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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8. 월요일2 /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24)[당회는 초법적 기관이 아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9. 05:18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8. 월요일2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24)


8
장 당회는 초법적 기관이 아니다.

나는 앞의 글에서 한국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목사와 장로의 역할 혼동과 그것으로 인한 갈등과 혼란이고, 다른 하나는 당회의 전제정치다. 목사와 장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하였음으로 이번에는 당회의 전제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본래 장로교회의 정치는 그 뿌리가 민주주의다. 사람끼리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하나님이 주인이신 신주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장로교회 정치는 그 대부분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제주의이다. 왜냐하면 권력과 권한이 분립되어 있지 않고 당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당회는 삼권을 다 장악하고 있다. 예산과 정책을 세우며, 그 세워진 정책과 예산에 때라 시행하고 집행하며, 그 시행과 집행의 모든 것을 감사하는 일까지 대부분의 경우 당회가 혼자서 다 감당하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전제주의다.

예전이 한국교회는 교인의 수도 적고 교회의 재정과 모든 일들이 다 어려웠었기 때문에 교회의 일을 민주주의적으로 나누어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자연 모든 일을 다 당회와 당회원들이 감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당회와 당회원들이 그와 같은 식으로 교회의 일을 감당할 때 그것은 권력과 권한에 속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감당하기 어렵고 싫어하는 책임에 속한 일이었다. 그것은 면류관이 아니라 십자가였었다.

탈바꿈한 책임과 권한.

그러나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교회의 재정도 늘어나면서부터 당회와 당회원들이 걸머지고 있던 십자가는 권한과 권력이라고 하는 면류관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많은 교회의 경우 당회와 당회원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일들을 제직회와 제직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될 때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당회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관행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굳어졌기 때문이고, 둘째, 전에는 책임이었던 일이 이제는 권한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넘겨 주는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의 모든 책임을 다 맡아서 감당하던 당회와 당회원의 역할을 이제 와서 교인들에게 넘겨 달라고 할 염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가 어려울 때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했던 당회원들은 하나 둘 은퇴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교회를 위해 변변히 십자가 한 번 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당회에 들어와 선배들이 젊어서 십자가를 진 후 잠시 누렸던 면류관만을 차지하고 그것으로 민주적으로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은 혼자서 감당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과 권한은 혼자서 독점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교회는 퇴보하게 되고, 그 당사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부패하게 된다. 교인이 부패하게 되면 교회가 부패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회는 건강성을 잃어 버리고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예수님 당시 선전 안에서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어주는 등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교회 안에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총회와 노회 그리고 무슨 무슨 연합회는 벌써 그런 이권과 세상적인 매력 때문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 선거 때마다 돈이 오가는 등 세상 부끄러운 일들이 이미 일상화 되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이와 같은 면을 개혁해야만 한다. 오랜 전통처럼 굳어진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그 제도에 기득권층이 형성되어 있는 교회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힘든 정도가 아니라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개혁을 단행해야만 한다.

한국교회가 교회를 민주화하는 개혁을 더 이상 방관하거나 늦추게 된다면 다시 회생하지 못하고 그냥 몰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이 일에 생명을 걸고 나서야 한다. 단순한 영웅심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같은 일에 나 같은 것이라고 쓰기를 원하신다면 핑계하지 말고 도망하지 말고 응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내가 섬기고 있는 동안교회부터 개혁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일에 생명을 걸리고 나름 결단하고 각오했다. 그래서 '민주적인 교회'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감행하였다. 그 중 세 번째 설교의 일부를 소개한다. 당회의 민주적인 개혁을 중심으로 설교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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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 장로교회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징후가 이미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면 이에 대한 대비를 지금 심각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도 장로교회가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장로교회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나 지금 서둘러 이 문제를 연구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한국의 장로교회는 쉽게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5,6년 전부터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들고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고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피해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그와 같은 일에서 풀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3, 중국의 총리가 된 주룽지(朱鎔基)는 최근 영국에서 열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 생사를 건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했습니다. 그는 정말 중국에서 생사를 건 개혁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해서 '97년 중국이 인플레이션은 6퍼센트로 묶고 경제 성장은 10퍼센트에 가깝게 이끌어 올려 100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주룽지 총리의 생사를 건 개혁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에 필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생명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많은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망설임과 주저 끝에 결국 이 일에 손을 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는 교회개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정말 주룽지 총리의 말과 같이 저도 한국교회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생사를 걸려고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여러분들의 많은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권한 독점의 부작용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는 민주주의가 표방하고 있는 대의정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는 대의정치가 되지 못하고 목사와 장로의 전제정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당회가 삼권을 다 장악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혼자서 다 결정하고 처리하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장로교회가 그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약할 때 당회는 교회의 모든 책임을 혼자서 다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교인들이 쉽게 교회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았을 때 당회원들이 그 모든 십자가를 담당해야만 했고 당회원들은 으레 그와 같은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당회원이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었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당회원이 된다는 것은 곧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볼 때 명예스러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교회의 당회원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당회원들이 걸머지고 있던 많은 책임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한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십자가였던 일들이 면류관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섣불리 당회원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요즘은 서로 당회원이 되겠다고 열심들입니다. 전에는 늘 미달이었던 신학대학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만 들어가게 되었고, 전에는 한산하던 교회의 장로 선거도 교회마다 과열되어 심각한 교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책임은 혼자서 걸머져도 크게 부작용이 없지만 권한은 혼자서 누리게 되면 크게 부작용이 생깁니다. 본래 장로교회의 정치의 정신은 독재정치와 전제정치가 아니라 민주정치입니다. 이제 한국의 장로교회는 본래의 장로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장로교회의 원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를 장로 정치의 원리를 따라 민주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미래사회는 세계화와 지방화의 특징을 가진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옛날과 같이 중앙집권적인 정치 형태로는 도저히 미래 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도 마찬가지고 사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듯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와 재벌이 중앙 집권적인 정치 형태로 정부와 사업을 운영해 왔기 때문입니다.

국민소득을 만 불까지 올리는 데는 그와 같은 중앙 집권적인 정치와 경제 형태가 어느 정도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 불 이후에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되려면 그와 같은 정치와 경제 형태로는 안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만 줄 시대에서 다시 주저 앉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잘못된 구조를 조정하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주룽지 총리의 생사를 건 개혁의 내용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국무원의 숫자를 47.5%, 즉 절반 가까이 줄이고 정부 기구의 25%에 달하는 기구를 축소하며 그 동안 국무원에 속해 있던 200가지의 직능을 지방과 민간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주 총리는 그와 같은 개혁에 중국의 생사가 달려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영국 국민 90% 이상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국의 정치적인 영웅으로까지 불리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수상은 44세에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21세기를 열어가는 영국과 서구의 영웅으로 현란하게 부상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노쇠한 영국을 21세기를 향한 젊은 국가로 다시 태어나도록 개혁하겠다고 한 그의 의지를 국민들이 높이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니 블레어가 영국을 새로운 젊은 국가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개혁도 결국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과감하게 분산시키고 위임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주룽지 총리와 블레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개혁이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지방 자치제가 활성화되고 사업도 재벌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제와 경제 구조를 가지고는 21세기에 정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신과 원칙은 교회에도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옛날과 같이 목사 한 사람의 카리스마와 당회의 절대적인 권위만 가지고 중앙 집중적인 목회를 해나가려고 한다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중앙집권적인 독재정치가 맞아 떨어졌었습니다. 독재정치는 '성장 구조'에 특효가 있는 정치 형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치 형태는 성숙 구조와는 맞지 않아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후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성숙에는 독약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군사독재로 말미암아 기적과 같은 성장은 이루었으나 성장 이후에 필연적으로 와야 하는 성숙의 단계를 이룰 수가 없었고, 그와 같은 미성숙함이 결국은 IMF와 같은 사회적인 혼란과 연약함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재벌 위중의 경제정책과 재벌 총수 일인의 막강한 파워로 말미암아 한국 경제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추진력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구조로는 성숙한 경제정책을 이루어 낼 수 없었고 그것이 결국은 다시 경제를 무너트리는 원인이 된 것 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거의 절대권력을 가진 목사와 장로의 중앙집권적인 정치 형태를 통해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치구조로는 성숙한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의 성장 이후에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성숙한 교회로의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한국은 유교 문화권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어느 정도 독재가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도 유교 문화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미 민주화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민주적인 문화 속에서 중앙집권적인 정치형태로는 더 이상 교회를 올바로 성장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
생사를 건 교회개혁 140페이지에서 148페이지)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메모 :  당회는 초법적 기관이 아니다.