 것은 안경 쓰기에 좋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이라는,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러셀은 1927년에 한 강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 목적론을 살펴보노라면, 온갖 결함들을 지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최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 생각해 보라. 만일 여러분에게 전지전능과 수백만 년의 세월을 주면서 세상을 완성해보라고 했다면 고작 공포의 큐 클럭스 클랜(KKK)단이나 파시스트 같은 것밖에 만들 수 없었을까?

우리 같으면, 수백만이 끌려가고 이름마저 빼앗긴 식민지, 분단, 3백만 이상이 죽고 1천만이 이산가족이 된 6·25전쟁이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본군 위안부 그리고 북의 핵 개발조차 다 하느님의 뜻이란 말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게 신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이란 말인가? 러셀이 1936년에 쓴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선 전염병도 신이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보낸 것이니, 오직 회개할 뿐 맞서 싸우는 건 소용없는 짓이란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회개하느라 교회당에 모여 기도하는 바람에 떼죽음이 더 늘었다.

그 뒤 과학의 눈부신 성취로 전근대 주술로부터 해방은 가속됐고,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무신론자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은 여전한 듯하다. 2014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의 70.6%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들 중 다수는 과학적 성취도 신의 뜻이라는 창조론으로 나아갔다. 전지전능의 존재라면 애초에 선도 악도 없고 오직 행복한 완벽한 세상을 왜 만들지 않았을까? 그 또한 신의 뜻이라면 해답 없는 무한반복일 뿐.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당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한다.2011년 초에 번역 출간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뒤지다 표지 뒷장에 지은이 장하준이 그렇게 써놓은 걸 발견했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거대 공당이 대통령조차 빨갱이로 모는 시절에.

한승동 독서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23574.html?_fr=mt0#csidx4673bdb00b40aa1aab2b98bc69e71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