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중심으로 관계기관 협의 거쳐 결정’이라고 밝혀왔으나
2015년 2월8일 박 전 대통령 ‘철수’ 지시에 이틀뒤 NSC서 결정
“박 전 대통령이 누구와 어떤 절차로 결정했는지는 확인 못 해”
2015년 2월8일 박 전 대통령 ‘철수’ 지시에 이틀뒤 NSC서 결정
“박 전 대통령이 누구와 어떤 절차로 결정했는지는 확인 못 해”
개성공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라산전망대에서 개성공단의 해질녘을 촬영했다. 폐쇄 뒤 행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건물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가로등만 외롭게 공단을 밝히고 있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가 2016년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그간의 설명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구두지시에 따른 것이란 점이 확인됐다. 정부는 그간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국가안보에 관한 공식 의사결정 체계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엔에스시) 상임위원회를 통해 최종 결정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위원장 김종수·이하 혁신위)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성공단 재개는 향후 북핵 문제 상황과 남북관계, 국제적 정세를 고려해 이뤄져야 하겠지만, 전면적인 중단 결정의 진실이 밝혀져야 재개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통일부를 중심으로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안보에 관한 공식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해왔다. 2016년 2월7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엔에스시에서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기로 하고, 2월10일 오전 10시 엔에스시 상임위에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을 했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혁신위가 내놓은 ‘통일부 정책혁신 의견서’를 보면, 정부가 밝힌 날짜보다 이틀 전인 2월8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구두지시를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 혁신위는 “당시 통일부와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2월8일 오전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게 대통령 지시라며, 철수 방침을 통보했다”며 “오후에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회의를 소집해 통일부가 마련한 철수대책안을 기초로 협의를 통해 사실상 세부게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2월10일 엔에스시 상임위는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란 게 혁신위의 판단이다.
앞서 2016년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통일부는 대외적으로 업무보고 브리핑 등을 통해 ‘개성공단 폐쇄나 철수는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혁신위는 “통일부는 2월8일 이후에도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며 “그러나 국가안보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은 대통령의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통일부도 즉각적 철수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밝히면서 이유로 제시한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 전용 주장도 명확한 근거 없이 청와대 쪽에서 무리하게 끼워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원의 현금이 유입됐고, 작년에만도 1320억원이 유입됐으며,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며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 마시일을 고도화하는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애초 통일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만 해도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 연관성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통일부가 2월9일 최초 작성한 정부 성명 초안에도 자금전용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2월9일 오후 청와대와 정부 성명문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자금전용 관련 표현이 포한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2월10일 엔에스시 상임위 이후 정부 성명문을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하는 과정에서 ‘임금 전용’ 주장이 최종 포함됐다고 혁신위는 전했다. 개성공단 중단 결정도, 그 결정의 근거 제시도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
혁신위는 “지난 정부 주요 결정이 청와대에서 이뤄진 경우가 있으나, 그 기간의 청와대 자료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이같은 지시를 하게 된 과정과 경위는 다른 절차를 통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